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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망스 Jan 23. 2024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들에게

“지금 이러시면 안되고요, 제가 드리는 이 책자라도 좀 보세요.”

“아... 네..!”


첫 출근 날, 출근하고 10분도 안지나서 사수에게 지적을 당했다. 그 이유인즉슨, 첫 출근한 직원인 내가 신문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이라 모니터와 연필꽂이만 놓여있는 깨끗한 책상에서 A3보다 더 큰 신문을 읽는 본부장 같은 신입사원이라…. 사수의 심기를 거스를만도 했다. 변명을 하자면, 직장 경험이 전무했고 어렸던 나는 순전한 경험의 부재로 출근 첫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업무 관련 자료를 읽고 싶은데 달라고 했다간 '아 좀 기다리세요'라는 쌀쌀맞은 대사가 되돌아올 것만 같이 다들 바빠보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활자를 읽으면 노는 것 같아 보이진 않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에 감히 말단 자리에서 신문을 읽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2017년 3월, 24살의 나이에 계약직으로  출근한 나는, 순조롭지 않은 출발과 동시에 온갖 풍파를 맞이한다.


갖은 이유로 인한 독박업무, 일 안(또는 못)하는 상사와의 갈등, 같이 일했던 공무원의 성희롱, 스트레스로 인한 난치병 발병, 프로젝트 용역사의 업무태만, 상위기관의 갑질 등등…. 셀 수도 없다.


지금은 꽤나 경쟁률이 센 회사의 정규직이 된지 오래고, 높은 인사고과 점수로 승진도 하며 직장 내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예전보다는 사건사고에 데미지가 적고 짧은 시간 내에 고안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초연함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는다. 그런 모습에 어느덧 '대리님은 어떻게 그렇게 멘탈이 세요?'라는 후배 직원의 질문도 종종 받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단해지기까지 다음날 회사 갈 생각에 체하고, 출근 지하철에서 차라리 사고가 나길 바라고, 사무실에서 수없이도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처절하고도 비참한 나날들을 경험했다. 잊고 살았는데, 상사 대신해서 외부 업체한테 욕먹고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던 것도 생각났다. 물론 이것도 빙산의 일각이긴 하다.


별의별 사람을 다 모아놓은 곳이 직장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매일 고군분투할 때, 미생 드라마가 참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현실 고증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던 직장인들의 퇴사 vlog도 도움이 되었다.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만 이렇게 끝없는 터널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비참하지만 함께 견뎌보자고 응원을 받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출근 첫날을 맞이한 신입사원들이 있다. 이들은 높은 확률로 직장 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런 회사를 한평생 다녀야 한다는 좌절감과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는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미생일기를 남겨보자고 결심했다. 혹시 당신도 그중 일부라면, 그래서 이 글을 읽게 된 것이라면, 치열하고, 처절하고, 비참했던 어느 미생의 일기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출근 첫날, 10분도 안되어 꾸지람을 듣고 주눅 들었던 그 미생도 밥벌이하며 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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