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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Feb 23. 2024

제가 다시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굉음 에세이

작년 7월부터 D 트레이너에게 피티를 받고 있다. 공황으로 몸과 마음이 남김없이 무너졌을 때 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찾았던 집 앞 제이 헬스장. 그곳이 날 살려냈고 난 고마움을 유감없이 표현하며 D의 자부심을 높여주었다. 첫 저서를 출간했을 땐 앞면지에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써서 선물했다. 그는 감동했다고 회신을 주었었다. 나는 생애 첫 트레이너인 D를 선생님으로, 남자로, 동생으로, 인간적으로 아낌없이 좋아했다. 이는 전략적이기도 했다. D를 좋아하는 것만큼 내가 낯설고 지루한 헬스를 지속할 강력한 동기는 없었으니까. 난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던 그에게 구원자의 위상을 부여했고, D는 날 편한 회원으로 생각했다. 나만큼 각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믿는 구석이긴 했던 것 같다.


지난 1월은 D에게 피티를 받은 지 6개월째였다. 반년간 주 2회씩 꾸준히 보아왔으니 이제 나름 밀도 높은 이웃이었다. 공황을 물리쳐준 운동은 내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와 비중을 점하고 있었고, 제이 헬스장은 일산에서 내가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소중한 곳이었다.


피티는 2월 말에 끝날 예정이었다. 1월 말에 D가 연장 여부를 물어왔다. 작년에도 계약 갱신을 종료 전달에 당겨서 하던 그였다. 꼼수라면 꼼수고 전략이라면 전략인 그의 영업 스타일이 난 별로였다. 작년엔 9월 말 연장 계약을 하자 10월 초에 곧장 할인 이벤트가 떴었다. 내가 피티를 한창 진행 중이던 12월 연말에도 좋은 조건의 할인 행사가 있었다. 다음 계약 땐 나도 이벤트 좀 이용해 보겠노라고 유념해두었다.


D가 연장 계약을 논해올 때 난 상반기 예상 수입을 두드렸다. 월 수십만 원씩 나가는 할부금이 부담스럽고 6개월 정도 배웠으면 혼자 해볼 때도 되었다 싶어, 여기서 중단하고 여름쯤 이벤트를 이용해서 돌아오겠다 말했다. D는 지금 피치를 올릴 때인데 중단하기 아쉽다고 설득했고 난 생각해보겠다 말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그 주에 D는 내게는 생전 언급한 적 없는 여자친구 여부를, 내 소개로 D에게 같이 피티를 받던 친구 나래에게 말했다. 나래가 묻지도 않은 TMI를 D가 뜬금없이 스스로 흘린 것인데, 난 그가 내 귀에 들어가게 의도했다 생각했다. 그 의도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D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망치처럼 내 후두부를 갈겼다. 어질어질했다. 여수로 함께 여행을 가서 그들이 함께 나눌 낮밤이 맴돌았다. 인스타를 돌아다니며 누구일지 수색했다. 내가 D를 이 정도로 좋아했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정신 나간 며칠을 보내며 잔치가 끝났다는 걸, 아니 애초에 잔치 따위 열린 적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먼 바다의 해일처럼 뿌옇던 공황 증세가 식욕부진을 앞세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발을 차며 꿈이 깨는 선뜻한 느낌과 함께 유리창이 쨍그랑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눈앞에 닥쳐 있는 현생이 명료하게 보였다. 청약적금마저 깨버린 통장 잔고가 혀를 내민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금 한가롭게 실연 따위를 곱씹을 계제가 아니었다. 내가 수색해야 할 건 그의 여친이 아니라 나와 내 고양이들의 생활비였다. 당장의 카드값과 올 한 해를 버틸 지속가능한 생존 대책이었다.


다시금 막다른 절벽이 실감되었다. 이대로 떨어져 고독사하리라는 공포가 엄습했다.


일주일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고, 몸이 급속히 내리막을 타며 화답했다. 순식간에 헬스를 시작하기 전으로 체중이 돌아갔다. 꼼짝없이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현기증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우선순위를 생각했다. D의 연애는 내 권한 밖이고,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난 나를 1순위에 간신히 올려놓았다.


다음 피티 날 인바디를 측정했다. 모든 수치가 작정한 듯 작년 공황 재발 시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예상한 만큼 공포였다. 내 몸은 여전히 까마득한 그날, 이 공황의 시발점이었던 ㄱ출판사의 퇴사 날을 도돌이표의 기준점으로 여기고 있었다. 난 그날로부터 이주한 게 아니라 외출한 것이었구나. 언제든 그날로 자석처럼 되돌아오겠구나. 남은 생은 거기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어김없이 돌아가는 짓을 반복하는 데 쓰이겠구나. 난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이고 프로메테우스였다. ㄱ출판사를 퇴사하던 그 시공간이 내 평생 회귀할 집이었다.


그래도, 평생 가출 청소년처럼 배회하게 되더라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D에게 현재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나와의 지난날을 되짚어보며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전력을 다해 도와줄 의지를 보였다. 청춘의 치기가 더해져 날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띤 듯했다. 우울감에 시달리며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을 인스타에 찍어 올린 밤, D는 그걸 본 듯 수업 피드백 톡에 이 말을 보탰다. ‘앞으로도 컨디션 좋지 않아도 제가 계속 끌고 갈 테니 나오기만 하세요’ 그 문장을 본 순간의 고마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D의 의지에 힘입어 날 살렸던 피티 수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기로 했다. ‘잘 사귀어라. 난 살아야겠으니.’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해 두 번째로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엄마는 빌려줘야지 하면서도 ‘너도 잘 생각해봐. 이제 그만 취업을 해야 되지 않겠니.’ 하고 말했다. 그 말에 이르러 해안에 당도해 있던 공황이 비로소 내 신체에 도래했다. 작년부터 수도 없이 생각해온 일이건만 출근은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출판 프리랜서로는 살 길이 없고 회사는 못 다니겠고, 당최 어찌 살아간담. 누구나 하는 먹고사니즘의 번뇌가 불길처럼 불안이 되어 닥쳤다. 눈물을 한바탕 쏟고 엄마 전화를 끊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였다. 가슴이 벌렁대고 피부가 화끈거리는 신체화 증상이 다시 찾아왔다. 한동안 손도 대지 않던 비상약을 시시때때로 흡입했다. 가까운 친구들과 정신과 선생님들께 공황 재발 사실을 알렸다. 이제 다들 경력자라 능숙하게 필요한 조치들을 척척 해주었다. 주변인들이 곁에 돌기둥처럼 버티며 내가 휘청거릴 때 붙잡을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이번엔 괜찮겠다 싶었다. 그간 운동을 한 것도, 정신과 상담을 받아온 것도 다 이때를 대비한 것이었으니까. 외려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측정해볼 기회로 삼았고 솔직히 자신 있었다.


오랜 시간 정성껏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치열하게 생각하며 하나하나 넘겨갔다. 난 내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자신감을 찾고 또 안심했다. 피티 연장계약도 장기회원 우대가 체감되는 좋은 조건으로 논의했다. 자금 여유가 없으니 1월에 계약만 하고 결제는 2월에 하겠다는 걸 D는 매출 실적이 부족하다는 아쉬운 소리를 하며 1월에 해주길 부탁했다. 난 잠시 고민하다 인정으로 수락했다. 여차저차 네고를 거듭해 드디어 계약조건을 합의한 날, 헬스장에서 밤 10시에 당장 와서 카드 결제하라고 불러낸 것도 개의치 않았다. 더 이상의 협의는 불가하다는 마지노선 선언이라고 생각했고, 거기까지 협상을 해냈다는 데 만족해 당장 달려가서 ‘해치우죠.’ 하며 카드를 긁었다. 그 계약을 계기로 D와 나 사이에 의리 같은 것이 싹텄다 여겼다. 이제 이 관계는 비즈니스를 넘어 우정이 가미되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은 일주일 후에 뜬 구정 할인 이벤트로 박살이 났다. 난 D에게 두 번째로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건 D에게 말할 수 있는 뒤통수였다. 연휴 때 당신의 상사와 계약 철회 절차를 밟겠다고 톡을 보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변명했다. 어떤 것은 준비된 변명 같았고 어떤 것은 억울해하는 변명 같았다. 어수선하게 펼쳐지는 어휘들을 보며 미숙한 문제해결력을 마주했다. 또한 말끝마다 죄송하다 덧붙이는 불안한 20대의 초상을 목격했다. D가 어리석은 변명을 계속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죄송하다 수그리는 모습도 마음 아파서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난 상급자를 소환하며 대화를 거부했다.


자, 이제부터 어른들이 할 테니 옆에서 보고 배우렴. 배워갈 깜냥이 된다면.


난 모처럼 어른들이 하는 분쟁 대비를 샅샅이 했다. 그간 썼던 계약서들을 정리해 환불 금액을 계산하고 불응 시 대응카드를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헬스장 환불 실태, 체육시설 관련법과 제도, 내 편이 되어줄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보원 피해구제 절차를 학습했다. 한편으로 인근의 다른 헬스장을 알아보고 나이 지긋한 병원 사무장 같은 사람이 운영하는 믿음직해보이는 곳을 찜해두었다. 내 환불 사태를 바라보며 김빠진 나래가 중도하차 의사를 밝혀 그에 대한 방안도 마련했다. 이제 상급자와 무탈하게 철회서에 사인하고 D와는 남은 2회의 피티 수업을 마친 뒤 제이 헬스장과 안녕하면 될 일이었다. 또 이렇게 나가는구나. 난 ㄱ출판사의 퇴사 날을 다시 치러야 했다.


그런데 상급자가 고수였다.


위약금을 두고 옥신각신할 줄 알았던 면담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그는 내가 뭘 얼마나 준비했을지 예상한 듯 완벽한 사과의 태도로 응대했다.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빠짐없이 듣고 모든 게 센터 잘못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 사태에 대해 내가 받았을 정신적 타격(공황 장애를 전제한) 또한 사과하고, 나와 D의 친분이랄지 내가 헬스장에 가졌던 애정을 무너뜨린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D의 영업 방식에 대해 주의를 주자 그 또한 솔직하게 인정하며 수용했다. 그리고 나래의 중도하차에 대해 묻고 따짐 없이 위약금 없는 완벽한 환불 처리로 진정성을 표시했다.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노련함으로 자신이 가진 권한을 동원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그 자리에서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


D가 소생시켜준 체력 덕에 내가 이만큼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그간 내게 이런 긍정적인 경험, 즉 소속된 집단과의 갈등을 잘 해결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바람직한 경험이 필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되는 좋은 사례를 쌓으며 ㄱ출판사의 퇴사 날을 한 겹 한 겹 덮는 것이 치유의 길이었다. 그것이 내가 ㄱ출판사의 퇴사 날에서 멀리멀리 벗어나 끝내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제 60회 남은 피티가 끝날 때까지 이벤트 따위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이다. 다시 믿기로 한다. 아니 더 굳게 믿기로 한다. 믿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례가 되어주기로 한다. 이 믿음을 두 번 저버릴 때를 위한 비장의 카드도 있다. 나도 조금 컸다는 뜻이다.


엊그제 피티 수업 분위기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난 칼춤 한번 추고 뒤끝 없이 깔끔하게 회복된 회원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예전보다 조금 많이 웃고 떠들며 내 나름의 푼수짓을 떨었다. 그래봤자 보통 사람의 보통 수다였겠지만, D가 안심하고 속에 걸리는 것 없이 내 트레이닝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작년 연말정산 노트에 ‘시간이 갈수록 관대해진다’고 적었던 나를 상기했다. 그런 날 지켜내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이건 내가 이제껏 해보지 못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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