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색채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도시 서사를 만들어 낸다. 브라운, 블루, 레드, 옐로, 블랙, 화이트 갖가지 색들이 조화되어 도시 풍경은 기품 있다.
이스탄불의 로컬 색채는 우선 식단에서 빛난다. 음식(food) 차림새는 먹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볼거리이다. 재료 본색들의 선명한 색채들이 음식 색감들을 농밀 짙게 한다. 눈 맛을 부추기는 음식 색감은 진작 입맛을 달군다. 이스탄불의 식단은 갖은 재료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들을 뽐내며 어우러진 색의 향연장이다. 요리 색감에서 운치를 감상하노라면 식당은 곧 작은 미술관이 되고 식단은 한 편의 그림이 된다.
모스크의 색채는 이스탄불의 정체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베일이다. 미려한 색상의 화강함 석재와 갖가지 문양이 새겨진 타일로 지어진 모스크가 품어내는 깊이감 있는 색채는 도시의 색상을 품위스럽게 한다.
‘블루모스크’는 색 때문에 탄생한 모스크 애칭이다.
블루모스크에 들어서면 회색빛과 푸른빛이 조화된 청회색이 사원을 감싼다. 본래 사원 이름은 술탄아흐메트 모스크이다. 푸른빛의 타일을 많이 사용한 사원 건축은 모스크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은은한 블루 빛으로 물들였다. 말 그대로 블루모스크다.
이곳에서는 꼭 모스크 내부의 시원스레 뚫린 중앙 홀 천정을 올라다 보아야 한다. 중앙 돔의 투명 볕창은 바깥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줄기를 아래로 흩트려 뜨린다. 볕창으로 스며든 햇볕은 푸른색의 타일에 반사되어 푸르스럼한 색채를 품어낸다. 블루빛이 사원을 물들이면 사원 내부는 블루모스크의 이름에 걸맞게 푸른빛으로 빚어지는 블루의 향연장이 된다.
순간 입이 딱 벌어지면서 블루모스크라 칭한 지혜를 단박에 깨닫게 된다. 블루의 색채가 중앙 돔을 중심으로 은은히 펴지는 가운데에 브라운 색감으로 채색된 주변 천정 면에서는 가지 각색의 아벨리스크 문형들이 디테일한 미를 발산한다.
블루모스크가 푸른색의 향연이라면 장엄한 위용을 지뉜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브라운이다. 건물 전면에서 발산되는 황갈색 풍의 색채는 풍요로운 역사가 담긴 건축물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깊은 역사성이 담긴 건축물의 정체성을 중후한 브라운 톤이 제대로 받쳐주고 있다.
중후하게 금색빛으로 채색된 건물 내부의 홀은 장엄하게 건축물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천정과 벽면 군데군데 벗겨진 흔적들은 성당의 역사적인 상흔을 대변한다.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성당은 모스크로 변했다. 이때 성당 벽면 곳곳에 그려졌던 기독교 성화들은 회칠로 덮혀졌고 성당 외벽에서 사라졌다.
이후 20세기 접어들어 모스크가 박물관으로 다시 변신하면서 수백 년 동안 회칠 아래에 묻혀있던 성화들은 복원되기 시작했다. 500여 년간 벽 내부에 묻힌 성화가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덧칠되었던 성화들이 온전히 복원되기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묻혔던 세월만큼, 복원 과정의 어려움만큼 상처 입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역설적이게도 낡고 훼손된 성화들의 불완전성에서 안틱스런 역사의 색감을 감지한다. 깊게 얼룩지고 상처진 그림들에서 역사의 과거는 선명한 현실로 다가온다. 헤어지고 손상된 구조물의 상흔에서도 중후한 브라운 풍의 건축물은 용케도 잘 계승되었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매력은 곧 상처 입은 영광에 있다. 비록 빚은 바랬지만 성당의 낡음이 미학의 근간이 되었다.
보스포르스 해협에서 도시 내륙을 바라보면 우뚝 선 탑 건축물이 하나 보인다. 유독 돋보이는 그 탑은 갈라탑이다. 모스크들과 함께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탑신 위에 오르면 이스탄불 정경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스탄불의 전경을 한 시야에 조명하려면 이 탑 만한 전망대가 없다.
갈라탑은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노스 황제 때 건설되었다. 역사가 배인 브라운 톤의 색채로 고대 성곽 탑의 모습을 잘 드러내 보인다. 갈라탑은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며 높이 솟아 이스탄불을 한층 고풍스럽게 만든다. 보스포루스 푸른 바다를 굽어보는 황갈색의 벽돌 탑은 전통의 숨결을 도시 공간으로 내뿜고 있다.
보스포르스 해협의 푸른빛은 황갈색의 도시 건물과 산뜻하게 대비되면서 도시의 윤곽을 선명하게 한다. 푸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한 햇살은 청색의 바닷빛과 어우러져 옅은 바다 연무를 지피 운다. 희미하게 흐느적거리는 연무 속에 비치는 도시의 경관은 그리움으로 아련한 고향 풍경 같다.
무슬림 생활 방식은 일상생활과 종교 생활을 구분 짓기 어렵다. 하루에 의무 기도 예배가 다섯 차례나 된다. 종교 의례를 생활화하고 있는 이들에게 양탄자는 꼭 필요하다.
매 예배시간마다 기도드리기 위해 모스크에 신도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의자 없이 바닥에 무릎 끊고 기도하는 무슬림에게 공간 바닥재로서 양탄자는 필수이다. 바닥 예배 문화가 양탄자 문화가 발달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일반인 가정에서도 양탄자는 생활필수품이다. 일상 기도 생활이 기본 생활 습관이 된 이곳 가정에서도 거실과 방에 바닥재로 많이 깔기 때문이다. 양탄자는 집 내부 바닥재 겸 장식재로 활용하는 긴요한 생활 품목이다.
양탄자에는 예술과 기예가 총집결한 듯하다. 여기에는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인 무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도감을 용용해 도안한 무늬들이 수놓아져 있
양탄자 디자인과 색상, 색감, 무늬 등은 화려하고, 섬세하며, 정교하고 곱다. 이들의 양탄자 문화에는 이슬람식 종교적 감각과 예술적인 색채 미감이 각인되어 있다.
양탄자의 섬세한 짜임새는 아랍 특유의 세세함과 치밀한 제조 과정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제조 기술의 우수성을 뛰어넘어 디테일적 미학의 최선봉에 선 것 같다. 이곳에는 무늬별, 색상별, 디자인별, 용도별로 종류만도 어마어마한 양탄자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