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생각해왔다. 서른과 마흔의 나는 궁금하지 않은데, 일흔 즈음의 내 모습은 보고 싶었다. 중간의 시간을 다 살아내는 일이 막막하기만 해서, 끝을 떠올리길 버릇했는지도 모르겠다. 팔다리가 나무처럼 굳어가고, 호흡이 가빠지고, 덜 보이고 덜 들리게 될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까. 아껴 움직이고, 아껴 말을 하고, 아껴 보고 듣게 될까. 아껴 사랑하게 될까 아니면 사랑을 아끼게 될까. (....)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열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그러하듯, 흔들림 없이 잘 멈추기 위해서 늙어가는 사람은 서행하고 있다.
-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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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건너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나이 든 부모님은 점점 멈춤 쪽으로 향해 가는듯 하다. 답답하다고 하시기에, 양평과 양수리에 드라이브 삼아 다녀왔다.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돌아오셔서 많이 힘들어 하셨다. 아버지는 수술 후 팔다리 근육이 빠지고 살이 빠지셨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더 마르셨다. 어떻게 하면 저 두 사람을 살찌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명절의 끝자락이었다.
일흔을 지나 여든을 향해 가는, 여든에 당도한,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작고 약해진 자신의 몸과 마음이, 이 모든 상황이, 장면이 잘 받아들여질까. 당황스럽지 않을까.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꾸준히 사랑할 수 있을까.
한정원 작가의 말처럼, 만일 그들이 아껴 사랑하게 된다면,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덜 사랑하게 된다면, 만일 그렇다면...내가 조금 더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열 번 사랑한다고 말할 것을, 열 한번 말할 것이다. 헤어질 때는 꼭 한번 어루만질 것이다. 만지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색하고 어색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천천히 걷는다면 나는 그들보다 앞서 가서 그들을 살필 것이다. 나는 아직 나아갈 힘이 있고,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걸어오면 된다고 손 흔들며 환대할 것이다.
굽은 등을 바라보며 안쓰러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옆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한 자리가 아니라, 정면으로 바라보며 환하게 사랑할 것이다. 이제껏 했던 사랑 중에 가장 적극적인 사랑을 해낼 것이다. 다가올 시간에 지지 않게, 용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