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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세시 칼리 Oct 07. 2023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책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는다는 것

몇 년 전 SNS를 통해 알게 된, 아니 엄격히 말하면 그냥 SNS상에서 팔로우해서 혼자만 몰래몰래 보게 된 계정이 있다. 처음에는 오래된 다가구 주택집을 감각 있게, 빈티지한 느낌으로 예쁘게 꾸며 놓아서 사진들을 보며 오래된 집도 이렇게 예뻐질 수 있구나 생각하며 종종 들어가 보게 되었다.


어느 날 그 SNS를 보니, 계정을 운영하는 분이 책을출판하셨다. 책 제목이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였다. 공간디렉터 최고요라는 분의 책.

책 제목만 보고 그 제목의 대답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곳에 살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우리 집은 내가 좋아하는 곳인가?'

당연히 나는 나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아니라고,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 아니야.’라고.


그분의 책을 구입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을 만큼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집 안의 작은 공간이라도 좋았다.



 그 무렵 남편과 나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전에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다가구 주택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서울 아파트를 매매하기에는 우리가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서울의 아파트 전세 가격으로 경기도권 아파트 매매를 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적은 돈으로 조금 더 살기 좋은 환경의 도시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기도 아파트로 눈을 돌릴 즈음이었다


책에서 해답을 찾을 때가 많다.

언제부턴가 내가 생각하고, 의문이 생기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우연히 읽게 된 책, 혹은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 읽은 책 속에서 신기하게도 많은 해답을 얻는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책을 읽고도 그랬다.

지금 사는 집이 좋은 곳은 아니지만, 집 전체는 아니어도 공간을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우리 집은 방 두 개에 거실 겸 주방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래도 전세로 입주할 때 도배와 장판을 새로 깔끔하게 했고, 싱크대도 화이트톤으로 바꿨었다. 거실 등도 교체했다. 허름한 집이 그나마 좀 살만해졌다. 남들은 전셋집에 무슨 그런 돈을 들이냐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내내 한숨만 쉴 것 같았다.



그래도 워낙 오래된 집이라, 새 집처럼 감각적으로 바뀌진 않았지만, 그 책을 읽고 혹시라도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되어서 집을 내놓았을 때 집이 안 나가면 안 되니,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이사할 수 있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바로 계약할 수 있도록 좀 더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한 권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이사도 수월하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마치 뇌 속 뉴런들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과 좋아하는 공간, 이사의 연결고리. 그리고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하면 우환을 막을 수 있다.


결로가 생겨 곰팡이가 생긴 부분은 잘 닦아낸 후 시트지를 붙이고, 신발장 위에는 예쁜 화분과 심플한 디퓨저도 갖다 두었다.  곳곳의 작은 공간에 정성을 들였다.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침대 옆 협탁 위엔 스탠드와 좋은 향이 나는 디퓨저를, 서랍장에는 푸릇푸릇한 화분을 두었다. 집안이 한결 환해지고 깔끔해졌다.



정리를 하다 보니 정리의 기본은 버리는 것에서부터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책을 읽고 미니멀한 집을 만들어갔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것들을 팔거나 버렸다.

한결 집이 넓어졌다.


그렇게 몇 달 후, 우리는 마치 운명처럼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우린 바로 이사준비를 했다. 사실 이미 계획된 이사였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집주인의 통보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언제든 이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린 경기도로 아파트를 보러 다녔고, 살고 있던 집은 집주인이 다시 세입자를 찾기 위해 부동산에 내놓았다. 처음엔 부동산에서 연락이 없어서, 몇 번 전화를 했다.

몇 명 집을 보러 왔고, 한 할머니께서 혼자 사실 집을 구하시는 중에 우리 집을 보시곤  그날 바로 계약을 하셨다. 같은 가격의 전세 물건 중 우리 집이 깨끗하고 훨씬 아늑해 보이셨으리라.

우리도 마침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계약을 했다. 이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렇게 경기도로 이사 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서울에서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곳에 정착하니 이곳 생활이 편하다. 서울처럼 복잡하기 않고 공원도 많다. 산책길도 잘 조성이 되어있다.


책 한 권과 공간, 이사, 유비무환.

책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리라.


모든 것은 늘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험도 가입하고 연금도 매월 부어나간다.

우리 삶은 각각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 맞물려 가고 있음을 요즘 들어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지금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또 늘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머릿속에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여러 카테고리를 만들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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