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가 넘치는 세상이다. 아니, 더 나아가 부조리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소득이나 권력의 분배 양상(혹은 개인에 대한 보상 체계)만 보더라도,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지 않은가. 재능이든 노력이든 도덕성이든, 세상은 사람들의 자격 요소에 대해 딱 알맞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거나, 아니면 그냥 무시해 버린다, 귀찮다는 듯이.
그런 부조리의 곁을 지키는 건 악이다. 부조리와 악은 완전히 동일시될 수는 없어도, 결코 떼어놓을 수도 없다. 부조리가 자연스러운 세상이니만큼, 악과 선은 대등하지 않다. 악은 강하고 짙은 반면에, 선은 약하고 희미하다. 우리가 스스로의 선함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은 두려움, 소심함, 사회·경제적 계산의 결과라는 점은 선 자체의 약함에 대한 한 가지 방증이다.
이렇게 부조리가 판치고 악이 강한 곳이라고 세상을 보는 사유의 이름은 그저 비관주의일까. 나의 시야에 어둠이 가득하단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내 의식적인 시선이 고집스레 향하고 있는 건 결국 빛이라는 점이다. 이 자그마한 빛은 선이기도, 웃음이기도, 온갖 긍정이기도 하다.
선과 긍정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작고 위태로움에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존재와 움직임이 쉬지 않고 부조리와 악에 흠집을 내기 때문이다. 강한 것은 분노와 허무지만, 숭고한 것은 유쾌와 희망이다.
세상이 나아질 거라 믿는 것은 아니다. 진전을 보이는 듯싶다가 다시 후퇴할지도, 끝없는 답보 상태에 머무를지도, 아니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추락을 해버릴지도 모른다. 즉 내가 빛을 붙잡고 사는 태도란 밝은 미래가 반드시 오리라는 천진함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그것마저 잃어서는 안 되니까, 꺼질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오로지 그런 까닭으로 긍정을 품는 것이다.
나의 비관적 긍정주의란 결국, 내가 스스로 빠지기를 선택한 맹목이자, 선택의 여지 없이 빠져버리고 만 탐미(耽美)다. 이 치기 어린 신념이 내 안에서 언제까지 살아 숨 쉴지, 지금으로서는 당연히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과거와 현재라는 순간들 속에 녹아있다는 건 이미 영원해진 사실이기에, 여기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기록을 남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