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슬픔

by 사과이모

여행을 떠난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오랜만에 이모들과의 여행으로 한껏 들떠서 떠나신 지 반나절이 지났다. 도착하면 연락을 하실 분인데 연락이 없으니 마음이 쓰였다. 저녁이 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불통. 다행히 잠시 후 전화기 저편에서 ‘여보세요’ 소리가 들린다. ‘아 엄마 걱정했잖아요 전화를 왜 이렇게…” 수화기 너머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모야.. ”

"아아아 앗 이모! 이모 잘 지내셨죠?

"응 너도 잘 지내지....."


잠시 안부를 묻고, 부재중인 엄마에게 전화 왔다고 전하겠다 하시며 짧은 통화를 마쳤다.


보름달처럼 동그란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지닌 둘째 이모. 몇 년 전 첫째 이모가 오랜 투병 중에 몸 떠나신 후, 엄마는 종종 둘째 언니도 나이가 많으신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엄마와는 10살 차이가 나는 팔순이 넘은 둘째 이모. 할머니가 일찍 떠나시고 엄마는 둘째 이모에게 의지하며 지내셨다. 엄마는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 (역시나 엄마는 미인이다). 엄마 아래 두 분의 이모가 있고, 그렇게 네 자매가 떠난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둘째 이모와 통화를 하며 짧은 대화였지만 목소리에 담긴 따스함과 반가움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왔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그러니까 집 전화가 울리면 달려가서 받던 시절, 엄마~ 둘째이모 전화~~하던 그 시절에 듣고 처음 듣는 목소리. 지방에 계시다보니 직접 뵌지는 십여년이 훌쩍 넘는다. 가슴 어딘가가 따뜻한 듯 무거운 이 먹먹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전화통화가 이모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수도 있겠다, 라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슬픔 같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친척들과 자주 왕래하고, 사촌동생들과 밥을 먹고 그들의 졸업식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집만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이가 나쁠 것도 없고, 특히 외가 식구들은 어릴 때 여름방학이면 다 같이 모여 야유회를 가기도 했는데 각자 사는 게 바쁜 건지, 사는 곳이 전국구라 만날 접점이 별로 없는 건지 사촌들과도 교류가 없는 편이다. 엄마를 통해 걔는 이렇게 산다더라, 쟤는 뭐하고 산다더라, 소식을 듣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각자가 뭐 잘 살면 되는 거지.... 무심하게 살아왔다. 나이 들고 본지도 까마득해서 지나가다가 보면 모르고 지나칠 확률 80퍼센트쯤 된다...뭐지 이 씁쓸함은.


다들 안녕하신가요?라고 물어본다. 살뜰하게 한분 한분께 안부 인사를 건넬 자신은 없고 이전보다는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 정도를 해본다. 이제까지 살던 대로 산다면, 우리 엄마의 언니, 엄마에게는 엄마 같은 10살 터울의 언니.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로 시집간 동생이 안쓰러워서 해마다 고추장, 된장을 직접 만들어 보내주시는 귀한 어르신을.. 다시는 못 보는 것이다. 그 분의 따스한 음성을 다시는 듣지 못하는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귀인은 엄마인데, 엄마에게 귀인은 둘째 이모다.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 살았던 대로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엄마 편에 꽃이라도 보내야겠다. 그리고 긴 세월 우리 엄마를 소중히 품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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