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데리고 여행을 간다. 이번 거제 여행에는 진은영, 한정원, 김연수 작가의 책을 가지고 와서 틈틈이 읽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여러 작가들이 나 여기 있어요, 하며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든다.
진은영 시인님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읽는데 작가가 인용한 '우리 심장이 늘 하려고 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로 나가는 것.'이라는 문장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고명재 시인의 사랑의 문장이 스르륵 겹쳐졌고, 그가 좋아하는 한정원 작가의 책을 읽는 중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의 문장이 계속 떠올랐고... '진주를 좋아한다.'로 시작하는 김연수 작가의 산문을 읽는데 진주가 고향인 (고)허수경 시인에게 가닿았다. 진주를 떠올리며 그녀의 시 중 무척 애정하는 시 <여름 내내>의 첫 문장 '사과나무 아래서 책을 읽었습니다.'를 조용히 속삭여 보았다. 이제 여름은 갔잖아... 하고 정신을 차리고 올려다보니 가을 하늘이 맑고 높고 찬란했다. 문득, 가을이면 떠오르는 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의 여러 문장들이 떠올랐고... 그의 시집에 발문을 아름답게 써 내려간 신형철 님의 섬세한 문장이 줄줄 떠올랐다... 아무튼 돌림노래 부르듯 돌림 작가 떠오르기를 하며 읽고 공상하고 걷고 그런 시간이었다.
소유욕은 많이 내려놓았는데 여전히 욕심부리고 있는 것은 바로 책이다. 책을 사고 사고 또 산다. 그러다 한 번씩 빼기, 빼기, 알라딘에 한아름 가져다주고 또 빼고. 그러다 어느 순간 끝없이 산다. 언젠가 읽을지도 모른다며 책장에 놓아두고, 그러다 언젠가 보기도 한다.
소유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여행이었다. 실물로 가지고 있다고 가진 것이 아니었다. 내 집에, 내 책장에 놓여 있다고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에 담겨있어야 내 것이구나... 이렇게나 멀리 와 있어도, 다른 책을 읽어내려가도, 은근히 따라다니며 내 안에 생생하게 숨 쉬는 문장들. 그런 게 진정한 소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고 내꺼하고 싶어 참 고단하게 사는 우리들이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눈이 붓고 마음이 고단한 시간을 건너왔다. 멀리 와서 보니 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떠올리면 허공에 둥그렇게 떠오르는 문장들, 사람들, 순간들. 그것으로 나는 이미 그와 그들과 그것들과 함께구나... 지금 내 가슴에 살아 숨 쉬는 것. 오래도록 차곡차곡 마음에 두고 애정 하여 그 누구도 꺼내갈 수 없는 것. 은은한 향이 그 향기를 옷에 베개 하듯 내 안에 머금고 있는 것. 그것을 '소유'라 부를까 한다. 내친 김에 찾아보니 '소유'는 한자어 '바 소'와 '있을 유'를 쓴다. 이 중 '바 소'의 세 번째 의미는 '곳, 일정한 곳이나 지역'을 뜻한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 세상 어느 '지역'에 가든 데리고 '있어야' 소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대로 의미 부여 해 본다.
여행을 마치고 할 일은, 가진 것을 빼기하고 나눔 하는 것. 내 안에 잘 스며있는 책은, 굳이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내 안에 잘 머무르고 있으니 다른 이의 품으로 가도 괜찮겠다는 자각. 그래도 꼭 지니고 싶은 책이 있다면, 역시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 시처럼 살고 싶고 산책하며 살고 싶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