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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Dec 13. 2022

3천을 얹어달라고? 2억?

어쩌다 보니 투자자 7.

걸으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여름 앞자락에 이 도시를 처음 만났다. 햇살이 내리쬐는 회사 앞마당은 눈부시고 포근했다.


'이곳 어쩐지 좋다.'


사각 반듯하게 구획으로 나눠진 곳들엔 상가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아파트 단지들이 빼곡했다. 상가에서 아파트 방향으로 가로지르다 보니 대형 마트가 있었고 1층에는 은행이 자리했다. 골목을 벗어나 편도 4차선 도로에 인접한 건물 1층에는 우리가 모두 알만한 브랜드 상점들이 입점해 있었다. 병원, 약국, 빵집, 꽃집, 편의점등 없는 걸 찾는 게 빠를 정도였다.


'이 동네가 이 도시의 노른자구나.'


'이 주변으로 더 발전하겠구나.'

 

이제 사흘 지났는데 스무날 정도 남짓한 파견 근무가 짧은 시간처럼 다가왔다.


좋다는 느낌은 하루하루가 더해질수록 짙어졌다.


차로 10분만 움직이면 언제든 맡을 수 있는 이 진한 바다향이 몹시 그리울 것 같다.


'관내 이동 신청을 해야겠다'






생각을 정리해 회사에 전달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1년 7월에 막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못 가게 됐어. 파견을 보내고 그래서 추가 인원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심 기대했는데 그런 상황은 아닌가 봐."


"그래. 오면 좋을 텐데 아쉽다."


"맨날 바다 봐야지 하고 잠깐 설렜잖아."


"그러게. 나도 그랬네."


한참을 아쉬워 전화를 끊지 못했다. 다가오는 금요일에 이른 퇴근을 하고 쏜살같이 내게 오겠다는 그의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제자리로 마음을 돌리고 일상을 찾아야 했다. 파랗게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가 떠올랐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못 간다니 더욱 간절해졌다.


'가고 싶다. 그 동네.'











"금요일에 거기서 만나. 집 구경이나 해보자."


그냥 알아보고 싶었다.


- 이 동네 아파트는 1억이면 어느 정도 수준의 집을 살 수 있나.


- 가장 비싼 아파트는 어딘가.


- 가장 신축 아파트는 어디고 가격은 어떤가.


- 최근 시세 변동은 있었는가.


등등 궁금했다.


금요일 퇴근 후 그와 만났다.


"이왕이면 신축으로 구경 한 번 해보자. 안 살 거면 뭐 어떠냐? 사는 척하고 보는 거지 뭐."


"34평 보고 42평도 봐볼까?"


"그럴까?"


앳된 우리는 겁도 없이 부동산중개소를 들락거리며 집을 보기 시작했다.










42평의 모습은 이랬다.


엔틱 한 느낌의 어두운 나무색으로 꾸며진 거실에 묵직해 보이는 첼로 한 대가 놓여있었고 악보대가 친구처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눕기에 충분해 보이는 너른 소파와 오른쪽으로 이어진 주방 입구는 훤했고 수납장에는 고급 와인과 술잔이 그득했다. 방 4개 중에서 거실과 이어진 방 1개를 기둥만 살려놓고 벽을 뜯어 거실의 사이즈를 키웠고 그 거실과 부엌이 별다른 공간 분리 없이 오픈되어 있으니 그 사이즈는 우리 부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실로 엄청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집을 다 둘러보고 나니 조금 기운이 빠졌다.  


"이렇게들 사는구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허탈하다. 우리는 언제 이런 집을 살 수 있을까?"


"언제긴 언제야. 지금이지. 넓고 너무 좋다. 난 이걸로 하고 싶어."


남편의 의외의 반응이었다. 집을 사자고 했을 때 서둘러 대답하지 못하던 그였다.


남편은 경매로 구축 아파트를 저렴하게 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값을 다 주고 사는 건 그의 생각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그래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더니 오히려 나보다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잠시 중재를 했다.


"난 2층이라서 별로야. 집 안이 아무리 넓고 으리으리해도 커튼을 열면 단지 내 도로 뷰라서 프라이버시 존중이 전혀 안 될 것 같아. 거실 바로 앞으로 차가 지나가잖아. 시끄럽지 않을까?"


"좀 보이면 어때? 다 서로 보여주고 보면서 사는 거지. 이웃이 다 그런 거지. 허허허."


"넓고 좋던데. 난 이 집 마음에 들어. 진짜 넓어. 최고야."


운동장처럼 넓은 집에 마음을 뺏긴 그는 쉬지 않고 이어 말했고 그런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 도시로 오게 될지도 모르니 조금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집을 보면 볼수록 미리 사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의 미래 전망을 파악하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끌렸다.


몇 곳을 더 둘러봤지만 남편은 이미 42평으로 45도 기울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가장 보편적인 사이즈를 원했다. 아이를 둘 낳는다고 가정하고 네 가족이 살기에 딱 적당한 사이즈가 34평 같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저층보다는 로열층으로.


"조금 더 보자. 그리고 42평은 예산 초과야."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평형대로 가는 게 차후 매도 시에도 편리하지 않을까? 나 역시 42평은 좀 부담스러워. 이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평형대는 아니야. 관리비도 많이 나오고 아마 청소도 힘들 거야. 아마 주부들은 다 비슷한 생각할 거야. "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 둘은 이제 갓 결혼한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였다.


그것도 주말에나 잠깐 볼 수 있는 장거리 주말부부였다.


평일 저녁 그 넓은 아파트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누워서 티브이 보는 모습을 생각하니 소름 돋고 무서웠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의 사고는 이랬다.


'필요 없는 공간을 소유하는 대신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김연아 선수는 IOC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연설을 했고 IOC 위원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침 IOC 위원장이 최종 개최지를 발표하는 순간.


"PYEONGCHANG 2018"


하얀 카드에 검정 글씨로 새겨진 평창을 IOC 위원장은 호명했다.


대한민국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룬 성공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감격스러워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7월의 둘째 주 수요일의 기쁨은 그 주 주말까지 쭉 이어졌다.









셋째 주 월요일 아침이다.


팀장님이 복도에서 나를 부르신다.


"선생님 그냥 가도록 해."


"네?"


"조금이라도 남편 가까이 살면 좋지. 그래 여기 붙들고 있는 게 최선은 아닌 것 같아."


"......(꿈인가)......"


"너무 좋아서 말문이 막히지? 준비하는 대로 발령 내줄게."


'와... 말이 안 나온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얼른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발령 내주 신대. 준비하는 대로 갈 수 있어. 빨리 집부터 다시 알아봐야겠다."


"정말? 진짜? 알겠어."


서둘러 전화를 끊는 그에게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평창 때문이겠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역시나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어... 자기야... 42평 그 가격에 안 팔겠다고 3천은 더 얹어달래. 42평이 문제가 아니고 그 아파트에 매물이 한 개도 없어."


"뭐? 한 개도 없다고? 3천? 그럼 2억?"


"근데 2억에도 안 팔겠다는 눈치야. 그냥 막 던져보는 것 같아."


"그래. 그 사이 엄청 들썩였나 보다."


"호가가 자고 일어나면 천만 원씩 오르나 봐."


"...... 그렇구나. 조금 생각해 보자. 그래도 가게 돼서 나 너무 좋아"


"그래. 나도 좋다. 주말에 또 알아보면 있겠지. 축하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는 순간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부동산 시장은 호황기로 접어들었다. 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집주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건을 거둬들였다.


값이 오른 매물, 그 조차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매물을 보고 있자니 옥죄어 오는 답답함을 연신 마른침을 삼켜달래야 했다.


7월의 셋째 주는 무겁디 무겁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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