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범죄를 미리 처벌하는 ‘생각경찰(Thought Police)’의 개념이 등장한다. 마고여신(삼신할매)을 상징하는 세 명의 오라클이 비전을 통해 미래의 범죄를 예언하는 방식으로, 잠재적인 범죄자들의 마음속 생각들을 마치 빅데이터처럼 검색해서 이루어진다.
조지 오웰의 그 유명한 소설 <1984>에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빅브라더에 반하는 행동은 물론 말이나 생각까지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정부에 반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단어의 뜻을 바꾸거나 특정 단어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생각범죄를 처벌하는 일은 비단 소설이나 영화속의 일만은 아니다. 국가원수나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잡아가는 공산주의 국가들이나 종교 선택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국가들은 특정 생각을 범죄화해 처벌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철저한 감시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간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기독교의 성경에 보면 생각범죄를 인정하는 내용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음란한 생각만으로도 간음이 성립되고 분노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성경은 생각으로 범하는 죄도 행동으로 범한 죄와 똑같이 죄에 해당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생각이 정말 죄가 될까?
모든 범죄의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다. 실제로 실행되기 전에 반드시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 형태로 먼저 잉태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우발적인 범죄라도 머릿속을 거쳐서 행동으로 옮겨진다. 만약 우리가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마치 큐피드가 화살을 쏘듯 주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밤낮으로 변태적인 포르노물을 주입하면 머지않아 성범죄자가 되거나 적어도 간통을 저지를 것이고, 밤낮으로 끔찍한 고어물을 주입하면 머지않아 미쳐버리거나 살인자가 되거나 자살하고 말 것이다. 어떤 일이든 반복해서 생각하다보면 실행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다. 가장 끔직한 범죄도, 가장 숭고한 희생도 모두 머릿속에서 시작되고 생각의 반복으로 잉태된다. 그래서 생각을 낳는 언어, 이미지, 영상이 총칼보다 큰 힘을 갖는다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구절처럼 생각으로 범하는 죄도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매우 타당하고 실용적이다. 만약 생각은 절대로 죄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원수를 죽이는 상상을 매일 할 것이고 상상은 다시 분노를 날마다 키워갈 것이다. 부적절한 성욕에 휩싸인 사람은 부적절한 대상과의 부적절한 성행위를 매일, 하루하루 더 적나라하게 상상해나갈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적절한 여건이 갖춰지는 순간, 뭐에 홀린 듯 일은 벌어진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반대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법적이고 양심에 어긋나는 상상을 죄로 여겨 매일 뉘우친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여건이 완벽하게 갖춰지는 순간이 와도 후회할 일을 범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평소의 뉘우침이 안전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뉘우침이 안전장치로 작용하려면 반드시 자발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뉘우치치 않을 자유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강요된 뉘우침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의지와 뉘우침은 단품 구매가 불가능한 세트메뉴와도 같다. 애초에 뉘우침이란 개념 자체가 ‘죄의 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뉘우칠 수 없다. 얼룩이 없이 깨끗한데 어떻게 청소를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청소할 수 없다.
생각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뉘우칠 수 없고, 따라서 머릿속의 생각에 아무런 필터가 없고, 따라서 뭐에 홀린 듯 상황에 취해 일을 저지르는 데 대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가질 수 없다. 적절한 상황이 조성되면 평소 생각에 가득했던 일이 실현될 뿐이다. 텔레비전, 영화, 대중음악, 포르노동영상 등을 통해서 생각속으로 침투해 똬리를 틀고 앉아있던 아이디어들이 적당한 상황이라는 ‘트리거’에 의해 촉발될 뿐이다.
자유의지가 뉘우침의 세트메뉴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생각범죄를 타율적으로 규제하지 말아햐 할 중대한 이유는 또 있다. 모든 사람이 매일 생각으로 죄를 짓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일 질투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부적절한 상상을 하고, 크고 작은 거짓말을 꾸며낸다. 생각범죄를 형법으로 (공정하게) 규제한다면 하루만에 70억 인류 전체가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모두가 죄인이기에—생각범죄는 자율적으로 각자 알아서 규제하는 수밖에 없다. 남을 보고 생각범죄를 범했다고 비난하면서 자기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거짓말이다.
생각범죄를 자발적으로 인식하고 뉘우치는 일은 인류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용기있고 숭고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혼자만 아는 머릿속의 생각을 이유로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한다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다. 처음에는 하루종일 하는 생각 가운데 대부분이 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관조적으로 응시하고, 유튜브 비디오로 만들어 온세상에 공개했을 때 떳떳하지 못할 생각들은 모두 수갑을 채워 무릎을 꿇리는 전투는 진정한 성전(Holy War)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의 악을 처단하는 전투보다 무한대로 힘들고 아름다운 전투다. 만약 인간에게 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건 건강을 위해서나 재물을 위해가 아니라 이 성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