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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kim Aug 02. 2023

‘엄마호’로의 탑승

이른 아침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언니의 전화. 아침부터 웬일인가 싶은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일어났어? 조금 있으면 엄마 전화 올 거야. 치매 검사해 달라고 또 난리다. 자기 치매인 거 분명하데. 머릿속 해마가 다 쪼그라든 거 같다고. 오늘 학원 일로 바빠서 길게 통화 못한다니까, 지혼자 바쁜 척한다고, 못된 년! 소리 지르고 끊더라. 아마 너한테 전화 갈 거야. 미안. 나중에 다시 통화해.” 누군가 ‘원장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엄마는 10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서서히 조금씩 변해갔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나이를 거슬러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더니 요즘은 6살 난 내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나빴다가를 죽 끓듯 하고,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에 극대노하며 다신 안 볼 것처럼 욕을 바가지로 퍼붓기도 했다. 몸이 아프다, 입맛이 없다, 잠을 못 잔다, 아빠가 미워 죽겠다를 레파토리로 돌려가며 밤낮없이 전화를 해댔다. ‘내 새끼는 귀엽기라도 하지. 어휴 엄마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10년이 넘는 시간 엄마를 케어해오며 언니와 나는 자매 이상의 관계, 마치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어온 전우 같은 사이가 되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제는 한 명이 최선을 다하다 동력이 떨어지면 또 다른 한 명이 이어받아 책임지고 전담 마크하는 시스템도 갖추게 되었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그랬다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좀 심하게 들리긴 해도, 힘에 부치는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 말이 실감 나곤 했다.

‘이번 코스는 치매 검사군’

치매 검사라니. 사실 엄마의 기억력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로 젊은 시절부터 대단했다고 하는 게 맞다. 시장을 다녀올 때면 꼭 놓고 오는 물건이 있었고, 나는 늘 2차로 시장 한 바퀴를 돌며 봉투를 챙겨 와야 했다. 고등어를 사다 생선가게에 돼지고기를 놓고 오고, 그 고등어는 야채 가게에 두고 오는 일이 빈번했다. 그럴 때면 엄마의 동선을 탐정처럼 역 추적해야 했다. 덕분에 추론 능력이 길러진 건지. 나는 드라마 한 장면만 봐도 결론까지 단번에 맞춰 주변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갖게 되었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막내야, 엄마 아무래도 치매가 분명해. 방금 있었던 일도 기억이 안 난다니까. 돌아서면 잊어버려. 오늘은 부엌에 갔다가 내가 여길 왜 왔지 한참 생각했어. 글쎄 어제는 화장실에서 손 씻는다고 물을 틀어놓고 그냥 외출한 거 있지. 저녁에 와서 화장실 갔다가 물이 콸콸콸.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니. 벌써 이번 달만 몇 번째라 수도세 엄청 나오겠어. 내가 어제 생로병사의 비밀을 봤는데 나랑 증세가 똑같더라구.”

“잠깐만. 엄마는 치매가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기억력이 안 좋았다고. 모든 잘 두고 오고, 잃어버리고.기억안 나? 아, 그리고 건강 프로그램 좀 그만 봐. 그거 보면 나도 다 어디 아픈 거 같이 증세가 똑같다구.”

“야, 이놈의 기집애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젊을 때는 너희 삼 남매 키우고 아빠 일 돕고, 늘 발 동동거리며 바빠서 그랬던 거고. 지금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는데. 머릿속이 복잡하지도 않은데 모든 게 가물가물하다고. 너 이러다 엄마 치매였다고 하면 땅 치고 후회한다. 빨리 발견할걸 그러면서. 시끄럽고 당장 병원 알아봐. 이왕이면 대학병원처럼 큰 곳으로. 확실하게 뇌를 다 찍어봐야 해. 모든 게 골든타임이 있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이럴 때 보면 치매이긴커녕 누구보다도 총명해 보인다. 30분 남짓 갖은 협박과 읍소 끝에 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가장 빠른 시기에 검사 가능한 대학병원을 알아보는 수밖에.


‘언니, 설마 진짜 치매는 아니겠지. 엄마 원래 그랬잖아.’ 막상 병원에 오니 초조한 마음에 문자를 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치매 검사실 앞 신경과 대기실은 앉을 곳이 부족한 건지, 환자가 많은 건지 빈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모두 부모님 모시고 2인 1조로 와서 그렇구나. 치매 검사를 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싶은 마음에 왠지 겁도 나고 불안한 마음도 커졌다.

한때는 차라리 엄마가 치매라면 속 편하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 치매여서 이런 거구나. 어쩌겠어. 의사가 치매라는데. 그냥 이해하고 받아줘야지. 치매를 어떻게 상대해.’ 이런 상상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느껴졌고,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엄마 때문에 맘고생 하는 아빠에게도 무조건 져주고 이해하라고 설득하기에 쉬울 것 같았다.

‘아닐 거야. 뇌를 꼭 찍어봐야 맘이 놓인다니까. 엄마한테 계속 시달리느니 돈 쓰고 속 편해지는 게 나아. 안 그래?’ 언니의 답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김혜자 님, 보호자 분.”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섰다, 오랜 시간 나의 절대적인 보호자였던, 그 보호자의 보호자로 불리는 이 순간이 왠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 김혜자 님은 안에서 인지 검사하실거구요, 보호자님은 밖에서 설문지 작성하실게요.”

“아가씨, 내가 한쪽 귀가 망가져서 안 들려요. 벌써 15년이 넘었거든. 이게 돌발성 난청이라는 병인데 첨에 병원을 잘못 가서. 그 병원이 어디냐면.” “엄마, 그만. 지금 그 얘기가 뭐가 중요해. 간호사님, 안에 계신 선생님이 질문하실 때 크게 말씀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잘못 알아 들을 수 있어요” 엄마의 TMI가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정리를 해야 했다. 엄마는 나를 보며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하며 검사실로 들어갔다. 마치 어릴 적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내가 엄마를 보며 그랬던 것처럼.


닫힌 문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보호자 작성 설문지’를 건넸다. 설문지는 생각보다 두꺼웠다.

Q.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

Q. 과거에 쓰던 기구 사용이 서툴러졌다.

‘글쎄, 엄마가 요즘 그랬나? 언니한테 전화해서 자세히 물어봐야 하나.’

Q. 보호자의 고통 정도(환자의 이상행동 때문에 보호자가 느끼는 고통 부담을 의미) 1에서 5까지 숫자로 체크하시오.

1은 힘들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 5는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

‘어떤게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인 거지? 지금 내가 고통이라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것에 비해 어느 정도인 걸까? 혹시 고통을 견딜 수 없다고 하기보다, 지금 이 현실 자체를 외면하고 싶어서 고통스럽다 느끼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질문에 답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보는 이도 없는데 괜히 낯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속마음이 마치 한 꺼풀씩 적나라하게 벗겨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검사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잘 안 들리는지, 선생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머니, 제 말 듣고 따라 해 보세요.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온다”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온다” “그가 내 뒤를 몰래 밟았다” “음…… 그가, 그가 내 뒤를 몰래 밟았다”

“잘하셨어요. 자 그럼 동물 이름 5개 말해보세요” “강아지, 고양이, 토끼, 돼지, 조랑말! 맞죠. 내가 동물을 원래 좋아하거든” 엄마는 하나라도 틀리면 절대 안 되는 사람처럼 최대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하고 있었다.

‘참 내, 치매라고. 해마가 쪼그라들고, 전두엽이 없어진 거 같다더니. 엄청 열심히 하고 있네. 누가 보면 장학 퀴즈라도 나온 줄 알겠다.’ 어이가 없었지만, 자꾸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 어머니, 다음은 숫자에요. 4, 7, 6 거꾸로 말해보세요” ‘아이고 선생님, 내가 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은 원래 잘 못했어. 잠깐만, 잠깐만, 뭐라고 했더라?”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나도 그만 따라 웃어버리고 말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검사실 문이 열렸다.


“보호자님, 인지 검사는 끝났어요. 이제 김혜자 님 모시고 3층 MRI실 앞으로 가세요.” 긴장이 풀렸는지 검사실을 나오는 엄마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잘했어?” “모르겠어. 너무 떨려서 아는 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 국어는 좀 잘한 거 같은데, 숫자 문제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거 좀 틀렸다고 치매 판정 나오진 않겠지.” 좀 전과 달리 목소리에 힘이 없는 모양새가 꼭 시험을 망치고 나온 학생 같아 보였다.

미로같이 복잡한 병원 통로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대학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가는 곳마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이 사람들도 다 저마다 사연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자 괜스레 짜증을 부린 내 마음이 민망해졌다.


MRI 촬영을 위해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는 조그마한 어린아이 같았다. 워낙 키도 작고 체격도 자그마하지만, 어젯밤은 한숨도 못 잤는지 수분기 하나 없는 푸석한 얼굴에 주름만 가득해 보였다. 엄마가 언제 이렇게 늙었지. 먹먹해지는 마음을 애써 꾹 눌렀다.

“엄마, 지금 그렇게 소원하던 뇌 사진 찍어 보러 왔잖아. 긴장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가만히 누워있어야 해. 움직이면 촬영이 제대로 안 된다고 아까 들었지? 엄마 뇌를 나이테처럼 연대기 별로 촬영해서 치매를 일으킬 충격이 있었는지 확인한데요. 시간은 30~40분 걸릴거야. 내가 밖에서 잘 지키고 있을게. 걱정하지말구.”

“막내야, 너 내 말 잘 들어. 만약에 내가 치매라고 하면, 절대 속일 생각 말고 바로 얘기해줘. 만약 치매인데 나만 모르고 식구들이 쉬쉬하면서 수군대면 난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알겠지?”

내 손을 꼭 잡은 엄마의 손이 파르르 미세하게 떨렸다.


엄마가 촬영실로 들어가고, 난 잠시 눈을 감는다.

감은 눈앞에 원통형의 커다랗고 새하얀 기계가 보인다. 그리고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워진다.

침대 위에 엄마가 가지런히 눕는다. 복잡한 기계음 같은 소리가 한참 들리고, 침대는 거대한 원통 속으로 천천히, 천천히 들어간다. 마치 알 수 없는 캄캄한 미지의 세계, 우주 속으로 쏘아 올려진 작은 로켓처럼. 엄마는 점점 사라져간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5살 때 전쟁을 겪으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던 엄마의 어린아이 시절을, 나는 알지 못한다.

고교 시절 별명이 ‘국어 박사’였던 엄마는 줄줄이 있던 남동생들과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한 학기를 남겨두고 남의 집 애기 보는 식모로 보내져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는 가슴 아픈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손잡으면 무조건 혼인해야 하는 줄 알고 첫사랑과 결혼했지만 홀시어머니의 지독한 시집살이에 만삭에도 맘 편히 한번 앉아 보지 못했다는 서글픈 고통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가정부까지 있던 큰 집에서 손바닥만 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하느라 늘 쪼그려 앉아 바느질해야 했던 그 기나긴 밤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엄마의 뇌 속 어딘가, 기억 저장고 한 칸 한 칸에 담겨있을 모든 아픔의 순간들. 오롯이 혼자 겪어야 했고, 부모에게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 미지의 우주를 찰칵 찰칵 촬영 중인 저 감정 없는 기계보다 엄마를. 그 인생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엄마호’에 함께 올라타 저 과거의 모든 아픈 순간으로 돌아가, 있는 힘껏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우주에서 힘들었을 엄마에게 충분하다고. 잘해왔다고. 괜찮을 거라고…… 가만히 그리고 따스하게 오랜 시간 토닥여 주고 싶었다.


저녁 준비가 한창인데, 전화가 울린다.

“아까 전화 못 받아서 미안, 오늘따라 학부모 상담이 줄줄이 있었어. 병원 다녀왔지? 의사는 뭐래? 응? 빨리 얘기 좀 해봐”

“언니, 뭐라긴 뭐래. 엄마 뇌는 아주 멀쩡하데. 전두엽도 정상이고, 해마도 딱 적당한 사이즈로 너무 건강하데. MRI 결과는 뇌가 아주 정상이라는데 엄마가 믿질 못하고 ‘선생님 괜찮으니까 지금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하면서 자꾸 괴롭혔다니까. 못 말려 정말. 언니, 선생님이 그러더라. 엄마의 증세는 오래된 우울증에서 비롯된 게 크니까, 가족들이 힘들어도 엄마 얘기를 많이 들어주라고. 우울증 환자들은 무기력에 쉽게 빠지고, 감정 기복도 크니까 주변 사람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이해가 꼭 필요하대. 그게 제일 좋은 처방이라고 하셨어. 매일 해 많이 쐬고 산책도 하고, 물론 약도 꾸준히 먹고. 앞으론 외롭지 않게 신경 많이 쓰자. 우리가  김혜자 여사의 든든한 보호자잖어.”

지금 우리는 ‘엄마호’로의 탑승을 준비하며,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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