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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Jun 28. 2023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현대미술 톺아보기

feat. 정우철 도슨트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피카소 비롯해 현대미술 두루두루 볼 수 있겠다 싶었고 도슨트를 신청했는데 도슨트가… 잘생겼더라고요…. 정우철 도슨트인데 유퀴즈 등 방송 후일담 얘기하길래 집에 와서 찾아보니 도슨트계의 아이돌…? 방송 출연은 왜케 많아… 닥스 앰배서더…ㅎ 유명하신 분이더라고요. 해설 좋았습니다. 작품 설명뿐 아니라 전시 기획 배경과 현재 우리나라 미술 전시의 흐름까지 넓은 시야로 짚어줘서 좋았어요.


루드비히 미술관 전경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 소장품 중 78점을 소개하는 전시였어요. 루드비히 미술관은 1976년에 페터&이레네 루드비히 부부가 자신들이 갖고 있던 피카소 비롯한 350점가량의 예술작품들을 무상 기증하며 설립되었대요. 루드비히 부부는 예술이 탄압받던 독일 나치 하에서 이 작품들을 몰래 소장하며 지켜냈다고 해요. 나치 정권은 자유로운 예술은 퇴폐 미술로 규정해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추상미술은 살아남을 수 없었고요.

루드비히 부부의 영향으로 다른 콜렉터들도 작품을 기증하며 미술관의 규모가 커졌고, 2001년 이레네가 피카소 700여 점을 더 기증하며 피카소 작품 보유 세계 3위 미술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에겐 옳은 것을 지켜냈다는 자부심 같은 미술관이라고. 알고 나니 관람에 들어가는 마음가짐이 사뭇 달라졌어요.


케테 콜비츠 <애도>












케테 콜비츠는 독일에서 나치에 저항한 자국민을 상징하는 위인이라고 합니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고 이후 생을 반전운동에 바쳤다고 해요. 그래서 작품 주제가 대부분 애도와 슬픔이라고 합니다. 전쟁 시기를 지나온 독일 화가들의 작품은 유독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있다고 해요.



페터 헤르만 <부지(불타는 드레스덴)> / 볼프강 마트호이어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피카소가 도자기도 했네요. 피카소는 안 한 게 없어서 후대 화가들이 벗어나려고 미치고 팔짝뛰었다고….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


카지미르 말레비치 <슈프리무스 38번>

현대미술이 한날한시에 일제히 어려워진 이유. 사진기 발명이라 합니다.

그전까지 화가들은 재현에 충실하면 됐는데 사진기가 발명되자 500년 미술사가 다 부정당하고 미술이 폭삭 망했대요. 20세기 초반 화가들은 유화 물감으로 필름 보정을 하는 등 처참한 상황이었다고 해요.

속수무책이던 화가들은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는 그림을 그리기로 합니다. 고흐, 고갱, 세잔 3명이 힌트가 되었어요. 현대미술은 추상화하고, 해체하고, 왜곡하고, 사물이 아닌 내면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리면 다 죽는다 하고요.

그렇게 해서 고흐는 뭉크를 거쳐 표현주의로, 고갱은 마티스를 거쳐 야수주의로, 세잔은 피카소 등을 거쳐 추상주의와 입체주의로, 현대미술의 시조새들이 됩니다. 현대미술의 판은 이 세 명이 다 깐 거라고 해요.

정우철 도슨트는 그중에 제일은 세잔이라고 했어요. 피카소를 낳았거든요. 세잔은 자연물을 기하학 도형으로 추상화하는 작업도 했다죠.



피카소는 여러 면에서 천재였대요. 인성 면에서도 가스라이팅 천재였다고... 사귀었던 연인들이 하나같이 다 파멸하고 자살하고 뭐…

아무튼 그는 10대 때 이미 구상화를 마스터해서 일찍이 새로운 시도로 나아갔습니다. 미술에는 사물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구상주의와 알아볼 수 없는 추상주의가 있는데 피카소는 반추상이었다 합니다. 끝까지 형상을 포기하진 않았다고 해요.


피카소 <아티초크를 든 여인>


<아티초크를 든 여인>은 뾰족한 곳들이 눈에 띕니다. 저는 그리는 사람이 신나 보인다고 느꼈는데, 전쟁 시기의 공포를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로 표현한 거라고 합니다. 전쟁 시기엔 줄곧 저런 화풍이었다고 해요.

입체주의는 사물의 모든 면을 표현함으로써 본질을 드러낸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그게 왜 본질이냐. 정우철 도슨트는 주사위를 예로 들었어요. 주사위의 본질은 1부터 6까지 6면인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최대 3면뿐입니다. 주사위의 본질은 6면이라는 것이고, 그걸 다 드러내려면 주사위의 구조를 해체해야 합니다.

그래서 입체주의는 사물을 해체함으로써 본질을 보여준다고 해요. 이를 위해 피카소는 모델을 세워놓고 하루종일 둘러보기만 하면서 모든 시점의 모습을 외운 뒤 캔버스에 다 때려넣었다고 합니다.




피카소 같은 현대 화가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해방입니다. 피카소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데 4년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에는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어요.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 그림 그릴 때 형태가 왜곡되거나 색을 실제와 다르게 써도 뭐라 하지 않고 그냥 개성있는 그림이네 합니다. 그림은 자유롭게 그리는 거라는 전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이 전제는 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온갖 쌍욕을 앞서 먹어가며 만들어준 거라고 해요. 당시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놓고 욕먹을 게 두려워서 몇 년 동안 공개를 못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잭슨 폴록 <흑과 백 15번> / 윌렘 드 쿠닝 <무제 VII>


어느 분야나 지금 당연하다 생각하는 게 당연하게 되기까지 몸빵해준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덕분에 캔버스를 눕혀놓고 물감을 뿌리는 드랍 페인팅을 한 잭슨 폴록도 나오고, 누드화를 그리던 경력으로 에로틱한 추상화를 그린 윌렘 드 쿠닝도 나왔죠.

잭슨 폴록 작품은 의미심장. 그리는 과정이 퍼포먼스라 하죠. 그림 중에 사람 얼굴 같은 부분에 자꾸 눈이 갔어요.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은 설명 듣기 전에도 인체의 곡선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유화 붓자국과 결이 굉장히 곱고 아름답더라고요. 둘 다 몇천억씩 하는 작가들이라고 합니다.


앤디 워홀 <페터 루드비히의 초상화>










루드비히 부부 중 남편 페터는 이렇게 생겼네요.





그리고 추상주의의 종착역 미니멀리즘. 여기까지 오면 예술은 이제 건축이나 가구, 제품 디자인으로 향합니다. 또 아무도 안 했던 거 내가 제일 먼저 하기 경쟁이 됩니다. 요즘 대기업 임원분들이 현대미술 강의를 엄청나게 열성으로 듣는다고 해요. 가장 잘 알려진 미니멀리즘 덕후 사업가가 스티브 잡스라고.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 개념: 기대>는 캔버스를 초록색으로 칠해놓고 가운데를 칼로 북북 그어 아무도 생각 못 했던 캔버스 뒤의 공간을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이 작품에 본 관람객 단골 멘트가 “이런 건 나도 하겠다.”라는데, 그러나 이 바닥은 먼저 하는 게 임자.


모리스 루이스 <새벽의 기둥> / 하인츠 마크 <천사의 다섯 날개> /  루치오 폰타나 <공간 개념: 기대>


모리스 루이스의 <새벽의 기둥>은 작품으로 볼 때 색이 예쁘네 하긴 했어요. 그 정도. 그랬는데 굿즈샵에 와서 보니 정우철 도슨트 말이 뭔지 조금 알겠더라고요. 제품화됐을 때 제일 예쁜 건 미니멀리즘 작품이었어요. 도슨트도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은 바우하우스 출신이 많다고 했고. 미니멀리즘 예술은 상업/산업 디자인의 원천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수예술의 종착점인가.




현대미술은 어렵다, 모르겠다, 설명이 안 된다 등등의 이유로 정우철 도슨트가 좌절할 때 교수님이 그랬대요. 우리가 해석 못 하면 후대가 할 거라고요. 지금 우리가 피카소 시기나 르네상스 시기가 어땠다 하고 해석하듯이요. 예술가들은 사실 자기 작품의 의미를 모르고 본능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끄덕끄덕. 어떤 것에 대한 진짜 의의는 그것이 지난 후에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가 현대의 관점으로 고대, 중세, 근대로 시기를 구분하지만 실은 모든 시기가 당대인들에게 현대였듯이. 동시대라 보기 힘든 한계가 있겠죠.

아무튼 지금은 나올 거 다 나왔으니 각자 하고 싶은 거 하자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모든 문화예술 분야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요. 정반합의 합의 합의 합까지 다 나온 느낌이라 여기서 더 나올 반이 있을까 잘 상상이 안 가지만, 또 무언가가 발견되겠죠.


최근 전시 풍년인 대한민국. 관람객들이 영화 보듯이 전시를 많이 보고, 해외 유명 미술관들도 소장품을 잘 내준다고 해요. 업계사람 관점에 굉장한 호기인가 봐요. 미술관들이 원래 소장품을 쉽게 내주지 않는데, 대외적으로 높아진 K문화의 위상 덕이라고 해요. 2025년쯤엔 63빌딩에 퐁피두센터 분관이 생긴다고 하네요.

정우철 도슨트의 이야기에서 미술 전시계가 지금 무척 고양돼있는 분위기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올해 진행중인 전시도 몇 개 언급했는데, 132억 낙찰가의 주인공 김환기의 호암 전시도 보러 가야겠다 찜뽕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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