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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비 Jul 26. 2024

어느 날 해외축구에 스며들었다

해외 축구 입문


축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축구 경기는 살면서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내가 본 첫 축구 경기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뭔지도 잘 모르고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었고, 몇 강인지도 모를 경기를 보았다. 그때의 축구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조차도 가슴 뛰게 만드는 굉장한 열기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마련이고, 축구도 결국 4강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후 몇몇 국가대표 경기를 봤지만 점점 시들해져 갔고, 20대 중후반이 되면서는 아예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내가 해축을 보게 된 건 규칙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애인은 없고, 친구들을 만날 에너지는 부족하고, 직장을 다니느라 내게 온전히 주어진 시간은 하루 4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날들. 아마 나는 하루하루가 무척 지루했던 것 같다. 똑같이 반복되는 직장생활, 내게는 아무런 활력이 없었다. 남는 시간에 유튜브 보는 게 그나마 낙이었지만 그것마저 재밌어서 본다기보다는 시간을 죽이는 용이었다. 


내가 그때 손흥민선수를 알고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유튜브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축구를 잘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그게 다였다. 그런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내게 계속 '손흥민'선수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 그때가 2021년이었다. 해축을 보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손흥민이 <득점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축구화 모양의 금색 트로피를 받은 21/22 시즌이었다. (해외축구는 보통 9월 즈음 시작해서 다음 해 여름 전에 끝나기 때문에 꼭 저렇게 두 가지 년도가 붙는다.) 물론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손흥민 선수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정도의 감상만 받았다. 이 흥미로운 뉴스들은 지루한 일상을 넘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으로 쓰기에 적당했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해외축구를 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흥미로운 뉴스거리일 뿐이었으므로 나는 오로지 축구 관련 유튜브 채널 영상만 봤다. 도대체 무슨 경기를 그리 자주 하는지 하루가 다르게 다른 영상들이 올라왔다. 퇴근길과 퇴근 후 자유시간에 새로이 올라와있는 기분 좋은 뉴스는 점점 내 마음도 설레게 만들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클럽들의 경기결과와 손흥민 선수의 득점에 점점 더 신경이 기울었고, 나는 어느새 회사 점심시간에도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경기를 처음에 봤는지 기억이 나면 좋으련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경기는 당연히 손흥민 선수가 소속돼 있는 '토트넘'이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손흥민 선수가 득점왕을 차지했을 때 실시간으로 본 경기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처음 본 경기가 재방송이었을 것이다. 마치 방학을 맞이한 아이의 기분으로, 유료결제를 하고 보고 싶었던 경기를 찾아보던 그때. 아스날전과 노팅엄 '다시 보기' 경기를 보고 왜 느껴지는지 알 수 없는 환희의 감정만 기억날 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경기를 축구경기채널을 무려 결제까지 하고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손흥민 선수가 득점왕을 차지한 것을 안 후였으므로, 만약 손흥민 선수가 득점왕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해외축구를 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손흥민 선수의 득점왕이 나 같은 (축구에 관심 없던) 일반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2002년에 처음 축구라는 스포츠를 알게 되고, 2022년이 돼서야 해외 축구를 보게 되었다. 무려 20년의 시간이 그 사이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내가 해외 축구를 보게 된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해외축구라는 것이 나의 세계와 너무 동떨어진 별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손흥민'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나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웃기게도 독일에 살았을 적엔 전혀 축구라는 것에 완전히 무관심했기 때문에 경기 한 번 본적 없었다. 분데스리가(독일 프로 축구 리그)라는 것도 어렴풋이 듣기만했지 뭔지도 잘 몰랐으니까. 그게 지금은 약간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한 번쯤은 가볼만 했을텐데.


지금은 벌써 해외 축구 3년 차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해외 선수들을 쫓아다니거나, 공항 입국 시에 찾아가거나, 유니폼을 사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간간히 라이브 경기 또는 경기 다시 보기만 할 뿐인 나는 철저한 라이트팬일 뿐이다. 거기까지가 나의 선이지만 이제는 해외축구가 내 취미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게 됐다. 언젠가는 경기를 보러 유럽까지 가고, 유니폼을 사고, 이벤트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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