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2025
“대안이 없는 인간의 몰락“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수(이병헌)는 25년 동안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외국회사가 해당 기업을 사들이면서 구조조정을 당한다. 집안일을 담당하던 아내 미리(손예진)가 치위생사 자격을 가지고 있어 치과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취미로 하던 테니스를 그만두고 집안의 각종 지출을 줄이며 남편의 실직에 대처하는 것과 달리 만수는 다른 제지공장에 취업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마트에서 일하긴 하지만 이건 잠깐이다. 아르바이트이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은 없다.
결국 자신이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 레드페퍼‘라는 가짜 회사를 만들어 구인공고를 하면서 경쟁자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 경쟁자들, 범모(이성민)와 시조(차승원)는 차례로 만수의 손에 살해되고 만다. 선출(박휘순)은 경쟁자는 아니었으나 이 사람이 죽으면 어쨌든 만수가 취직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생기는 것이기에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세 번째 살인을 한다. 주인공에게는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마트에서 계속일을 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분재를 활용해서 가드닝을 할 수도 있는데 경주마처럼 한 가지만 쫓아간다. 제지회사의 관리자가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모두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개인의 문제인가? 그럴 수 있다. 그 사람의 시야가 좁아서,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해서. 하지만 회사나 사회의 대처는 어떤가? 25년이나 한 직종에서 일을 한 사람이 정년 퇴직한다는 건 손에 꼽을 일인데 그에게 재취업 교육 기회가 있었나, 갑작스럽게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누가 알려줬나? 주인공 만수는 퇴직자들의 자조모임에 가입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다는 거 중요하지만 그 이상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욕구를 해소해주진 않는다. 영화에서는 이마저 만수가 스스로 찾아간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보이며 결국 이 모임은 만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지나치다 싶지만 만수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만수에게 어떤 다른 대안을 주었는가? 25년이나 일한 사람에게 쉬어도 된다, 다른 길을 찾아도 된다고 누가 얘기해 주었나? 네가 잘하는 건 이 것이니 이 쪽으로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나 시스템이 전혀 없다. 그 지점이 뼈아프다.
만수가 첫 번째 살인을 결심하고 범모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이런 충고를 한다. “실직을 해서 집안이 어려우면 집을 팔던지 택배일이라도 해!“ 범모는 두려움에 떨며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이렇게 말한다. “난 허리가 아파서 무거운 건 못 들어. 난 그런 일은 못해! 난 전문가니까!”
전문가는 그 일 아니면 안 되나? 술 마시면서 자기 삶을 망가뜨리던지 재취업을 하던지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나? 대안이 있는 삶. 다른 길도 가능하다고 제시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당신이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만수가 가족들과 함께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