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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잎의노래 Jun 15. 2024

‘터키 100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 100년’.

이스탄불을 거닐다 보면 심심찮게 보는 문구이다.


길거리와 관공서, 건물, 주택가 도시 곳곳에 ‘터키 100년’이라는 포스터나 현수막이 걸려있다.

포스터에는 한 인물 사진과 터키 국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터키 100년’의 의미가 무엇일까.

포스터 속의 인물은 누굴까.

이 인물은 터키의 역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던가.     

 


터키(튀르키예)는 한 때 동유럽과 그리스, 북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영토를 거닐었던 오스만 제국이었다. 위세가 하늘을 찔렸던 오스만 제국도 20세기 들어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제국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대 무스타파(케말 파샤, 케말 아타튀르크 모두 동일 인물이다)는 등장한다.     


무스타파는 무기력해져 가는 오스만 제국의 무능력을 질타했다. 술탄의 무능력하고 종교 이념에 치우친 복고적인 통치를 비판했다. 그는 위기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비밀 조직 ‘청년투르크당’에 참여한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은 한 축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연합군에 대항하여 다른 축인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 동맹이 되어 참전한다. 이 전쟁에서 케말 파샤는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일전을 벌인 갈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한다. 당시 세계 최강 영국군을 물리치면서 일약에 터키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때 지도자란 의미의 ‘파샤’라는 칭호가 붙여진다. 이른바 ‘케말 파샤’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오스만 제국은 치욕스러운 항복을 맛본다. 패전후 당해야 하는 패전국의 수모와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하고 처절했다. 1920년 굴욕적인 ‘세브르’ 조약이 체결된다. 여기에서 오스만 제국은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국토는 연합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패전국의 오명을 쓴 신세로서 광대했던 오스만 제국의 영토들이 분할되고, 빼앗기고, 떨어져 나가고, 축소되고 있을 때 케말 파샤는 저항한다. 백척간두의 국가 위기 상황에 온 몸을 던져 대항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케말은 가혹한 패전국 배상 체제를 거부하고 국민군을 조직하여 독립 투쟁을 전개한다.

      

케말 파샤 중심의 터키 민족주의 세력의 강력한 저항으로 1923년 로잔 조약이 새롭게 체결되고 승전국들은 일정 부분 터키의 영토를 인정하게 된다. 오늘날 터키 영토의 모습이다.



케말 파샤를 중심으로 한 국민군의 필사적인 항전은 굴욕적인 피지배 국가로 전락시킨 세브르 조약을 3년여 만에 터키의 영토권과 주권을 보장받는 로잔 조약으로 탈바꿈시켰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선포되고 무스타파 케말 파샤는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이후 15년간에 걸쳐 강력한 일당 독재 체제로 사회, 문화, 경제적인 근대화를 추진한다.     


케말 파샤는 정치 체제를 종교 중심에서 세속주의 정치 제체인 공화제로 바꾼다. 종교 정치를 일삼았던 술탄 중심의 지배 체제를 개혁하였다. 술탄제(이슬람 국가의 정치 지도자)와 칼리프제(이슬람 국가의 종교 최고 권위자)를 폐지했다. 사회 운영의 기초가 되는 법체계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아니라 서구의 대륙법을 따르는 공화제 법률을 택했다.     



국민 화합을 위해 국가 종교를 없애고 다양한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이슬람에서 소외되어 왔던 여성 인권 보장에도 앞장섰다. 1926년에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남녀평등권을 제정했으며,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 부여다.     


1928년부터는 터키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지하고 현재와 같은 로마 문자 표기법을 상용하기 시작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아랍식 남성 모자인 페즈 모자 착용도 불허하는 등 서구식 복장을 강제하기도 했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다른 이슬람 국가권보다도 이곳의 여성들이 복장이나 행동들이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스타파 케말의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었다. 한편으로는 터키 민족주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쳤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 독재력을 행사했고 터키 민족주의에 대항하는 소수 타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기틀이 잡혀있지 않은 국가 상황에서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좌고우면 하지 않는 저돌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위기의 국가 상황에서는 유약하지 않은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권위주의적 통치도 양면성을 지뉜다. 민주주의가 만개한 사회에서는 악덕이지만 사회적 기반이 초토화된 곳에서는 현실을 타개하는 유용한 통치 리더십이 될 수 있다. 직면한 그 시대의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통치 행태를 재단하면 비현실적인 관념론에 빠질 수 있다.     


성숙된 민주주의는 제반 여건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는 구호로서 달성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인 토대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인 구비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는 민주주의 담화는 허상이 되기 쉽다. 민주주의는 완성체가 아니다. 진행형이다. 각 국가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는 좀 더 좋은 민주주의를 해 나아가는 과정에 항상 놓여있다.     



이제 막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는 미성숙된 국가 상황에서, 제반 제도적 토대가 빈약한 초기의 국가 형성 조건에서, 사회 문화적인 여건이 제대로 구비되지도 않은 미숙한 사회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 구호만 부르짓는다면 그 울림은 공허하다.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고 제반 여건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여기에 걸맞 민주주의 담론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완성된 결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에는 공과가 있다. 공이 제 아무리 많은 사람일지라도 과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냉철히 평가하는 통합적 안목이 필요하다. 공의 잇점은 널리 수용하고 과의 잘못은 의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케말 파샤도 강력한 리더십과 독재로 사회를 개혁하면서 반대파들을 강압적으로 탄압했다. 과오 분명히 범했다. 그럼에도 터키 국민들은 절체절명의 역사 상황에서 오늘의 터키 공화국의 기촛돌을 놓은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민족주의 대통령에 대한 최고의 예우로서 명예스러운 호칭 ‘아타튀리크(국부)’를 부여했는 지도 모른다.     



케말 퍄샤는 부여된 칭호로 인해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의 본명은 ‘무스타파’였다. 10대에 ‘케말’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게 된다. ‘무스타파 케말’이 되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30대에는 지도자라는 ‘파샤’ 호칭을 얻어 ‘케말 퍄샤’라고 불렸다. 말년에는 터키의 현대 국가 형성에 이바지한 지대한 공로로 그에게 '국부',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타튀르크’라는 명예로운 존칭이 부여된다. 그래서 ‘케말 아타튀리크’로 호칭하기도 한다.      


그의 이름의 변천은 터키의 역사적인 격동과 엮여 있다. 혁명가로서, 독립운동가로서, 새로운 국가 체제 건설자로서 역경을 거쳐온 그의 인생 역정은 곧 터키의 현대사를 웅변하고 있다.     

 

명실공히 터키에서 무스타파 케말은 국가의 국부로 추앙된다. 현대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여 오늘날 터키를 탄생시킨 일등공신다.      


터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터키 100년’ 포스터. 케말 파샤의 사진과 터키 공화국의 국기를 조합되어 디자인된 ‘터키 100년’. 이 포스터는 이제 말하고자 한다.     

 


이슬람의 신정체제를 종속시키고 세속적인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1923년을 깃점으로 이제 100년이 되었다. 포스터는 터키 공화국 수립 100년을 경축하면서 국가 자존심을 상기하자고 말한다.    

 

포스터는 또 하나를 더 증언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그는 이 험난한 역사적 과정에 온몸을 불살랐다고.

오늘날 터키 역사의 중심에 그가 우뚝 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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