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 보면 알 수 있듯, 첫 출근하자마자 꾸지람을 들은 나는 그저그런 회사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저 그렇다 함은,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눈칫밥 먹으며 대충 중간은 했으리라고 짐작되는 회사생활이었다. 그런 생활을 한 열흘 정도 했을 즈음, 나를 비롯하여 나와 비슷하게 계약직으로 입사했던 현지씨의 환영회를 위해 팀장님께서 회식을 제안하셨다. 장소는 팀장님께서 좋아하시는 홍대의 한 양꼬치 집이었다.
회식 참석자 수가 열명 남짓했기 때문에 두 대의 택시로 나눠서 양꼬치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오래되어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 기억나는 것은 택시 안에서 상당히 어색했다는 것···. 팀장님과는 (다행히도) 다른 택시였지만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부서원들이랑도 그리 친하지 않을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6시 20분, 퇴근길 교통체증이 어마무시한 신촌 일대를 지나려고하니 억겁의 시간이었다.
'집가서 라면먹는 게 양꼬치보다 더 맛있을지도···?'
이때부터 였던가. 상사가 사준다고 하는 맛있는 음식과 집에서 먹는 라면을 비교하며 후자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 입사한지 열흘도 안된 신입사원에게 선구안이 존재할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여차저차 홍대의 양꼬치집에 다다라서, 우리는 양꼬치와 꿔바로우 등 몇가지 요리를 시켰다. 내 기억에 양꼬치는 2017년으로부터 얼마 거슬러올라가지 않은 때부터 유행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양꼬치를 처음 먹어본 때가 첫 회식이었다.
"소리씨는 양꼬치 많이 먹어봤어요?"
"아니요, 저 처음이에요! 우와!"
양꼬치 많이 접해봤냐는 한 직원의 물음에 처음이라며 오버액션을 했다. 오버액션을 한 이유는 그저 내가 저 자리에서 할 수 있는게 오버하는거랑 리액션하는 것 두 가지뿐이어서였다. 그리고 회식에서 나의 발언권이 있을 때마다 열심히 대사를 쳤다. 유쾌하고,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적당한 대사들···.
적당히 대사 치고 집에 갔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알고 보니 팀장님이 술을 원체 잘 드셨고, 소맥 이후에 고량주를 두병 주문하셨다. 나도 술을 잘 먹고 좋아하던 시절이었기에, 건네시는 고량주를 넙죽 받아마셨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술잔을 비워냈는데, 팀장님께서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하셨다. 이미 고량주를 마시며 취했던 내가 저 멀리서 종업원이 소주를 한 병 더 가지고 오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끝난 게 아니었다니... 뭐 어쩌겠는가, 유종의 미라고 열심히 마저 마셔야지 싶었다.
"팀장님 제가 한 잔 드릴게요!"
그렇게 소주를 한 잔 드리는데, 너무 취한 나머지 술을 잔에 넘치게 따랐었다. 팀장님 손이 소주로 아주 푹 적셔졌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취한 마당에 별일 아니었는데, 당시는 햇병아리 시절이라 내가 크게 잘못한 것만 같았다.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드렸다. 그리고 풀이 죽어 아무도 시키지 않은 묵언수행을 시작했다. 점입가경으로 말과 함께 기억도... 사라졌다.
여기까지만해도 다음날 이불킥을 하진 않았을 텐데, 지하철역에서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첫 연애여서 서툴렀고 수차례 갈등으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던 우리는 수화기 너머로 다툼을 했고, 나는 언성을 높였었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누가 봐도 나 싸우고 있어요 하는 톤으로 십분 넘게 남자친구와 언쟁을 했다. 술 취한 와중에도 우리 사이가 바닥까지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집에 도착한 나는 대자로 뻗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알았다. 집 방향이 같았던 팀장님이 내가 지하철역에서 남자친구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웠던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는 것을. 괜히 본인 때문에 술 많이 먹어서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 아니냐며, 진지하게 미안해하셨다. 나랑 대화하는 것도 어색해하며 자리를 피하셨다. 안 그래도 팀장님은 다가가기 쉬운 스타일이 아닌데...
아아... 첫 출근도, 첫 회식도 망했음이 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