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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집에서 내쫓다

by Lanie

이제 곧 4개월이 되어가는 우리 아기는 참 효자스럽게도 밤잠을 참 잘 주고 있다. 참 신기하게도 아기는 알람도 없이 저녁 8시에 자서 새벽수유 1번, 그리고 아침 7시면 딱 눈을 뜨곤 했다. 생체시계라는 것은 아기일 때 더 잘 발달해 있다가 점차 퇴화되는 모양이다. 여하튼... 그런데 오늘, 아기는 평소보다 1시간 일찍, 6시에 눈을 떴다. 그러다 보니 첫 수유, 첫 낮잠시간 등 아기의 스케줄이 전부 1시간씩 당겨지게 되었다. 우리는 월, 수, 금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그 시간은 바로 2번째 수유가 끝나고 나서였다. 그때부터 준비하고 나가면 11시 반쯤 되어 산책 시간과 아기의 2번째 낮잠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오늘은 1시간씩 전부 당겨졌으니, 나는 "지안이 낮잠시간 맞추려면 오늘 산책 일찍 나가야겠다" 했다. 그런데 남편은 오늘 아기 눈이 부었다며, 아픈 것 같다고 오늘은 좀 쉬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내가 보기엔 아기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으며, 아까 기저귀를 갈 때 아기가 창밖을 보며 좋아하는 것이 엄마 마음에 얼른 데리고 나가주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이 오늘은 쉬는 것이 어떻겠냐는 그 제안은 내가 보기에는 본인이 힘들어서 핑계 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우선은 대충 수긍했으나, 기분이 급 좋지 않아져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괜히 더 열심히 세수를 하고 양치를 했다. 그런데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해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고,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것이었다. 급기야, 내가 왜 대체 아기 산책 나가는 것까지 남편과 의논을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한 생각이 들더니, 심지어는 '차라리 남편이 육아휴직을 안 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들기에 이르렀다. 신혼 시절 남편이 출근한 후 혼자서 나름대로 살림을 하고, 공부를 하며 나만의 생활을 영위하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육아에 있어서도 자율성과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러한 갈등상황에 닥치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안 그래도 화장실에서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나왔는데, 남편이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 아기를 낮잠 재울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게 왜 문제인가 하면 내가 볼 땐 아직 아기가 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활동도 많이 안 했는데 왜 벌써 재우냐"며 쏘아붙였다. 평소에도 아기가 졸리지도 않는데 재우려고 애쓰는 것은 참 미련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양육자도 힘들고 아기도 원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책 일 때문에 이미 화가 나 있고, 또한 그렇게 졸리지도 않는 아기를 재우려는 행동은 아까도 이미 그랬던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아까는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더더욱 화가 났다. 남편이 그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버렸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실은 '남편이 차라리 육아휴직을 안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기의 두 번째 입원생활을 마친 후 2박 3일을 친정에서 지냈는데, 입원 생활에다 친정 생활까지 해서 거의 열흘 간을 집 밖에서 잤는데도 집에 가기가 싫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가는 길에 시댁 들를까?'라는 제안까지 했다. 시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텐데 퇴원한 아기도 보여드릴 겸, 사실 더 큰 속내는 밥 한 끼 더 얻어먹을 심산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엄마가 된 이상, 더 이상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쉼의 공간이 아니라 일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편안한 공간이었던 집이 이제는 가장 힘든 공간이 되어버려 있었다.


역시 엄마는 내 한 마디에 열을 다 알았다. 엄마는 "남편이 집에 있어서 더 힘들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나랑 아기만 있으면 나는 그냥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먹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오히려 다이어트가 되니 더 낫기도 했다.) 남편이 있으니 세끼 밥을 제대로 챙겨주어야 했고 (매번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 먹는다 해도 다음 끼니는 무엇을 먹여야 할지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남편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많이 빠지는지 아기가 기어 다닐 바닥의 머리카락을 하루 종일 치워야 했으며, 집에 있으면서 또 티셔츠를 얼마나 많이 갈아입는지... 아기의 토라든지 똥이라든지 조금이라도 묻으면 (나는 안 묻히고도 할 수 있는데...) 계속 옷을 갈아입으니 아기 빨래보다 남편 빨래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육아휴직을 낸 남편 때문에 아기도 돌보고 남편도 돌보게 된 것 같았다.


또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라고 해서 내가 완전히 맘 편하게 내 시간을 갖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참 비효율적으로 육아를 했으며, 육아를 한답시고 챙기지 못하는 모든 집안일은 여전히 내가 해야 했고, 육아라는 게 힘쓰고 눈에 보이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남편이 챙기지 못하는 못은 일을 또 챙겨야 했다. 분유, 기저귀 등 소모품을 그때그때 주문해 놓는 것, 아기 발달에 따라 새롭게 필요한 물품을 알아보고 구입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병원을 알아보고 언제 갈지 정하고 예약하는 것, 아기통장을 개설하고, 그것을 위해 또 아기 도장을 주문하는 것 등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 같았으며 나는 때로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도 그런 일을 해야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름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한 초반이었다. 나는 씻고 소독해야 하는 젖병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집을 나섰었다. 왜냐하면 젖병을 씻고 소독하는 일도 육아에 포함되는 일이며, 남편이 집에 있으니 그것은 남편이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 등을 활용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령 아기가 누워서 안 자고 안겨서 자려고 한다면 아기띠를 매고 하면 되는 것이며,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싹 씻겨져 소독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젖병들은 내가 보고 간 그대로 쌓여 있었으며, 남편은 새 젖병이 없다며 젖병 한 개를 가지고 계속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이 때도 아무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나중에 부부싸움이 났을 때, 이 일이 상기되었는데 나는 이때 속으로 '집에 있으면서 저것도 안 해 놓다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은 동시에 '밖에 나가는 사람이 저것도 안 해 놓고 나가다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 최대한 집안일은 남겨놓지 않고 남편과 아기를 두고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면서 속은 점점 더 문드러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내가 원했던 일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졸업논문을 써야 하지만, 그래도 이제 더 이상 수업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시어머님께서 언제든 아이를 봐주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나도 일을 시작하고 어머님도 여건이 안 되실 때, 정말 필요할 때 그때 쓰라고 했다. 다만, 남편이 일전에 한 번 말한 적 있는, 이 시간을 활용해서 무언가 커리어의 도약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시간을 쓰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남편은 얼마간 고민하더니 육아휴직을 하고 커리어 도약을 위한 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시작한 남편이 처음부터 육아"만" 한 것은 아니었다. 틈틈이 공부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부는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육아를 하거나 쉬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남편 본인 커리어에 대해서는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건드리지 않았다. 괜히 여자가 재촉하거나 불안감을 내비쳐봤자 좋을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정말로... 정말로 최대한 남편의 선택과 의견과 행동을 존중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돌이켜보면 남편도, 나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어차피 공부도 못하고 육아만 할 거라면 나라도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전혀 그러지 못했고 나는 비로소 저 산책 사건이 일어난 날 남편에게 '차라리 복직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남편의 육아 참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고는 말 못 하기에, 그 말을 내뱉고 나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조심스러웠던 그 말이 터져 나온 것이다.


남편은 처음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괜히 화를 낸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나가고 나면 내가 혼자서 육아와 집안일과 공부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물론 그렇게 자신은 없었다.) 나는 그럼 남편이 육아를 담당할 거면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적어도 직장인들이 일 하는 시간만큼 나가서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아니라 시어머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 이 거였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일이든 공부든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 우리가 지금 시간을 이렇게 쓰는 게 맞냐는 것이었다. 남편은 나를 이해하기 무척 어려워했지만, 내가 계속해서 답답해하자 어느 순간 딱 이해를 하더니 갑자기 상냥해지더니 공부를 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업로드하는 이 시점, 우리 아기는 5개월을 지나고 있으니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일이었다. 요새는 월, 수, 금은 남편이 나가서 공부를 하고, 화, 목 시어머니 오시는 날에는 내가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은 요새 한다던 공부에 불이 붙었는지 집이나 밖에서도 틈만 나면 공부를 하고, 육아퇴근을 하고도 밤늦게까지 열심히다. 내가 알던, 내가 반했던 그 사람으로 돌아온 것 같다. 솔직히 육아를 열심히 하는 남편보다 자기 공부나 일을 열심히 하는 남편이 더 듬직하고 더 멋있다.


어제는 나보다 2개월 먼저 출산하고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가 아기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 친구는 분명 임신했을 당시만 해도 남편 직장이 집에서 더 가깝고 육아휴직도 더 편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이 더 길게 육아휴직을 하고 주양육자가 되기로 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친구는 남편은 이미 복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해보니까 남자들은 안 되었던 것이었다.


남편들, 아빠들은 "크아아앙"하며 아이를 더 잘 웃기기도 하고, 아기를 번쩍번쩍 들어주며 더 재미있게 놀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기저귀를 갈고, 그때그때 아기 피부 상태를 체크하며 로션을 발라주고 하는 등 세심하고 자잘한 일들은 잘 못 챙기며, 하더라도 엄마들은 그냥 지나가면서 쓱쓱 하는 일을 엄청 대단한 일 하는 것마냥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한다. 무엇보다 육아와 집안일은 세트로 가야 하는데, 그걸 같이 못한다. 물론 유튜브에는 육아를 하며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남편들이 많이 등장한다. 생각해 보니까 그들은 "그러니까(특별하니까)" 콘텐츠가 되기에 유튜브를 하는 거였다. 육아와 살림은 엄청난 멀티플레이가 필요한 일인데, 현실 세계의 보통의 남자들은 그 "멀티"가 잘 안 된다.


내가 "남자들이 밖에서 돈 벌어와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육아랑 집안일 못해서야." 하니, 친구가 "맞아, 맞아!" 한다.


기사로도 나온 걸 보니 한두 집 얘기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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