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독서의 기억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이사 온 집 근처에는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달리면 5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다 친한 친구들도 책을 좋아해서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고 여름방학에는 도서관 특강을 들었다. 책만 읽은 건 아니다. 도서관 정원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매점에서 컵라면 사 먹는 걸 즐겼으며, 민들레 홀씨도 불어 날렸다.
책 속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른의 세계도. 초등학생이었으면서 어떻게 임신을 하고 출산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소설책을 빌려보다가 부모님한테 들켜서 혼이 났다. 엄마는 “도서관 직원이 어떻게 애한테 이런 책을 빌려주냐.”며 분개했다. 그다음부터는 성인용 소설을 빌리는 건 자제했다.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걸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하지만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주기로 했다.
어느 날은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불이 환하게 켜진 내 방으로 들어 온 엄마는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자라.”고 했다. 아랑곳없이 책을 계속 읽었다. 뒤이어 아빠가 오고 오빠가 왔다. 하지만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마저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고는 책 속에 세뱃돈을 끼워 놓은걸 잊어버려서 그대로 반납한 적도 있다. 일주일이 지나 ‘내 소중한 3만원이 어디갔지?’ 허둥지둥 기억을 더듬다 반납한 책 속에 넣어두었던 게 생각났다. 다음날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서 분류기호를 따라 서가로 들어갔다. 책은 다행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설마, 혹시, 제발! 예수님, 3만원이 그대로 있다면 저는 앞으로 교회를 정말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기도했다. 3만원은 다행히 그 안에 그대로 있었다.
책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은 도서관에 가기보다는 종이책을 사거나 이북을 구매해서 읽는 편이다. 성인이 되고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된 후에도 내가 사는 집 코앞에 도서관이 있었지만 회원등록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이제는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늘 훌륭한 독자로 남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재미있는 작품을 써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내가 모르는 세계로 나를 인도해주기를, 나의 지경을 넓혀주기를, 활자를 읽는 것이지만 영상을 보듯 한 감각을 일깨워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