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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Jun 09. 2022

가슴에 담은 책

시시해도 어쩔 수 없다


상대가 책 좀 읽네 싶으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가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어 온다면 나는 "인어공주요."라고 대답하며 살짝 얼굴을 붉힐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요즘 어린아이도 다 알고 있을 내용의 동화책 <인어공주> 말이다.


책이 귀하던 시절을 보낸 나는 교과서 외의 동화책을 처음 만져 본 것이 초등 3학년 무렵이었다. 그때 처음 읽었던 책이 ‘인어공주’였는데 처음 읽었던 동화여서 그런지 아직도 그 책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요즘 아이들이야 인어공주 같은 동화책은 대여섯 살에 읽기도 하겠지만 나는 아홉 살의 나이에  동화 '인어공주'를 읽고 푹 빠져 버렸었다.

지금이야 책의 종류도 많거니와 양질의 책이 넘치는 시대다. 뿐만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큰돈 들이지 않고도 클릭 몇 번으로 다음 날이면 받아 읽을 수 있는 세상이다. 또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도 많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서 책장을 넘겨볼 수 있는 서점도 주변에 널려 있어서 책의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다.    


 지금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시절, 책뿐 아니라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 나의 유년기였다. 학교 도서관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다. 빈 교실 한 귀퉁이에 번듯한 책장은커녕 변변한 책꽂이도 부족해서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골라서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몇몇 아이들과 읽곤 했다. 그전까지는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학습참고서인 전과라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재미난 동화책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사실 충격이자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가슴이 벙벙하니 설레기도 하고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야 엄마 태내에 있을 때부터 태교에 좋은 책도 읽어주고 심지어 외국어까지 들려준다는 데 동화책을 처음 본 나는 그랬다. 그때 처음 만난 책이 <인어공주>다. 누르스름한 종이에 글씨가 빼곡히 차 있었다. 몇 장 건너에 하나씩 흑백의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책에 코를 박고 읽었다.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기는데 숨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책 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인어공주를 다 읽었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슴이 먹먹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다섯 살 생일에 바다 위 세상 구경을 나온 인어공주, 마침 바다를 항해하던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폭풍에 정신을 잃은 왕자를 구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고 다리를 얻어 사람이 되지만 왕자에게 자신을 알릴 수 없었던 인어공주. 왕자의 심장을 찌르는 대신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 인어공주 때문에 눈물이 났다. 어린 나는 물거품이 되어 자신을 희생해 왕자를 구해 낸 공주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큰 사랑에 대해 알기에는 내가 많이 어렸다. 오직 아름다운 공주가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며칠 동안은 잠도 오지 않았다. 작은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인어공주 이야기에 이어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으면서 겨우내 앓다가 언제 시작된 지 모를 봄기운에 덩달아 기운을 낸 느낌이었다.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 인어공주 생각에 마음 아프게 지내다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으면서 치유가 되었다고 할까.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으면서 내가 알프스의 어느 산장에 사는 착각 속에 지냈다. 소년과 양 떼도 치고 클라라도 만나는 즐거운 상상 속에 생동감 넘치는 아이로 돌아온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알프스의 산자락에서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지금처럼 책이 흔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소중하게 기억되는 나만의 책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나이를 먹으면서 읽는 책들은 읽을 때뿐이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책 읽기에도 때가 있다. 유년기, 청소년기에 읽으면 좋았을 책을 마음껏 읽지 못했던 것이 지금에도 못내 아쉽다.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충분히 느꼈다면 내 삶에서 더 풍부한 감성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이라도 무디어진 마음 촉을 가다듬어 어릴 적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나러 가볼까나. 하얗게 눈 덮인 알프스 어느 산자락에서 달려 나와 반갑게 나를 맞아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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