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적을 만들지 말 것
한 고등학교 친구가 최근에 출산을 했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어 급격히 친해지게 되었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졌다. 아마 앞으로도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돈독해질지 모르겠다.
사실 그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때는 같은 반, 같은 동아리를 하기는 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촘촘하고 복잡했던 학급 내의 관계망들은 다 흩어지게 되었고, 그 관계들은 각자 처한 공간이나 상황에 따라서 다시 맺어지거나 말거나 하게 되었다. 우리는 외고 독일어반이었었기 때문에 대학교 2학년,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고등학교 반 친구들이 같은 시기에 독일에 꽤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베를린, 본, 쾰른, 아우크스부르크 등 각자 다른 도시에 있었지만 나름 같은 반이었다고 초창기에 한 번 한 도시에 모였다. 그러고 또 각자 흩어져 지내다가 나머지 친구들은 한 학기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나는 한 학기를 더 있었는데 방학 중에 그 친구가 내가 있던 도시로 한 번 놀러 왔다. 그러나 그 관계도 잠깐이었다. 나도 곧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그 친구는 계속 독일에 남았기 때문에 연락이 잘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중간에 죽어있던 단톡방에 마지막 회장이었던 친구가 그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장례식 소식을 보내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몹쓸 일이지만,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일의 경중을 따질 줄을 몰랐고, 복잡 다난한 인간관계 속에 사람 귀한 줄을 몰랐다. 선약이 있었기 때문에 장례식에 갈 수 없다고 여겼고, 따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름 사회인이 되면서 나는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곤 했다. 그리고 너무 미안한 마음에 그 친구에게는 차마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딱히 연락할 일도 없었기도 했지만...
한 4년 정도가 지났을까, 내 생일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생일축하한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정말 의외였던 것이 그 친구로부터의 메시지였다. 나는 너무 놀랐고, 답장으로 그때 미안했던 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때 잘못했고, 너무 어렸고, 그 일이 너무 미안해서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고... 그럼에도 이렇게 축하 연락도 주고 고맙다고... 그런데 너무 쿨하게도 "괜찮아~"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은 경험이 있느냐 하면 바로 이 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를 용서해 주는 친구도 있구나, 싶었다. 축하와, 사과와, 용서에 이어 여러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또 몇 년 후에 그 친구가 한국에 오니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독일에서 만났던 그 친구들을 모아서 세 명이서 보게 되었다. 그 또한 사실 나름 의외의 조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나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또 일 년 후, 이번에는 그 친구가 독일인 남자친구를 데리고 내년에 결혼을 한다며 결혼 소식을 전하러 한국에 왔다. 작년에 만났던 조합에 남자친구들을 더해 한 번 더 만났고 결혼식 초대도 받았다. 나는 독일에서 열리는 결혼식이 궁금하기도 했고, 그 김에 독일에 한 번 더 추억여행을 갈 계기가 생겨 초대에 응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간 결혼식을 포함해 우리는 딱 5번 만났다. 평균 1년에 1번이 채 안 되게... 사사로운 연락을 주고받은 일도 많이는 없었다.
친구는 결혼을 하고 일 년 정도 후 임신을 했다. 처음 그 친구만 임신을 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몇 개월 후 나도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전하자 그 친구는 매우 자주 연락을 해오며 몸은 괜찮은지, 뱃속 아기는 잘 크고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영상 통화로 한 시간을 떠들기도 했다.
우리 윗 세대 때만 하더라도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대소사를 겪었다. 그러나 지금의 2030 세대는 그렇지 않다. 한 때 절친했던 또래 친구라고 하더라도 공부를 마치는 시기도 각기 다르고 그에 따라 취업 시기도, 연애와 결혼의 시기도, 임신과 출산을 겪는 시기도 많이 차이가 나는 게 다반사이며 또 누구는 그런 것을 아예 겪지 않기도 한다.
물론 진정한 친구는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생애 주기로 살지 않아도 무엇이든 자신의 일처럼 여겨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축하해 주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지금 당장 삶으로 겪어 내고 있는 친구의 이해나 공감과는 또 다른 것이다.
나의 절친한 또 다른 친구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 일 후 그전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역시 어머니를 여읜 다른 친구와 급격히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그 친구의 베프였다고 하더라도 어머니를 일찍 잃은 슬픔을 결코 뼛속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세월 인간관계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후회할 일도 몇 번 있었지만, 일련의 경험을 통해 지금은 좀 다른 태도로 살고자 하고 있다. 결코 적을 만들지 말 것. 적이 아니더라도, 어색한 사이도 웬만하면 만들지 말 것. 또, 무엇보다 사람 귀한 줄 알 것. 정말이지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그다지인 친구라 할지라도 언제 누가 나와 어디서 다시 만나거나, 혹은 인생의 커다란 일을 같은 시기에 함께 겪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