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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Jan 17. 2022

인생영화 <카운슬러 The Counselor>

 확장판 Extended

세기의 만남: 최고의 작가와 감독, 배우들의 만남  


이 작품의 원작은 소설 <더 로드>로 퓰리처상을 수상한바 있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이기도 한 최고의 소설가 코맥 맥카시가 쓴 <카운슬러>(The Counselor)라는 제목의 스크린플레이다. 영화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맡았다. 이 두 거장의 만남만으로도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한데 유래가 없을 정도의 초호화판 캐스팅까지 더해졌다. 마이클 패스밴더, 브래드 피트, 카메론 디아즈, 페넬로페 크루즈, 자비에르 바르뎀까지, 한 명 한 명이 혼자서 영화 하나를 이끌어갈 수 있을만한 세계적인 주연배우들 다섯명이 만났다. 스크린플레이(대본)가 워낙 좋기 때문이기도 할테고,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장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3년에 릴리즈된 영화 <카운슬러>는 극장판 보다는 확장판(Extended)으로 감상해야 한다. 극장판이 낫다는 사람들은 확장판에서 추가된, 아니 극장판에서 생략된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다이아몬드 감정사와의 대화,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르텔 두목과의 대화 모두 가장 중요한 대목이 극장판에서는 싹둑 잘려나가 있다. 그러나 확장판을 보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유일하게 원작의 내용을 건드리면서까지 강조한 회심의 씬이 바로 '카르텔 두목과의 전화'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원작 스크린플레이를 원어로 읽어봐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극장판에서 삭제된 장면에 대한 설명은 뒤에 다시 하기로 하겠다. 



이 영화만큼 많은 명언(Quote)이 난무하는 영화도 찾기 힘들고, 이 영화만큼 마니아와 대중의 평가가 갈리는 영화도 흔치 않다. 마니아들은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 대중의 경우에는 대사 위주의 졸리고 재미없는 영화, 호화 캐스팅이 아까운 영화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영화의 내용이 깊다는 얘기다. 확실히 일반 대중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를 수십번은 족히 봤을 내가 이제서야 리뷰를 쓰는 이유는 최근에 와서야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7년간 심심하면 이 영화를 꺼내보면서 계속해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중요한 내용이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무엇에 홀린듯 보고 또 보고 계속해서 다시 볼 수밖에 없는 영화였고, 요즘도 가끔 다시 보는 영화다. 






누구의 조언을 받느냐에 따라 갈리는 운명


등장인물들이 마이클 패스밴더 분의 주인공을 시종일관 '카운슬러'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카운슬러는 변호사를 뜻하는 단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이름으로 불리는 데 비해 주인공만은 계속해서 이름 대신 변호사(카운슬러)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의도적인 설정은 '카운슬러'라는 단어에 담긴 여러가지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카운슬러의 다른 대표적인 뜻은 '조언자'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카운슬러라고 불리우는 변호사임에도 계속해서 마약 중개상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 분)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때마다 웨스트레이는 일깨우기라도 하듯 '변호사 양반, 난 당신에게 조언을 해줄 수 없어'라고 말한다. 변호사는 다른 마약 딜러인 친구 라이너에게도 조언을 구한다. 함께 사이드잡으로 클럽을 오픈할 준비를 하기도 한다. 돈에 대한 탐욕에 눈이 먼 변호사가 조언을 구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젊고 잘생긴 벤틀리 오픈카를 타는 멋진 변호사 주인공의 인생은 그렇게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함으로 해서 상상도 하지 못한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깨어있으라


영화의 첫 장면은 변호사와 로라(페넬로페 크루즈)의 베드씬이다. 하얀 침대 시트 아래서 로라가 약간은 몽환적으로 던지는 'Are you awake?(깨어있어?)’이라는 첫 대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깨어있으라'라는 구절을 연상케하는 이 첫 대사는 마치 주인공에게 ‘항상 깨어있으라’ 하고 말하는 신의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깨어있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침대 안에 누워있지만, 변호사는 그곳에 있지 않고 그만의 꿈속에 있었다. 인생에서 한 번뿐인 로라와의 결혼을 위해 딱 한 번만 마약 밀수라는 범죄행위에 가담하겠다는 허망한 꿈속에. 





다이아몬드와 진정한 사랑


베드씬에서 장면이 바뀌고 변호사는 독일 암스테르담에 있다. 한 유대인 다이아몬드 감정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감정사는 다이아몬드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실은 말이죠 우리가 다이아몬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란 전부 그 ‘결점’에 있다는 겁니다. 완벽한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그건 오로지 빛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테니까요. (…) 기억하세요, 메리트를 찾는 게 아닙니다. 이건 시니컬한 비즈니스에요. 우린 오로지 불완전한 점만을 찾습니다. (…) 스톤의 영원한 운명을 함께한다, 소박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소망이죠. 하지만 이것이 애정의 의미 아닐까요? 애정하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드높이기 위해서 상대의 결점과 함께 그 결점의 고귀함까지 인식하는 일. 가장 고귀한 정신으로 어둠을 향해 우리는 인생의 보잘것없음 따위에 위축되지 않을 거라고 선포하는 일. 그런 이유 따위로 가벼운 존재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의 빛나는 부분이 아니라 내재된 ‘결점’을 사랑해야 한다는 늙은 다이아몬드 감정사의 지혜로 해석할 수 있다. 결점이 없다면 이미 인간이 아닐 것이므로. 그리고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자면 자기 자신의 결점도 숨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진실한 사랑을 하려거든 상대의 결점까지 사랑하고, 나의 결점도 있는 그대로 고백하라는 깊은 지혜다. 하지만 지금 변호사는 자신의 재정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로라에게 숨기고 있다. 아마도 젊은 혈기에 벤틀리를 타고, 마약 딜러들과 어울리는 방탕한 삶을 사느라 결혼생활을 위한 자금이 부족하게 된 것이리라.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그런 자신의 결점까지 모두 고백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지만, 변호사는 본인의 결점을 숨기는 쪽을 택한다.





오직 두 가지 영웅, 오직 하나의 신


이 부분에 대한 다이아몬드 감정사의 대사는 극장판에서 삭제되었다. 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고 극의 흐름상 꼭 필요한 내용이기에 소개해본다. 이 부분을 잘라냄으로써 극장판은 종교적인 논란은 피했는지 모르지만 원작을 심히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감정사는 세상에 영웅이란 두 가지 부류밖에 없다고 한다. 하나는 전사(Worrior)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사람(Man of GOD: 신을 믿고 신과 함께 걷는 사람)이다. 코맥 맥카시의 통찰은 역시 대단하다. 그는 문명의 두 줄기인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와 주대아 크리스천 문화의 영웅을 각각 꼽고 있는 것이었다. 헬레니즘의 히어로(영웅)는 수퍼맨이나 아이언맨같은 전사이고, 크리스텐돔(Christendom)의 영웅은 모세나 엘리야, 예수 그리스도 같은 신의 사람들인 것이다.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 전사(워리어)는 물리적인 전쟁보다 쩐(돈)의 전쟁에서 승리한 억만장자로 변모했다. 그래서 아이언맨도 억만장자고, 그 실제 모티브라는 일론 머스크도 억만장자다. 현대의 영웅은 돈의 전사들인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영웅이 되고자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마음속 깊이에는 언젠가는 영웅처럼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다이아몬드 감정사는 변호사에게 어떤 영웅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의 전사가 될 것인지, 신과 함께 걷는 양심의 사람이 될 것인지를. 



감정사는 또 유대인으로서 대담한 주장을 한다. 서구가 유대인의 신을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원래 세상에 문화라는 것은 그리스 문화와 유대문화밖에는 없는데 그리스 문화가 유대문화를 강탈해갔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는 유일신을 믿지 않고 온갖 잡신들을 믿으면서 유일신을 믿는 척 외양만을 갖추고는 언제나 손에서는 피가 마를 날 없이 폭력을 자행해온 서구(유럽)를 지탄한다. 카톨릭에 대한 메시아닉 유대인의 반감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통찰의 깊이가 너무 깊다.





인간은 욕망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웨스트레이는 누군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그가 가장 원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웨스트레이는 자신이 가장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잔인무도함이 난무하는 마약 카르텔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당장 수도원에라도 들어가 소일하며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여자’라는 것이다. 많은 여자와 자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 밀수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웨스트레이는 처음 만나 하룻밤을 보낸 여자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공항 주차장에서 처음 만난 변호사와 야외섹스를 벌이는 것으로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린 로라는 오로지 연인인 변호사와의 사랑만을 원한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푹 빠져서 사랑했던 연인이 몰래 벌인 일에 휘말려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라이너는 온갖 사치를 끊을 수 없다. 마지막에 그가 카르텔에 의해 쓰러져 죽자 동네 아이들이 그의 손목시계며 신발같은 사치품들을 수거해간다. 저택 야외수영장에서 DJ 파티를 열고, 애완용으로 치타를 키우는 등 극도로 사치스러운 삶을 살던 라이너지만 결국 손목시계 하나 가져가지 못하고 허망한 끝을 맞이한다.



웨스트레이는 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데, 마약 밀수업에 금융기관을 비롯한 지체높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암시와 양심을 상실한 인간이 돈을 벌게되면 당연하게 걷게 되는 길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웨스트레이는 변호사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사고싶은 집과 차와 온갖 물건들을 더이상 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샀다고 하면 그 다음엔 흘러넘치는 돈으로 무얼 하겠느냐고. 웨스트레이는 그런 사람들이 여자와 단순히 성관계를 갖는 것에는 더이상 만족을 느낄 수 없어서 살인과 성관계를 동시에 하는 성매매 상품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카르텔들은 그 상품을 공급하기 위한 전문 납치꾼들을 데리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 후아레즈에서만 한해에 수천명의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돈 몇푼에 함정에 빠져든다고 한다. 마치 영화 <호스텔>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카르텔의 그런 살인 성매매 상품의 고객들중에는 아마 TV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 적지않게 끼어있을 것이다.        





어설픈 양심은 파멸을 재촉할 뿐이다


변호사는 법원에 의해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한 라틴계 중년 여성의 국선변호사를 맡게 된다. 공판을 위해 재소자 면담을 하던 중 변호사는 죄수 여성의 아들이 과속 혐의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석방을 위해서는 400달러의 돈이 필요하다며 도와줄 수 없겠느냐는 여성의 말에 변호사는 흔쾌히 승낙한다. 



갑자기 착한 일을 하고 싶어진 것인지 원래 기회 닿는대로 남을 돕는 타입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양심을 버리고 전사의 길을 택한 사람에게 선행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전사들의 싸움에서는 생존이 곧 승리다.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허허실실을 이용해 보기좋게 아군까지 속이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대의와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군 병사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어 희생시키기도 한다. 그런 사람에게 선행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로 얼룩진 손을 씻어주지도 못하고, 승리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좋은 일을 했다는 작은 만족감과 위선 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 



그렇다고 선행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행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선행을 하려면 우선 본인의 양심부터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만약 변호사가 마약거래를 비롯한 모든 비양심적인 일로부터 손을 떼고 죄를 뉘우친 뒤 투명한 삶을 사는 와중에 이와같은 선행을 했더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약 밀수에 손을 댄 변호사에게 선행은 오히려 덫처럼 작용한다. 





선택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밀수를 위해 운반중이던 마약 수송차가 사라지고, 변호사는 웨스트레이를 통해 사라진 마약으로 인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 카르텔이 하는 일을 듣고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걱정대로 로라가 사라진다. 카르텔에 의해 납치당한 것이다. 



로라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한 변호사는 마침내 카르텔 두목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마지막 통화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연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맥 맥카시의 원작을 더욱 심오하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데 더해서 원작에서는 없던 대사들을 결정적인 곳에 삽입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극장판에서 삭제되었다. 앞부분에서 다이아몬드 감정사 장면처럼 편집을 당한 것인데 아마도 제작사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카르텔 두목은 변호사에게 선택은 이미 예전에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라이너와 웨스트레이에게 돈에 대한 조언을 듣던 카운슬러가 이제는 카르텔 두목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카르텔 두목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선택할 때마다 그의 세상은 달라지며 그 다음부터는 행동에 따른 결과에 따라 펼쳐지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변호사는 지금 갈림길에 있지만 그 갈림길은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갈림길이 아니며, 과거에 했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갈림길이라고 한다. 선택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시간은 절대로 당신을 과거로 되돌리지 않기에. 



과거에 했던 행동을 되돌리려고 한다는 건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과 같다. 인과율을 무시하고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좋지 않은 결과가 닥치려하면 마치 세이브해둔 지점으로 가서 다시 게임을 하듯 인생도 그렇게 해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절대로 우리를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되돌려주지 않는다. 과거에 그 결정을 하던 세상과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이후의 세상은 이미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지금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을 피하려 하지 않고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세상에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 가증스러운 인간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알아야 반성을 하든 회개를 하든 할 수 있는 것이지 모르는 것을 뉘우칠 수는 없다. 안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리조리 인과율을 피해가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부분에서 중의적인 암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갈림길에 서있다’를 영어로 하면 ‘You are at the cross’가 되는데 그건 ‘당신은 십자가에 매달려있다’라고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라는 부분도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한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다’라고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극장판에서 완전히 잘려나간 카르텔 두목의 조언 마지막 부분은 한층더 심오해진다. 두목은 변호사에게 말한다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죽음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모든 현실의 종료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지만 그런 초월적인 체념에서 당신은 고대의 지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의 돌은 언제나 진흙속에 버려진채 발견된다는 것을. 이런 사실은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사소한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다 종말이 오면 비로소 모든 창대한 계획과 디자인이 드러날 것이다.’



언뜻 들으면 로라의 죽음을 예감하고 슬퍼하는 변호사에게 고양이 쥐 생각해주듯 던지는 위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마지막 조언은 죽음이 아니라 ‘종말’에 대해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죽음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역설적이게도 카르텔 두목의 ‘조언’을 통해 예수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찾아보니 성경에 예수를 ‘조언자(카운슬러)’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 이사야서 9장 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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