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갤러리에 처음 방문했을 때 오름의 아름다움에 홀려 하루종일 오름을 찍다가 생을 마감한 김영갑씨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엔 한없이 약해진다. 금각사의 아름다움이 질투가 나 금각사를 불태우고, 자기가 발견한 오름의 아름다움을 찍겠다는 열망 하나로 제주도에 내려오는 마음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에 홀리고 아름다움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아름다움을 배워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늘 열등감을 느꼈다.
그런데 9년만에 이 곳을 방문해 찬찬히 사진을 살펴보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예전엔 어떤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이 포착해서 전달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느꼈다면, 이 사진들은 이미 내가 아는 아름다움이었다. 이미 내 내면에 어떤 풍경이나 개념의 형태로 있는 것들.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학습의 형태든 경험의 형태든 내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늘 뭔가를 보고 듣고 읽고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와 나는 간접경험으로 형성된 사람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은 나의 세계가 original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느꼈는데, 요즘은 이렇게 풍성해진 내 세계가 마음에 든다. 또 열심히 경험하고 보고 느끼고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풍성하게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