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나무 Nov 18. 2022

삼고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에요.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바보들은 최소한 저 세 가지 중 하나는 해야 예의라고 여긴다. 과학을 믿어서 사후세계나 영혼 따위는 없으며 죽으면 존재가 소멸될 뿐이라고 여긴다면, 그 세계관을 존중해서 ’이제 편안하게 소멸되셨을 겁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요.’라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막상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말을 듣고 화가 난다면 마음속 깊이로는 사실 아무도 과학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다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후세계, 영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지만, 그냥 골치아픈 생각 따윈 잊고 육신의 쾌락을 쫓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과학을 믿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할머니의 입관식 때, 장례지도사가 쌀알들이며 숟가락이며 엽전들을 풀어놓으며 말했다. 어머님이 좋은 데 가시라고 나오셔서 입에 쌀을 세 번 얹어주세요. 가실 때 여비 하시라고 돈도 이렇게 챙겨서 품에 넣어드릴 겁니다. 그 소릴 듣고 먹은 것도 없이 속이 거북해졌다. 인간들은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는 데에도 쌀과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신, 악마, 천사 같은 영적 존재가 실재한다면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돈이 필요 없다는 것일 게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이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좋은 곳’으로 갈 것인가 ‘끔찍한 곳’으로 갈 것인가 하는 판단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양심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가 기준이 될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생동안 했던 모든 일과 말과 생각의 기억이 마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동영상 파일처럼 존재할 것이다. 영적인 존재들에게 죽어서까지 돈으로 좋은 곳에 가고자 마음먹는 인간들이 어떻게 비춰질까. 돈을 내고 입장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 있다면 거긴 천국일까 지옥일까. 차라리 장례지도사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떨까.








"유족분들은 고인분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신의 판단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우리 또한 남은 시간 동안 절대로 영혼을 팔지 않고 끝까지 양심을 지켜내서 고인분과 언젠가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합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말이지만 만약 그랬다면 장례지도사는 아마 고객들의 항의로 곧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고, 자기기만적이고, 자기모순적이어서 진실을 음미하는 것이 곧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https://www.skytreemagazine.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