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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an 08. 2023

선생님의 무심


늘 그런 분이었다. 


 '담임이 그 쌤이라고? 너 망했다.'


 '왜요?'


 '... 해보면 알어.'


 한창 예민했던 고등학교 3학년, 모난 곳 하나 없이 둥글둥글해서 곧 굴러가도 무방할 담임이 당첨됐다. 외모를 말하는 건 아니고, 성격이 그랬다. 외적인 요소에서 동그라미를 찾자면 약간 벗겨진 머리가 착 달라붙어 있던 부처 같은 얼굴형이 전부였다. 졸업하고 놀러 온 방송부 선배가 딱하다는 웃음을 띠며 '너 망했다'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회장에 당선된 건지, 담임에 당선된 건지 헷갈릴 정도로 복도를 뛰어다녔다. 한 번은 다음 교시가 체육이어서 운동화 뒤축을 고쳐 신고 텅 빈 교실 불을 껐는데, 난데없이 사회문화 선생님이 앞문으로 등장했다. 어머, 시간표 바뀐 거 담임 선생님이 안 말해줬니? 


 같은 질문을 세 번 정도 들었을 때부터 매일 아침 교무실에서 시간표를 확인했다.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쳤다. 높낮이 없는 모노톤의 목소리가 수능특강 지문을 줄줄 읽어나가는데, 잠을 택하지 않을 아이들은 없었다. 그게 익숙하다는 듯 선생님은 듣는 이 없는 수업을 꾸역꾸역 이어갔다. 종종 모두가 전멸해 평면이 된 교실엔 나랑 E만이 두더지 잡기 게임의 두더지들처럼 뿅 솟아 있었다. 말끝에 붙는 선생님의 '그치?'에 네-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저 수시 다 떨어질 것 같아요.'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와 한 말에도 허허, 웃어넘기던 분이었다.


 '다 떨어졌어요.'


 나는 그 말을 할 때 정말 울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또 허허 웃으면서 느릿느릿 정시 사이트 창을 켰다. 독수리 타법으로 완성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었다. 엉? 이상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결국 고3 담임은 대입 사이트에 로그인을 거절당하고 멋쩍게 웃으면서 나를 옆반 담임에게 넘겨야 했다. 대학교에 붙은 후 처음 전화가 와서 '지윤아, 네가 고려대에 붙었었나?'라고 물었을 땐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늘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살벌한 입시 시즌 교무실에 공기가 느리게 흐르는 곳은 선생님 자리밖에 없었다.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던 웃음은 당신의 손주 이야기를 할 때 특히 더했다. 수업 중에 가끔 꺼내곤 했던 네 살이었나 다섯 살의 손주 일화는 솟아오른 두더지들만 알았다. 아직도 E와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이 일 년 내내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먹어라'였다. 잘 좀 먹어, 왜 그새 더 말랐니,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 죄다 싫어하는 말이지만 선생님의 표정에 우리 아빠보다 더한 걱정이 가득해서 기분 나쁘진 않았다. 나중엔 입을 떼는 모양만 봐도 그 말이 나올 걸 알아서 최대한 건강해 보이려고 눈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어느 날 아침 조회 시간에는 선생님이 말없이 교실 TV와 노트북을 연결했다. USB에 담긴 수십, 아니 수백 장의 우리 사진이 보정 하나 없는 날 것의 화질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은 서울숲에서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잔뜩 꾸미고 차례를 기다리던 우리 반 아이들 사이로 휴대폰을 든 채 서성이던 선생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사진에 찍는 사람의 시선이 담긴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흔한 스승의 날조차 챙기지 못한 못된 제자로 살다가 1월 1일의 힘을 빌려 봤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들 속에 '곧 네덜란드 교환학생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넣었다. 선생님의 기억력과 무심함에는 이미 도가 튼 지 오래라 또 내 학교를 물어보셔도 순순히 대답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그런데 둥글둥글한 답장의 마지막 두 문장을,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무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다소 고생스러워도 멋지고 소중한 경험과 추억 많이 만들고 오너라.


건강 특별히 조심하고 잘 먹고 많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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