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으세요?
있지. 나도 얼마 전에 무기력에 허우적거린 적이 있어. 일. 밥. 잠만 간신히 유지하며 지냈어. 만사 아무것에도 의욕이 나지 않더라고.
그때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극복 안 했어. 극복하려고를 안 했어. 무기력한 채로 며칠 놔두었지. 삶을 감당할 기운과 힘이 다 떨어졌구나. 며칠은 힘을 비축할 수 있게 시체처럼 누워있었어. 쉬고 또 쉬다가 아주 조금 의욕이란 게 한 스푼쯤 생길 때까지.
아... 저는 이걸 또 되게 이겨내야 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네요.
사실 무기력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무기력한 채로 있으면 안 된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얼른 힘을 내야 한다, 이런 내 모습이 싫다, 등 '무기력'에 내가 붙여두는 생각이 문제인 거잖아. 나는 무기력할 때의 내 모습이 좋아,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잖아.
그렇긴 한데 무기력한 제가 너무 싫은데요?
맞아. 진짜 보기 싫지. 그래도 결국 무기력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안아주는 거야. 아, 이 정도면 무기력할만하구나. 내가 이렇게나 엉켜있는 것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구나. 와, 나 되게 힘들었구나! 이렇게.
내가 내 무기력을 인정해 주고 나를 덜 미워하잖아. 그러면 마음이 지하 10층에 있다가 지하 5층쯤 올라오거든. 그럴 땐, 기존에 하던 일이 아니라 전혀 해본 적 없는 일을 재미 삼아해 보는 거야. 다른 근육을 써 보는 거지. 효율과는 상관없는. 커피를 사 마셨다면 직접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을 해 본다던지, 술을 안 마셨다면 술 잘 마시는 친구하고 분위기 좋은 술집에 간다던지, 뜨개질을 해 보거나 컬러링 북 색칠을 해 본다던지(명상 효과가 있어), 클라이밍이나 수영 등 새로운 운동을 해 본다던지, 논픽션만 읽었다면 재밌는 추리소설을 추천받아서 읽는다던지, 평소 정적이라면 오락실이나 노래방에 가본다던지, 요리를 해 보거나 만화책을 빌려 보거나 식물을 키워보거나. 그 어떤 것이든 좋아. 이거 이거 이거 잘못되면 내 인생 끝이야,라고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 밖으로 잠깐 나가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알아져. 그동안 내가 내 세상에 갇혀서 세상이 무너질 듯 심각하게 굴었구나.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재미있는 세상이 무궁무진하구나. 재밌는 거 좀 더 해볼까? 살금살금... 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대학교수가 이런 제안을 했데. 학기 중 언제든 쓸 수 있는 과제 1회 면제권을 두겠다고. 면제권을 제출할 때 사유를 적지 않아도 된다고. 멋진 교수님이지? 열심히 달리다 보면 원래 내가 살던 흐름에서 갑자기 멈춰버리는 때가 있잖아.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면제권을 줘. 난 지금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일상에서 벗어날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거나 해 볼 거야. 그렇게 네게 온 무기력도 잘 환대해 줘.
지금 내 마음 이런 거, 그럴만해서 그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