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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Dec 01. 2022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림책에서 책갈피로 가기까지

서울로 이직하고 광화문에서 근무를 했다. 사무실은 광화문 교보문고 출구를 지나야 도착했다. 삭막한 도시의 거리를 좋아하지 않았고 덥고 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교보문고를 가로질러 다녔다. 처음에 그곳은 그냥 지나치는 길목이었다. 장소를 즐기기엔 시간과 체력이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지옥철에서 버텨내야 했고 부지런히 걸어야 출근 시간에 늦지 않았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는 건 잊지 않았다. 걸을 때 주로 앞과 옆,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대체로 낙엽이 나뒹구는 가을이나 웅덩이에 물이 고인 비가 쏟아지는 날 아니고서는 바닥을 잘 내려다보진 않았다. 


나의 로망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로망은 로망일 뿐이었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저들의 손에 들린 책은 어렵지는 않을까?'

책을 떠올리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재밌다는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으니 내겐 어려운 대상이었다. 






쉬는 날이다. 절대 5호선을 타지 않으려 했다. 아침 출근길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자석에 이끌리듯 몸은 교보문고였다. 그간 눈으로 익힌 공간 속에서 익숙하게 베스트셀러 코너로 갔다. 소설, 에세이, 시, 경제, 정치 그 어떤 것도 관심 분야에 없었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 책을 뒤적이고 저 책을 뒤적였다. 다리가 아파왔다. 털썩 주저앉아 두어 페이지라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왜 이렇게 읽는 게 어려울까. 답답한 마음은 밖으로 새어 나와 내 몸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었다. 


적당한 책 두 권을 골라 서점을 빠져나왔다. 벌써 다섯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방 적당한 공간에 놓인 책은 먼지가 쌓였고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었다. 원래의 색을 잃어갈수록 미안했다. 누구에게 미안한지 모를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래서 였을까. 버리지 못하고 14년째 내 시선이 닿는 곳에 함께 한다. 






엄마가 되었다. 나의 어려움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자주 갔다. 그 공간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놀이터처럼 놀러 다녔다. 대출해와서 읽어주고 반납하러 가면서 놀고 다시 대출하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언니가 조카들 읽었던 책을 많이 줬다. 집이 좁아 꺼낼 공간이 없었다. 창고에 박스채로 뒀다가 아이가 테이블을 잡고 서려고 할 때쯤 꺼내봤다. 아직 글자가 너무 많아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박스에 넣었다가 적당한 시기에 꺼내 책장에 진열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나의 책 읽기는. 

서른 살에 그림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읽기 능력을 키워 주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컸다. 책탑을 쌓아놓고 탑을 무너뜨리고 정복해나갔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웃고 울었다. 감정이 요동쳤다. 아이의 나이가 더해지면서 그림책의 글자 수도 상당해졌다. 그래도 부지런히 읽어줬다. 문고판 책도 읽어달라면 그렇게 했다.


큰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어른들이 보는 책을 몇 권 샀다.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그림책으로 단련된 몇 년 간의 시간들 덕분에 몰라보게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큰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는데 서툴고 어설픈 엄마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가 처음인지라 헤매기도 하고 눈물도 쏟았다. 그때마다 응석 부릴 곳을 찾지 못해 괴로웠다. 도서관에 가서 답답한 내 마음이 적힌 문구를 발견하면 빌려왔다. 위로받고 다시 일어섰고 방향을 얻었다.


전면 책장을 사서 책 제목이 보이게 늘어놓았다. 책 제목만으로도 훌륭한 책들이 많았다. 시간 나면 틈틈이 한 페이지라도 보려고 노력했고 다 읽지 못하더라도 이전처럼 괴로워하지 않았다. 한 문장이라도 내 가슴에 와닿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독도 정독도 내겐 필요치 않았다. 그저 책을 알게 된 것이 좋았다.  


그림책으로 시작해 육아서를 거쳤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공부 방향을 알고 싶어졌다. 교육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술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수학, 영어, 국어 공부 방향의 틀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갔다. 





큰 아이가 열한 살이 되었다. 


몇 해 전 퇴사를 하면서 여유가 조금 생겼다.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인연이 되어 팀을 꾸렸다. 친구 같은 좋은 언니들을 만났다. 그 안에서 좋은 책도 만나는 중이다.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대하소설 토지를 두 번 완독하고 고전과 경제서를 섭렵하는 사람들 틈에서 여전히 낑낑거리지만 그래도 좋다. 그림책으로 시작된 나의 읽기 실력은 어쩌면 열한 살짜리 큰 아이와 대등할지도 모르겠다고 부끄럽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는 천천히 따라가겠다고 고백했다. 


'책갈피'

이름도 예쁘고 그 과정도 예뻐서 좋기만 한 우리 모임 이름이다. 계속되는 순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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