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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Feb 21. 2024

<1월, 새로운 시작>

<1월, 새로운 시작>


작은 박스의 택배가 도착했다.   닭 가슴살이니 볶음밥이니 다이어트 식품을 잔뜩 주문 부탁해 장바구니에 담아 배달 온 지며 칠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냉장식품이 도착한 것이다.   열어보니 마라탕 두 팩이 들어있다.   스티로폼은 분리수거해 버린 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그런 후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야채가 들어 있어 얼른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한 봉지를 뜯어 남편과 끓여 먹었다.  


야채도 신선한 데다 베이컨이 들어있어서인지 고기의 깊은 맛도 나고 중국식 면발도 부드러웠다.  “역시 젊은 애라 그런지 맛 선택을 잘했네” 하며 둘은 맛있게 먹었다.  늦은 저녁이 돼 가니 도서관에 갔다 들어온 딸에게  마라탕 택배가 왔었고 엄마가 하나 끓여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딸이 한마디 했다.   

“아니 왜 남의 허락도 없이 먹고 그래요?”라며 말한다. 남?  순간 당황한 나는  

“아. 미안, 야채가 있어서 얼른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먹었는데...”  

“무슨 소리예요, 유효기간이 일주일이나 남아있는데...”  

나는 계면쩍으면서도 기가 막혔다.  아니 얼마 전 20만 원 거금을 들여 닭 가슴살이니, 단백질 프로틴이니 잔뜩 시키고 돈은 내가 냈는데... 이제 얼마 되지도 않는 마라탕 한 그릇 먹었다고 부모 자식 간에 남이라며 성질을 부리다니... 나는 기가 막혀 방금 전 누나와 도서관에서 온 아들 방에 들어갔다.  

“아들, 저녁은 먹은 거니?” 방금 전 누나에게 들은 서운한 말을 성토라도 해야 맘이 풀릴 것 같아 조금 전 일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며 묻는 사이, “네”라는 짧고 인색한 대답.  순간 이런 기분에 서운해하고 있는 사이, 

“엄마 좀 나가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헐, 엎친데 덮친 격인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벌거진 얼굴로 소파에 앉아 ‘빨래해 각자 옷걸이에 걸어주고 청소까지 해줬으면 눈에 띄게 깨끗해진 방을 보고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을, 고맙다는 말은커녕 마라탕에 남남이 되고, 엄마말을  들어줄 기미도 없고, 지들 감정만 소중하구먼...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오늘 어디 한번 푸닥거리 한번 해봐!’ 하고 고민하는 사이 나의 심적동태를 알아차린 남편이 한마디 한다. 

“김여사. 참어요 참어, 커가는 과정이야.  내리사랑이라고, 우리도 그랬잖아! 부모의 간섭과 모든 터치가 부담스럽고 싫었던... 스무 살 넘으면 얼른 내보내야지...”  

그래~그래! 에리히 프롬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부모 또한 자기 자신으로서 자식과의 관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거지.  모성애의 참된 본질은 성장을 돌봐주는 것이니까.  내보내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데 너희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웠구나. 분리되는 것은 당연하지.‘라고 중얼거리며 어려운 과제 앞에 들어선 것처럼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지금 너희들의 행복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엄마가 모든 것을 주면서 능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과업에선 엄마로 변신을 요구하는 때인가 보다.  이렇게 맘을 다잡으니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마음의 진정 기세를 몰아 나는 아들과 딸을 불렀다.

둘은 엄마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불평 없이 나와  “말씀하세요” 라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세탁하고 빨래 챙겨주는 것 엄마도 힘드니 오늘 이후로 각자 방에 가져다 놓을 테니 알아서 정리하고, 아들도 이젠 대학 3학년이니 고시원이든 아니면 학교 앞 방이라도 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 딸이 얘기한다.

“저는 공부할 량이 많아 그렇잖아도 회사 근처로 두세 달 정도라도 급히 지내야 할 곳을 알아보고 있어요. 넷북도 너무 무겁고, 출퇴근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요”

“엄마 저도 개강 후에는 학교 앞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월세 부담 적게 셰어 하우스라도 얻어 나가야겠어요!”

“아,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그랬다. 애들은 어느새 다 커서 ‘남’으로서 각자 떠날 준비를 했고, 독립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나를 만나는 시간.  아이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의식적으로 믿지만, 사실은 프롬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관심 대상에 대해 깊이 억압되어 있는 적의를 갖고 자식을 몹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식을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을 보상하려고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다 컸지?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신년계획을 세운다.   반드시 목표를 이루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할 일의 절차나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하고 그 내용을 적어본다. 그래서 눈에 잘 띄는 책상 앞이나 수시로 여는 냉장고 문 앞에 크게 써서 붙여놓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작년 한 해 부족했던 것을 반성하며 올해는 어떤 일에 목표를 세우고 어디에 열정을 쏟아야 할지 생각하며 실행 리스트도 작성하였다.

살을 빼고 싶으면 헬스장에 등록하고, 책을 읽고 싶으면 독서회에 등록하고, 봉사하고 싶으면 단단히 마음먹고 봉사단체에 가입하는 것이다.  애들이 이뻐 죽겠어서 때로는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향이 있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열정파 엄마지만 이젠 여기까지이다.   부모노릇은 여전히 힘들다.  오늘 내가 깨달은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될 것이다.  내가 하려는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의미에서,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다. 이 갈망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근원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1월부터 시작되는 가장 큰 다짐 중 하나 나를 잘 사랑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날의 감사한 일을 옆 사람에게 매일 말해보기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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