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향 Jun 30. 2021

민들레 홀씨의 마음

사람의 첫 기억

사람의 첫 기억이 그 사람이 세상에 대해 갖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뭣도 모르는 1년 차 때 케이스 발표를 준비하면서 환자들에게 당신의 첫 기억이 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 당시에는 해야 하는 일이라서 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아마 생전 처음 들었던 질문이겠지.


 나의 첫 기억은 3살 즈음 살던 연희동의 한 주택의 계단에서 엄마가 쪼그려 울던 장면이다. 아마 봄날이었던 것 같고, 엄마는 20대였고, 예뻤다. 당시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가장 예뻐하던 막내아들을 엄마가 뺏어갔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엄마를 꽤나 괴롭혔다. 무엇 때문에 엄마가 울었는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남은 것은 쪼그려 앉아 울던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는 왜 울까, 엄마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하던 나의 마음이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자주 혼자 울었다. 아니, 엄마는 내 앞에서도 자주 울었다. 드라마를 보고도 울고, 다큐멘터리를 보고도 울고, 아빠랑 싸울 때도 울었다. 엄마는 내가 속상하면 자기가 더 울고, 나를 혼내고 나서도 자기가 더 속상해서 우는 엄마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언제든 엄마가 내 앞에서는 웃어도 뒤에 가서는 혼자 쪼그려 앉아 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매일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혼자 울던 사춘기 시절에는 내가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걱정이 되어 방문 앞에서 숨죽이고 쪼그려 앉아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시절이 한참 지난 후에 함께 술을 마시다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려줬다.


 나는 아직도 모든 여성들을 만나면 그녀가 홀로 쪼그려 앉아 우는 장면이 그려진다. 겉으로는 밝고 강한 여성들 뒤에 숨겨진 눈물을 상상한다. 민들레 홀씨가 떠 다니는 봄 공기 속에 엄마를 보고 있는 3살 아이로 돌아가 어떻게든 우는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어깨에 손을 올린다면, 혹은 안아준다면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마음이 되어버린다.

작가의 이전글 황소윤과 영지 선생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