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방 초음파실에서 일하는 데 보통 초음파라고 생각하면 의사가 검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는 자동 유방초음파( Auto breast UltraSound : ABUS) 장비를 들였고 이 장비로 검사를 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즉, 이 장비는 유방을 기계가 전체적으로 기록한 후에 판독실에서 의사들이 판독하는 신개념 장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방사선사들은 유방이 전체적으로 잘 나오게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초음파가 우리 몸에 투과를 하려면 공기층과 우리 몸 사이의 매질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 매질이 다들 생각하는 초음파 젤이 맞다. 검사하기 전 이 초음파 젤을 따뜻하게 데워놓는다. 이 사소함의 차이도 결국 환자의 긍정적 경험에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데워 놓은지가 근 10년이 넘었고 나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사소함에 대한 감사 이야기다.
나는 당연하듯 따뜻한 젤을 환자의 몸 위에 올렸다.
"젤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어머 왜 따뜻하죠??"
" 아~데워 놓았습니다. "
"어머!! 감사합니다! "
"......"
환자가 이 따뜻한 젤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는 것은 5년 만에 처음 들었다. 이것이 환자가 나한테 감사할 일인가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통 이런 말보다는 따뜻해서 좋네요! 다른 데는 차갑던데 대학병원이라 다른가요? 추운데 잘됐네요. 보통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데 갑자기 들어온 감사함에 대한 공격은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걸로 내가 감사하다는 고마움의 표시를 들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순간 당황했기에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렇게 어영부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검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왜 하루 종일 그 사건(?)에 대해 생각이 나는 것일까?
내가 들어야 할 감사함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아님 사소함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환자를 보고 반성해서 그런 것일까? 요즘 감사일기에 중요성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어서 그럴까?
따뜻한 초음파 젤이 사소한 것이라고 나 스스로 정의해버린 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그 작은 것을 알아봐 준 환자 분 덕에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한 이 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환자분들을 위한 작은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 말 한마디로 보상받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내 일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내려진다.
곳곳에 모든 나의 노력이 있었음을..
이 공간이, 작은 노력들이 바로 나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사소함에 대한 감사를 다시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감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