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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잎의노래 Jun 14. 2024

지하 궁전, 그 비밀의 베일을 벗기다

에레바탄 사라이


이스탄불에는 지하 궁전이 있다고.

웬 지하궁전?

궁전이 지상에 있어야지 웬 지하에 있다는 걸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이스탄불의 여행 명소로서 지상 궁전들은 여럿 있다. 오스만 제국시대의 정궁이었던 토프카프 궁전과 오트만 제국의 최후의 상징인 돌마바흐체 궁전이 유명하다. 근데 이 궁전들은 모두 지상 궁전이다.

     

그러면 유명한 이 궁전들을 제치고 또 유명한 궁전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지상 궁전처럼 아름다운 궁전이 지하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놀랍게도 분명히 있다. 그것도 지하에, 궁전스러운 건축적 미가 돋보이는 웅대한 구조물이 이스탄불 역사 구역 발 밑에 숨어 있다. 아야 소피아 성당 남서쪽 방향으로 근접한 위치이다.     



물론 궁전이라지만 통상적인 궁전은 아니다. 화려하고 신비롭지만 왕족들이 거주하는 왕궁 형태는 아니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지하 물 저장소이다.      


생뚱맞다. 이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이 물 저장소였단 말인가. 그렇다. 바실리카 수조, 공공 물 저장소이자 공급처였던 것이다.     


비잔틴 제국 시대의 건조된 물 저장소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왕국에 물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스탄불의 가장 큰 저수조로서 규모는 만 평방미터의 크기로 8만 입방미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여기에 이스탄불적인 매력이 숨어있다. 물 수조라면 그냥 물 공급 기능에만 충실한 단순한 건축 구조물이면 될 텐데. 왜 이토록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들을 가득 배열하고 기둥마다 제 마다의 특색있는 예술 조각을 했을까.      



우리의 사고와 다른 그들의 가치관이 놀랍다. 그들에겐 제국의 수도를 건설하는 데에 가장 긴요한 것은 물이었고 따라서 물공급망을 중요시 했던 것이다. 특히 건조한 지역권인 중동에서 물이야 말로 생명 유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조는 단순 물 저장소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쏫아부을 수 밖에 없는 신성한 공간인 것이다.     


지하 궁전인 ‘에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nici)’는 곧 ‘바실리카 시스턴(basilica cistern 공공 물저장소)’이다. 예레바탄은 이스탄불에 있는 동로마 제국 시대의 지하 저수조였다.     


에레바탄 사라이는 ‘땅에 가라앉은 궁전’이란 뜻이다. 동로마 제국 시절에 물을 저장하던 곳이었다. 제국시대 대도시 건설에 필수적인 요소는 물이다. 물을 잘 다스리는 자가 제국을 운영할 수 있었다.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치산치수’라 해서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을 국가 경영의 으뜸 관심사였다.



물은 제국의 탄생과 성장에 필수적인 동력이다. 물이 없으면 도시가 탄생할 수 없고 큰 도시가 없으면 제국이 발흥하기 어렵다. 이 저수조는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짓기 시작하여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완성되었다.     


이스탄불에는 발렌스 수도교가 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스에 의해 만들어진 수로이다. 동로마 제국 시절에는 250km를 떨어진 수원지에서 끌어온 물을 콘스탄티노플에 공급했다. 지하궁전이 완성되자 이곳에 물을 저장했다.     


지하 궁전에는 각기 다른 형태로 아름답게 조각된 336개의 둥근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천장을 떠받들며 세워져 있다. 기둥들의 형태와 모양이 다른 이유는 동로마 시대에 기존의 건물 기둥들을 이용해 건설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변에 있는 신전 등의 기둥을 징발해서 사용했다는 추측도 있다. 일종의 기존 건물 건축 자재를 재활용한 셈이다.     

 


내부 기둥을 보면 동일한 양식의 기둥은 하나도 없다. 제각기 특색있는 다양한 양식들의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형태가 제 각각이고 모양새도 개별적인 기둥들을 짜임새 있게 통일적으로 축조했다. 그래서 인지 마치 전체 건물 기둥들이 계획적으로 구축된 것 같다. 내부 공간 규모는 길이가 140m, 폭이 73m, 높이는 9m에 달하며 아래 부분에는 물이 차 있다.     


건축물 내부의 웅장함과 수려함을 보니 단순히 지하의 물 저장소 일뿐이지만 지하궁전이라 부르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특히 여기에서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지하궁전을 떠받치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돌이다. 수많은 기둥 중에서 메듀샤의 머리 조각을 받침돌로 이용하여 세운 기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옆모습 머리로 기둥을 떠받치고 있고, 또 하나는 밑으로 머리를 두고 기둥을 떠받들고 있다.

     


메두사는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괴물이다. 메두사의 마녀 얼굴은 공포스러워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는 즉시 돌로 변해 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왜 메두사의 형상이 여기에서 주춧돌로 자리잡고 있을까. 여기에는 깊은 종교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다른 건축물에 있던 주춧돌을 빼 와서 여기에 사용한 것 뿐일까.     

     

메두사의 머리를 왜 이렇게 옆으로 대거나 뒤집어 놓았을까.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자 이교도의 상징이기도 했던 메두사를 내심 응징하고 싶었던 것일까. 평소 메두사 전설에 겁을 먹은 시민들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건축 기둥 밑받침 돌로 단단히 눌러 놓은 것일까.     



아니면 건축 공학적으로 이런 형태로 기둥을 축조해야 구조물이 안정감 있게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일까.      

비록 미스테리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에게는 은근히 그 많은 기둥 가운데 메두사의 기둥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가 은근히 흥미를 돋구듯이.     


메듀샤의 머리는 어두운 궁전 내부에 붉고 푸른 조명을 받아 더욱 음산하면서 섬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여름에 지하 궁전을 방문하면 딱 좋다고 말한다. 지하 공간이라 서늘하기도 하지만 지하궁전의 음산한 분위기에 등골이 시원하기 때문이란다.     


수많은 기둥들이 장대하게 종횡으로 늘어선 가운데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조명으로 빚어진 지하 궁전은 방문객들에게 신비로운 미적 경관을 선사한다. 어둠의 배경 속에서 은은한 조명 빛으로 드러나는 구조물의 전경에서 서미스터리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스탄불 여행지로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곳이다.   

  


지상 위에 유명한 아야 소피아 성당과 술탄아흐메트 모스크가 있는 이 지역 발 아래에 웅장하고 멋스러운 지하 궁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설계자들은 물 저장소를 단순 기능 목적 구조물로만 치부하지 않았다. 실용 위에 예술 감각을 더해 건축물의 미학을 구현했다. 우리의 사고로 헤아리기 어려운 대상을 향한 예술혼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에레바탄 사라이는 이스탄불 역사 지구의 한 축으로서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이스탄불은 문화도시로서 행복하겠다.

이스탄불의 문화 위상을 높이는 또 하나의 화룡점정인 지하 궁전이 있으니까.     

 


한갓 물 저장소를 왕궁같이 축조한 발상이 신선하다. 하기야 물만큼 인간 삶에 중요한 요소가 어디 있을까. 따져 보면 물의 가치는 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왕의 통치는 백성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겠지만 물의 존재 여부는 생명체의 존속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서였을까 이들은 물 저장소를 귀히 여겼고 최고의 건축으로 화답했다.      


안중에도 없었고 무관심에 방치된 집 물탱크.

여기에 예쁜 수채화라도 그려넣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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