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서사
2021년이었어요. 글쎄, 어떤 말부터 하면 좋을까요. 최은영씨 새 소설이 출간 되었다는 걸 알고 잠깐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충격을 받아 그 이후로 최은영 작가 소설은 모두 찾아보았거든요. 한참 신작이 나오지 않기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제가 발견한 거죠. 책을 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책장을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두려워서요. 이번에는 얼마나 몰입하게 될지, 이 작가가 글로 내 마음을 얼마나 뒤흔들지 두려웠습니다.
새비, 삼천, 희자, 명옥, 지연... 남자들만 존재하는 것 같은 세상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가 적어 적잖이 마음이 상하던 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 저자에게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엄마의 이야기 같기도 한 그런 이야기들에 저는 목말라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부러 여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라디오,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고 듣고 있으니까요. 굳이 찾아봐야 알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데가 없다는 뜻도 되겠지요.
증조할머니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가족의 사랑과 환멸, 부끄러움과 잔인함이 공존해 있습니다. 따뜻한 가족이라는 것은 남의 얘기죠.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곤 합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송새벽은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교훈을 주려 하지 않아서, 그냥 우리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강인하고 정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저는 최은영씨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지하철에서, KTX를 타고 가며 읽다가 많이 울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소설 한권으로 온통 제 마음이 또 흔들렸어요. 최은영 작가의 다음 작품을 다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