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의 전시 중 <쇼핑하는 여인>을 보고
하루 종일 혼자 육아를 하는 시간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기와 1시간은 놀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10분이 지나있는 등 시간이 참으로 안 갔다. 나는 보고 싶던 친구들에게 SOS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와달라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육아를 하면 그래도 시간이 잘 갔다. (얘들아 고마워. 너희들 육아할 때 내가 꼭 도와주러 갈게!)
한 친구는 오랜만에 연락해 보니 아직 취업준비 중인데 자꾸 떨어져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다고 했다. 도움을 좀 받아보려 했는데,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친구구나, 싶었다. 너의 마음이 편할 때 언제든 연락 줘, 하고 마무리를 지었는데 바로 다음 날, 내게 시간이 되냐며 연락이 왔다.
시어머님이 오시는 날 아기를 두고 친구가 함께 보자고 한 전시를 보러 갔다. 삼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론 뮤익(Ron Mueck)의 전시였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러 삼청동으로 갔다. 오랜만에 혼자 서울 한복판에 있으니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좋았다.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싶었다. 변두리 우리 동네와는 다르게 길도 널찍널찍하고 그야말로 전통과 현대, 도시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매력적인 이 도시의 풍경이, 고작 버스 20분을 타고 오니 펼쳐졌다.
론 뮤익은 1958년 호주 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현대 조각가이다. 그는 인체의 피부의 주름, 솜털, 정맥, 표정 등을 실제보다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크기는 실제 크기가 아닌 실제보다 축소되거나, 혹은 확대되게 표현한다. 그의 인물상들은 대개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거나, 내면의 감정을 응시하게 만드는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관객은 그 앞에서 멈춰 서서 자신을 투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러 작품 중 <쇼핑하는 여인(Wonam with shopping)>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품 속에 아기를 안고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평범한 여인은 실제보다 작고 왜소하게 표현되었다. 작품 해설 중 이런 문구가 있었다.
“아기의 작은 손가락은 간절하게 여성의 가슴 위에 얹혀 있고, 그녀의 시선을 붙잡고 싶은지, 고개는 뒤로 젖혀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생각에 잠긴 채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 작품 해설 중
이 해설을 보고 나니 내가 작품 앞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물론 여성은 아기를 정말 사랑할 것이다. 다만 그 순간 그녀는 이미 많은 짐을 들고 있다. 장바구니뿐 아니라 삶의 무게, 책임, 피로 등.... 그녀는 아기를 사랑하지만, 아기를 사랑하는 일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시간이 사랑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허락된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그러나 현실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들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잠시 내려놓는다.
작품에서 여인이 아기의 눈을 바라보고 웃어주면 좋겠지만,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하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세요.", "미소 지어 주세요.",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세요."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의 정서, 안정, 애착 형성, 뇌 발달을 위해 분명히 도움이 되고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작품의 여인은 이미 장을 봤고, 무언가를 해냈고, 또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잠시 감정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이다.
론 뮤익은 <쇼핑하는 여인> 속 여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를 아주 작고 정교하게 만들어 세상 한복판에 놓아두며 사랑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세계를 조용히 고발한다.
나는 그 작품을 보며 그 여인과 동일한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자유로이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전시회를 감상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실 아기는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기는 나와 하루 종일 보낸 날은 혼자서도 잘 잤고, 내가 종일 밖에 있다 온 날은 유난히 칭얼대며 새벽에 더 많이 먹고 엄마 품에서 자려고 했다. 나도 매일 종일 아기만 바라보고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나 아이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그 여인처럼, 작품을 보고 있는 그 순간 나 또한 사랑을 잠시 미뤄두고 나를 돌보기 위한 선택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