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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kim Jun 16. 2023

굿바이, 킹닭

for. 작은 이별에도 큰 상실의 아픔을 느끼는 여린 아들을 위한 동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준서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어요.

"엄마, 오늘 우리교실 피아노가 떠나 버렸어. 우리에게 매일 즐거운 연주를 해 주었는데,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저씨들이 꽁꽁 묶어서 트럭에 싣고 멀리 가버렸어."

준서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으어엉‘ 하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어요.

엄마는 우는 준서를 보며 “준서야, 오늘 어린이집 피아노 바꿨구나. 안 그래도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피아노 바꾼다고 알림장에 쓰여 있었잖니. 아이코, 우리 준서 많이 속상했나보네. 울지마. 새 피아노는 전자 피아노라, 재미있고 신기한 소리도 많이 난다더라. 준서도 조금만 지나면 멋지다, 잘 바꿨다 생각할거야.”

“아니야, 나는 정들었던 피아노가 떠나는 게 너무 싫다고 말하는거야. 새 피아노가 싫은 게 아니고. 둘 다 있으면 더 좋잖아. 내 맘도 모르고!” 준서는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또르르. 좋아하는 만화를 보다가도 눈물이 또르르. 신나게 변신 로봇을 조립 하다가도, 문득 정 들었던 피아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어요.

엄마는 울고 있는 준서를 무릎에 앉히며 말했어요. "준서야, 이리 와봐. 엄마가 어렸을 때 얘기하나 해줄게."     


햇살이 좋은 봄날이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어요.

"와~ 병아리다! 노란색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고 있네.  정말 예쁘다. 나도 병아리 키우고 싶어." 현주는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 보다, 그만 동전지갑을 탈탈 털어 병아리 두 마리를 샀어요. 누런 종이봉투에 담긴 병아리 두 마리는 걸을 때마다 '삐약' '삐약' 소리를 내며 신나 하는 것 같았어요. 현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자랑을 했어요.

"엄마, 이것 좀 봐. 내가 병아리 데려왔어."

“아이쿠. 뭐라고? 병아리! 이걸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똥 싸고 냄새나고 시끄러울 텐데." 엄마는 현주와 달리 병아리가 예쁘기보다 걱정이 많은 것 같았어요.

"엄마 걱정 마세요. 제가 먹이도 주고, 똥도 치워주고, 산책도 시켜 줄 거예요." 현주는 자신 있게 소리쳤어요.

"이름을 먼저 지어줘야지. 음, 나중에 커서 왕관처럼 빨간 벼슬을 단 멋진 닭이 될 테니까. '킹닭'이라고 불러야겠다. 또 다른 한 마리는 공주처럼 이쁘니까 '공닭'! 엄마 어때요, 멋지죠?"     

그날부터 병아리와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되었어요.

'삐약 삐약 삐약 삐약' 아침부터 온 식구가 병아리 소리에 잠을 깼어요. '삐약 삐약 삐약' 병아리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울었고 현주는 병아리를 돌보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어요. 엄마가 주신 조를 물에 불려 먹이로 주니, 콕 콕 콕 부리로 맛있게 집어 먹었어요.

밤에는 패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고 수건으로 감싸 병아리가 살고 있는 박스 안에 넣어 주었어요. 포근한 엄마 품이 그리운지 병아리들은 물병 옆에 꼭 붙어 잠이 들었어요. 현주는 병아리 똥도 치워주고, 가제 수건으로 얼굴도 씻겨주며 열심히 병아리들을 돌보았지요.
 병아리들은 그런 현주의 마음을 아는 듯, ‘학교 다녀왔습니다’ 외치며 들어오는 소리에 삐약거리며 반갑게 마중을 나왔어요. 현주 손에 노랗고 보드라운 털을 비벼댈 때면 현주의 마음은 왠지 모를 포근함과 따뜻함으로 가득 찼어요. 현주가 자장가를 불러주면 까맣고 조그만 눈을 스르르 감고 잠들기도 했어요. 그런 병아리들을 바라보는 현주의 마음은 정말 행복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닭이 꾸벅 꾸벅 조는 것 같더니 그만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현주는 두 손에 공닭을 들고 한참이나 울었어요. 엄마가 볕이 따뜻한 곳에 꼭 묻어 주겠다는 약속에 현주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지요. 이제 남은 병아리는 '킹닭' 한 마리 뿐! 현주는 그전보다 더욱 알뜰살뜰 살피며 킹닭을 사랑해 주었어요.     


늘 좋았던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현주는 친구들과 재밌게 놀다가도 밥을 주거나 똥을 치워주기 위해 서둘러 돌아와야 했어요. 또 조나 밥알을 물에 불리는 게 귀찮기도 했어요.

킹닭이 제법 크고 나서는 상추나 배춧잎을 다듬어 주어야 했고, 똥을 많이 싸서 더럽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어요. ‘킹닭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어. 나도 맘대로 놀거나 쉬고 싶은데' 볼멘소리가 새어나올 때도 있었죠.

한번은 미술 숙제로 풍경화를 그리는 중이었어요. 몇 시간이나 공들여 그림을 완성하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킹닭이 그만 물감을 풀어놓은 팔레트를 밟고 예쁘게 칠해 놓은 하늘 풍경 위를 저벅 저벅 걸어갔지 뭐에요.

"야! 킹닭! 너 이게 모야. 힘들게 그린 그림인데, 다시는 못 그린다고. 어떠케." 현주는 속상해서 소리를 질렀어요. 숙제를 다시 하기에는 밤이 너무 늦었거든요.

"현주야, 그만 자렴. 이제와 방법이 없잖니." 엄마가 말했어요.

"몰라 몰라. 킹닭! 너 진짜 미워!! 내 숙제 다 망쳐 놓고." 현주는 화가 많이 났어요.  

그런 현주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킹닭은 현주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볐고, 현주는 그런 모습이 조금은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러워 어쩔 수 없이 용서해주었어요.     


무더운 여름이 되었어요.

어느덧 킹닭은 제법 커서 빨간 벼슬도 달고, 아침마다 "꼬끼오~" 소리를 내어 식구들 뿐 아니라 아파트 사람 모두를 깨우기 시작했어요.

"현주 엄마, 아침마다 닭 우는 소리 때문에 우리 남편이 짜증을 내요."

"우리 집 애들도 시끄럽다고 난리야. 어서 시골에 보내든지, 몸보신을 하든지 해요."

반상회가 열린 날, 아파트에 사시는 아주머니들이 한마디씩 했어요.

"현주야, 이제 킹닭을 집에서 키우기는 힘들 거 같아. 이러다 누가 쫓아오겠어."

"엄마, 킹닭을 어떻게 다른 곳에 보내요. 킹닭한테는 우리가 가족인데. 얼마나 정 들었는데. 정말 모두들 너무해. " 한참 울었지만, 이번엔 현주도 어쩔 수 없었어요. 킹닭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 거예요.      

"목사님 댁에 잘 갖다 드리고 오렴. 인사 잘하고. 엄마가 전화로 다 얘기해 두었어."

현주는 하는 수 없이 킹닭을 안고 목사님 댁으로 향했어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걷다, 울다, 걷다, 울다……  한참을 걸려 도착했어요.

"현주야. 정말 고맙다. 네가 정성스럽게 키웠다면서. 아이코 기특해라."

킹닭 목에 줄을 매어 대문 고리에 단단히 묶으며 사모님이 말했어요.

"네. 사모님 예쁘게 키워주세요. 달걀 낳으면 꼭 알려주셔야 해요."

"현주야, 얘는 수탉이라 달걀 못 낳아. 그리고…… 엄마가 말씀 안하셨나 보네. 그래 아무튼 고맙다."

"킹닭아 잘 있어. 언니 갈게. 담에 꼭 만나." 무거운 마음으로 뒤돌아서는데, 킹닭이 '꼬꼬꼬꼬' 소리를 내며 현주를 따라 오려고 했어요. 한 번, 두 번 뒤돌아보다 더 이상 돌아보면 킹닭을 두고 가지 못할 것 같아, 냅다 한걸음에 달려 집에 도착했어요.

’사실 아파트에서 계속 키울 수도 없고. 나도 친구들과 마음껏 놀지 못했잖아. 오히려 지금이 잘 된 거야.' 현주는 킹닭 생각이 날 때마다 머리를 가로저으며 잊으려 애를 썼어요. 그렇게 며칠, 몇 주가 흘렀어요. 킹닭을 그리워하는 현주의 마음도 조금씩 작아졌고, 이제는 며칠씩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단풍이 예쁘게 물들기 시작했어요.

"지난번 수채화 그리기 대회에 냈던 그림 오늘 나눠 줄 거예요. 잘 그린 친구들은 상장 받을 테니 모두들 축하해 주고"

선생님은 반 친구들 이름을 한명씩 불러가며 그림을 나눠 주었어요.

"현주, 앞으로 나오세요."

현주는 그림을 받자마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어요.

애써 마음에서 지웠던 킹닭의 발자국이, 마치 하늘 위 예쁜 별 모양처럼 선명하게 탁. 탁. 탁. 탁. 찍혀 있었어요.

"흐흑, 어어엉. 어어어엉."

현주는 반 친구들이 쳐다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그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왜 그래, 현주 상 못 받아서 그런 거니? 괜찮아, 다음 기회에 더 잘 그리면 되지."

선생님의 달래는 목소리도, 친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킹닭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가 너무 보고 싶어. 흐흑, 어어어엉."     


이야기가 끝나고, 엄마와 준서의 눈이 마주쳤어요. 준서의 커다란 눈망울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요.  

"엄마, 나도 킹닭이 보고 싶어요."

"그래, 엄마도. 준서야, 지내다보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 때가 있어. 마음이 정말 아프고, 속상하지. 하지만 준서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오히려 준서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란다. 그 사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가끔 행복한 추억으로 떠 올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준서는 엄마 품에 꼭 안겼어요.

따스하고 포근한 엄마 품처럼, 낡은 피아노도 따뜻한 추억이 되어 준서 마음속 깊이 남아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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