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통이의 하루 | 기능의학병원을 가다 - 3편
*소설: 섬유근육통 환자의 치유 성장기입니다. 근통이의 하루 3편 - 기능의학병원을 가다
그러나 정신의 차려 바라본 현실은 어둡고 황량한 사막을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로 또로 똥~ 또로 또로 똥~"
약 먹는 것을 자꾸 잊어버려 핸드폰에 설정해둔 쇠를 긁는듯한 차가운 알람 소리에 나의 평온해진 감정을 할퀸다. 아무리 경쾌한 알람음으로 바꿔보지만 알람 소리에 불현듯 덜컥 내려앉는 가슴은 매한가지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한 봉지 가득 든 약들을 보니 가슴이 턱 막혀온다. 아침, 점심, 저녁이라고 친절한 표시들이 끝을 모르게 줄줄이 이어진 모습은 앞으로의 고단한 삶의 불확실함이 새삼스럽게 다시 느껴진다.
애써 꽉 막힌 가슴을 큰 숨을 내쉬며 부풀리며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아이의 등하교나 학원에 나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만 있다 보니 나의 관계는 인터넷의 알고리즘이 친절하게 안내해준 대로 공허한 연결뿐이다.
시릴 정도로 냉정하고 정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랜선 관계에도 이제는 지쳤다.
그래서 환우회도 가입해놓고 방문하지 않는다.
물론 몸이 아파서 확인해볼 겨를이 없기도 하다.
꿈의 마지막 기억인 BDJ의 컴퓨터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갑자기 떠올랐다.
‘섬유근육통 치료 후기’
검색창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에 마우스를 올려 조심스럽게 검색어를 넣어본다.
물론 대부분 열어본 페이지고 병원이나 한의원, 영양제 판매회사들의 홍보내용뿐인 줄을 알고 있지만 혹시 모를 기대감에 Next를 연신 눌러본다.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보인다.
‘섬유근육통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진실 4부’ 뭔가 이목을 끌기 위한 제목이라 의심부터 되지만, 제목 아래쪽에 섬네일처럼 간추린 글에 ‘대학병원까지 어렵게 갔는데 섬유근육통의 유일한 치료법을 듣고 나서 헛웃음만 나와요!’라는 표현이 나를 확 잡아 끈다.
우연히 보니 완벽한 숫자를 의미하는 3 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뭔가 느낌이 좋다.
나는 평소에 딸아이와 아무 의미 없는 숫자에 이유 붙이는 놀이를 즐겨한다.
다들 이렇게 놀지 않는가!
"올해 몇 학년 몇반됐어? 4학년 3반이요. 그럼 엄마 나이는 몇 살이지?"
"43살이요."
"와~ 엄청 운이 좋네. 똑같은 4. 3 이네. 자~ 그럼 4+3은 7. 7은 행운의 숫자잖아!" 이런 식의 놀이말이다.
이런 것처럼 오늘의 3페이지에서 발견한 글은 완전한 숫자의 3이자 43세의 3 모두가 일치하는 행운의 글일 임이 분명하다.
‘구글 검색 결과이니 온전한 광고성은 아니겠군…’ 괜히 한번 피식 웃어본다.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진실 4부라니 1부부터 얼른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미확인 게임 유니크 아이템을 까보는 심정이랄까?
제발 대박이어야 할 텐데...
글이 도입부부터 대담하다. ‘단언컨대 당신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고 섬유근육통에 대한 인식을 바꿔 새로운 돌파구가 제시될 것’이라고 천천히 글을 따라와 보라고 한다. 매번 속아왔지만 ‘이건 또 못 참지’라는 생각에 구름 낀듯한 뇌를 애써 깨워본다.
1부부터 4부까지 시간이 삭제된 듯 순식간에 읽어버렸고 마음속에는 지금은 근거가 없지만 희망과 자신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우리 편'이 생긴 기분이다.
보통 광고쟁이들이 글을 올릴 때는 '자~ 여기 얼마짜리 무엇이 있어요. 도움될 거예요 사보세요!'라고 판매를 위한 설득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진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글을 읽는 내내 저자는 나에게 '다들 그래요. 당신을 이해해요. 우리 함께 해봐요.'라고 말하듯 전문적인 지식을 강요하며 압도하기보다 신뢰와 우정 속에 대화를 나눈 듯한 몽상을 경험했다.
그런데 4부 말미에 5부부터는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고 했는데 4부가 올라온 날짜를 보니 한참이 지났는데도 5부가 올라오지 않고 다른 주제의 글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기다릴게 아니다! 내가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뭔가에 강하게 동기 부여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뭔가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
어린이 신문을 보기 위해 구독하는 쌓여만 가는 일간지의 오늘의 운세는 '가렸던 빛이 환하게 드러나는 시기'라고 나의 행운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혹시 BDJ가 퓨처캐스팅에서 강조한 미래를 위한 원동력에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를 찾는 단계일까?
BDJ는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설계했다면 주변에게 알리고, 도움을 주고받을 팀을 만들고, 전문가를 만나라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을 죽 늘어뜨려보고 1/2, 1/4로 나누어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를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을 바뀐 미래 스토리를 위한 월요일로 삼고 실행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벌써 전문가를 만나는 단계까지 왔다는 생각에 살짝 기분 좋은 긴장감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건강미래를 위한 팀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멀리까지 병원을 찾아가는 길은 지난하다.
너무나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라 더더욱 발걸음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대기실에서 장시간의 기다림, 짧은 진료, 처방전은 공식과도 같다.
사실 원인도 치료법도 없다고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고통스러움은 매번 적응되지 않고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솔직한 심정은 당장 병원비부터 걱정이다. 지금까지 병원, 한의원, 접골원, 단식원, 기도원, 마사지 샾까지 더 갈 데가 없을 정도이고, 좋다는 영양제와 식품도 끊임없이 먹어오면서 도대체 얼마가 들었던가.
얼마 전 가본 병원에서 먹고 있는 약과 영양제를 한번 확인해보자고 가져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근통씨. 제가 도움이 되는 것들로만 골라줄 테니 현재 섬유근육통을 관리하기 위해 먹고 있는 것들의 모두 가져와 보세요."
"안돼요!"라는 대답에 의사는 날을 세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호의가 단칼에 거절당한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사실 너무 많아서 다 들고 올 수 없다는 뜻이에요!"
우리 집에는 결혼할 때부터 식탁, 책상, 탁자 등은 그 당시 왜 그랬는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큰 크기의 가구들로 혼수를 준비했었다.
여러 번의 이사에도 살아남은 커다란 탁자와 식탁들이 매번 새로 세팅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양제, 약통, 건강보조식품, 누군가 먹으라고 가져다준 가루 통들, 애들 간식, 과자 등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제로 밥이나 국그릇을 놓을 자리는 한참이 부족해져 버린다.
이러니 한가족 전체 식사시간의 모습이 서로 마주 앉아 오손도손 맛있게 먹는 풍경이 아닌, TV 드라마 촬영처럼 한쪽으로 일렬로 앉아 그것도 자리가 마땅치 않은 사람은 서서 먹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는 게 일쑤이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이토록 먹지도 않는 가득한 영양제와 약들 보조제로 지출한 비용이 만만치 않은 정도를 넘어서 기둥뿌리를 흔들고 있을 정도이다.
식사 후 식탁을 정리할 때 가끔은 미안함을 넘어서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더욱더 문제는 이제는 모든 병원이 의심스럽기만 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섬유근육통 환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섬유근육통은 원인도 치료법도 현재까지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고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새롭게 뭔가를 알아보고 시작한다는 것이 생떼 쓰듯 억지를 부리는 아이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또한 이러한 나의 행동들이 가정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단순한 일상만을 염원하는 내 마음속의 외침이 현실에서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판다.
많은 상념이 나의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결국 병원 문 앞까지 와버렸다.
출근시간을 피해서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은지 두대뿐인 엘리베이터 앞에 늘어선 줄이 한 번에는 못 탈 것처럼 생각되었다.
'띵'하고 열린 엘리베이터에 하루의 빠른 일과를 증명하듯 사람들이 순식간에 올라타고, 방금까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뒤돌아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느껴진 그들의 시선에 가슴이 다시 조여 온다.
불안하고 싸늘하다.
'야~ 나 바빠 타려면 빨리 타!', '한번 타보세요. 자리 충분해요!'라는 실제 대화는 없었지만 그들의 눈은 이렇게 이야기했던 게 분명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여기서부터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에서 삐~하는 과적 경고음을 들을 부담을 안고 몸을 사람들 사이로 던져버렸다.
'삐~' 마음속에서 타기 전부터 울렸던 경고음은 다행히 현실에서는 없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가 조용히 문을 닫더니 9층을 향해 출발했다.
내 마음은 대항해시대에 미지의 바다에서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의 심정이랄까!
에라 모르겠다. 이제 도착했다.
자율신경 기능의학병원에 나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이고... 데스크 앞에 누워있는... - 4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