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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Nov 29. 2022

'밝은 밤_최은영 장편소설'을 읽고

고통과 함께 밀려드는 안도감을 느끼며

깊은 몰입감을 안겨줬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어냈다. 국수 먹듯이 후루룩 삼켜 버리기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를 곱씹다가 한 문장 읽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단어 하나를 소리 내어 읊기도 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도 한 참을, 아이를 기다리는 놀이터에서도 한 참을, 밥을 차려놓고 식탁에 앉아서도 한 참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다시 읽어보길 반복했다.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내가 전쟁통 속에서 어린아이가 되었고, 백정의 딸이 되었다. 살고자 버둥대는 십 대 소녀가 되었다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낯선 남자를 믿어야 하는 현실을 마주했다. 사람을 살리면서 곧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내가 누구인지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친구, 이웃사촌, 가족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했고 담벼락 안에 모여 살며 서로를 보듬어 주는 대구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개성에서 만나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북 사투리를 나도 함께 뱉어냈다. 


아버지가 맺어준 남자에게 버림받는 여자가 되면서 아버지를 어느 정도 원망해야 할지 가늠해 보았으며 엄마가 이 남자와 혼인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의 마음을 물어봐줬을 때는 소설을 벗어나 내 안의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결혼을 준비하던 그때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를 속여 중혼을 했고 본처를 찾아 떠난 남자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지 생각해 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다시 오늘날로 돌아와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하는 여자가 되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무력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만 또한 가족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아 멀리 떠나버린 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위로받았다.






새비 아즈마이와 삼천이 아즈마이가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그 방에 같이 앉았다. 함께 밥을 씹어 뱉었고 괜찮다고 중얼거렸다. 왜 네가 살아야 하는지 내가 삼천이가 되어 편지를 적었다. 온 힘을 다해 서로를 살려내는 그들의 우애가 가슴 저릿저릿했다. 


삼천이가 새비를 피난길로 몰았다고 자책할 때는 '삼천이 네가 모질어서가 아니야. 그때는 또 그럴 수밖에 없는 너의 마음이 있었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삼천이가 피난길에 올라 새비를 찾아갔을 때 삼천이 식구를 받아준 명숙 언니의 포용력은 밥 한 술 뜨기도 어려운 그 시절에 정말 가능한 건가,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명숙 언니의 자세는 절로 내 고개를 떨구게 했다. 


삼천이 식구가 희령으로 내려가고 편지를 부치고 소포를 보내오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빨간 우체통이 놓인 희령의 우체국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희령과 닮은 내 고향 추자도의 우체국을 떠올리며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니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내게 있어 추자도는 결핍은 없었다는 기억과 함께 남 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것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백정의 자식이 양민에게 똑바로 얼굴을 올려다보고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분이 극명하던 시대에 태어난 비애를 안고 살아가는 백정의 딸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야.' 이런 말을 한들 공기 중으로 흩어진 말들이 백정 딸자식의 귓가로 스며들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시대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과 차별 속에서 아파하는 이들이 분명 많을 테다. 빈곤층, 중산층, 상류층의 분류를 개념치 말고 이 글을 적는 내가 또 이 글을 읽는 네가 어느 계층에 속하든 너무 아파하지 않길 바란다. 계층과 상관없이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면서 고통을 느꼈다. 느낄수록 너무 아팠다. 그래서 책을 덮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거실을 둘러보니 아이들이 웃고 있었고 남편이 곁에 있었다. 안도감을 느꼈다. 매일 사랑을 주고받는 이 가정의 따뜻함이 한껏 온도를 올려 더욱더 깊게 파고들었다.


가끔 생각해 본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이 사람이 없는 결혼 생활은 어떨까 말이다. 한 글자도 끄적이지 못하고 연필을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가끔 두려운 날도 있다. 이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지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해보면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내 아이들을 챙기며 입술을 꽉 깨문 내가 보이지만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를 달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기적인 마음을 먹는다. 남편보다 딱 하루만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해달라고 말이다. 남편이 없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과연 나는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지 짐작해보려 하지만 무섭게만 다가온다. 이런 이야기를 가끔 남편에게 하면 그런 우울한 생각은 제발 하지 좀 말라고 뜯어말리지만 사랑이 깊다 보니 그런 거라는 괜한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나 자신을 포함해 가족으로부터 얻는 사랑이 10할 중에 9할이다. 어쩌면 9.9할 일수도 있겠다. 나머지 0.1할은 소소한 행복으로 채우는 것 같다. 엄마가 되면 으레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되려 받는 것이 크다. 세 아이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내게 사랑을 안겨 준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11년이다. 곧 마흔을 앞두고 있다. 고개를 하나 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곁에서 온전히 엄마로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담뿍 담아 마흔을 맞이 하려고 한다.


이 책은 적어도 사랑만큼은 부족하지 않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야겠다는 울림을 줬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득 채워주는 사랑 많은 아내, 엄마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또한 삼천이와 새비가 사는 시대보다 어렵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음에 깊은 안도를 하며 우리 딸들이 살아가는 세상 또한 지금보다 벅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밝은 밤'을 써준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통해 또 한 뼘 성장하는 내가 되었다.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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