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 국회의원 S모씨와 코스닥 시장의 큰 손 중 한 명인 P씨가 공동으로 모회사의 대표이사 및 그 휘하 직원들을 특경법위반(사기, 횡령), 업무상배임, 특수절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 고발을 하였다.
피고소 고발인으로부터 위 사건의 변호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듣고 위 사건을 수임한 후, 나는 방어권 행사를 위해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 정보공개청구를 하였고, 경찰은 그 내용 중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을 삭제한 상태로 고소장 내용 일부공개를 하였다(고소인 기재란 역시 통째로 삭제되어 있어서, 고소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수사관에게 문의를 하니, 담당 수사관은 당시 고소인이 전 국회의원인 S모씨라고만 답을 하였다).
위 일부공개된 고소장 내용을 토대로 하여 의견서를 작성하여 피의자 신문기일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에 미리 담당 수사관에게 제출을 하였다.
그 후에도 피의자 신문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이윽고 피의자 신문기일이 되었고, 나와 의뢰인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였던대로 방어를 잘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사 도중 이미 의견서로 제출한 내용을 담당 수사관이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말하고, 또 이미 일주일 전에 의견서에 첨부해서 제출한 증거임에도, 수사관은 해당 증거를 처음 본다는 식으로 말하며 증거 제출을 하겠냐고 하였다.
이에 일주일 전에 제출한 의견서를 혹시 안보셨냐고 내가 묻자 담당 수사관은 안봤다고 당당하게 말하였고, 이에 내가 지금 제출을 요청하시는 증거들이 해당 의견서에 이미 다 첨부되어 있으므로 본인 책상 위에 있는 해당 의견서를 조사실로 가져와 줄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담당 수사관은 그 의견서를 피의자 신문이 끝나기 전에는 볼 생각이 없고 조사실로 가져올 생각도 없다고 하였다(더 놀라운 사실은 위 말들을 다 반말로 하였다는 점이다).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일단 다시 조사를 이어 나갔는데, 조사 도중 수사관 앞에 놓여있는 고소장을 보니 고소인 기재란에 당초 수사관이 말한 S뿐 아니라 P도 기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지난 통화에서는 고소인이 S라고만 하셨냐고 묻자(변호인 선임서에도 위 사건의 고소인으로 S만을 기재하여 경찰에 제출한 상태였다), 담당 수사관은 소위 내 말을 "씹고"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당초 경찰(담당 수사관)이 우리에게 공개한 고소장은 다해봐야 5~6페이지 정도였는데, 수사관 앞에 놓여있는 고소장은 언뜻 봐도 족히 수십 페이지는 되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수사관 앞에 놓여있는 고소장을 확인해보니 그야말로 고소장 기재 내용의 대부분을 다 삭제한 채(그것이 정보공개가 불가한 증거 내지 개인정보 등의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을 공개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극히 일부 공개"를 위해 고소장 하단의 페이지 수 기재조차 일부러 다 삭제하고(페이지 수가 나와 있으면 수십 페이지가 통째로 다 날라갔다는 것을 변호인이 눈치챌 것을 우려하여) 일부 공개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수 시간에 걸쳐서 조사가 진행이 되었고(수사관은 모든 조사 시간 내내 의뢰인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계속하여 반말을 하였고, 심지어 변호인인 나에게조차도 반말조로 말을 하였다), 수사관 본인이 예상한 그 이상으로 우리가 방어를 너무 잘했는지, 적잖이 당황한 수사관은 거의 대부분의 혐의 내용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고 극히 일부에 대한 조사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갑자기 조사 중단을 선언하고는, 나머지 조사는 다음에 다시 기일을 잡고 진행하겠다고 하였다.
마저 조사를 마무리 해달라고 의뢰인은 물론 변호인인 나도 거듭 부탁을 드렸음에도, 추가로 확인해야 할 게 있다고 하면서, 나머지 내용에 대한 수사는 다음에 진행하겠다고 일방 통지를 하였다.
그리고는 담당 수사관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저쪽도 만만치 않은데"
위 말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음을 자인하는 말임과 동시에 저쪽(전 국회의원인 S모씨와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는 P씨)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한 말이었다.
실컷 열심히 방어권을 행사하고 힘든 조사를 마친 의뢰인과 변호인에게, 객관적이고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한 수사를 해야 할 의무와 책무가 있는 수사관이 조사 말미에 "저쪽도 만만치 않다"는 말을 도대체 왜 한 것인지? 저쪽이 만만찮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용을 쓰고 방어를 잘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인지?
조사 말미에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위 말을 듣고 실의에 빠진 의뢰인을 보며, 오랜만에 전투욕과 승부욕이 마음 속에서 타올랐다.
2. 사무실로 돌아와서, 고소장에 대해서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담당수사관으로부터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또 정보공개 청구 뭐하신 거야?"라고 또 다시 대뜸 반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능히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전화가 올 때부터 녹음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시작하였음은 물론이다.
위와 같이 수사관이 변호인에게 반말을 내뱉는 것을 다 녹음한 후, 수사관이 피의자 신문 때부터 지금까지 의뢰인과 변호인에게 계속하여 반말한 것 및 고소장 내용을 고소인 기재란 및 페이지 수 기재란까지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극히 일부만을 공개한 것, 남은 조사를 마저 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채 조사 말미에 "저쪽도 만만찮은데"라는 매우 부적절한 말을 한 것 등을 조목조목 다 문제 삼으며 문제제기를 하였고, 나의 강공(?)에 매우 당황한 수사관은 거듭 사과를 하며 고소장을 다시 제대로(?) 정보공개해주겠다고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된 고소장을 열람등사 한 후, 남은 내용 조사를 위한 두 번째 피의자 신문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수사관은 작심하고 나를 패싱하였고, 조사 도중 변호인인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내 말에는 아무런 반응도 대답도 하지 않고 철저히 내 말을 무시한 상태에서 조사를 하였다.
위 조사 이후에도 모든 연락은 변호인이 아닌 의뢰인에게 직접하였고, 의견서 및 증거 제출 요청도 변호인인 내가 아닌 의뢰인에게 하였다(이 경우 결국 의뢰인은 다시 나에게 전화와서 수사관이 이런 말을 하던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수사관이랑 통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위와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어,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엄연히 변호인이 선임이 되어 있는 만큼 변호인인 나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자, 갑자기 위 수사관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정말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시 경찰서로 수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위 수사관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에도, 그 이후로도 내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의뢰인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내가 참고 넘어가려고 하였으나, 저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의뢰인과 협의한 후, 해당 경찰서장은 물론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까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고, 위 수사관에 대한 감찰 및 징계와 수사관 교체를 요구하였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던 사람이, 위 문제제기한 바로 다음 날 우리 사무실과 내 휴대폰으로 수십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나는 받지 않았다.
그러자 위 수사관은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마치 자신이 혐의없음 불송치결정을 내려줄 것처럼 말하면서, 변호사님에게 잘 말해서 위 문제제기를 철회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한다(그러나 의뢰인 역시 위 수사관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였고, 내 마음도 그와 같았다).
의뢰인에 대한 감언이설을 통해서도 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자, 약속도 하지 않고(물론 약속 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였겠지만) 대뜸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서, 나를 한 번만 뵙게 해달라고 직원에게 사정을 하였다고 한다. 직원이 용무를 묻자, 사과 드릴 일이 있다고 하면서 3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서,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변호사님 시간이 되실 때까지 응접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나는 끝내 만나주지 않았고, 결국 위 수사관은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직원의 거듭된 종용("변호사님께서 만나실 생각 없다고 돌아가라고 하십니다")을 듣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잠시 후 위 수사관으로부터 사과 문자가 왔다. '사과 드리기 위해 찾아갔으나 뵐 수 없어서 문자로 사과를 대신하고, 수사관은 즉각 교체될 것이고 새 수사관에게 잘 인수인계해서 사건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3. 위 사건의 주된 쟁점은 '피고소인인 대표이사가 사직을 하였는지의 여부'였다.
고소인들은 피고소인인 대표이사가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므로 더 이상 위 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었고, 따라서 대표이사로서의 아무 권한도 없었으므로, 대표이사도 아닌 자가 마치 대표이사인 것처럼 행한 각종 행위들(직원들의 경우 대표이사도 아닌 자로부터 지시를 받고 행한 각 행위들)은 위 각 범죄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나는 2단계로 위 주장을 방어하였다.
첫째 사직을 한 사실이 없고(고소인들은 사직서를 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해당 사직서는 증거로 제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둘째 설령 고소인 주장처럼 사직을 하였다 하더라도, 상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할 때 주식회사의 유일한 대표이사의 사임으로 법률 또는 정관 소정의 대표이사에 결원이 생긴 때에는 새로 선임된 대표이사가 취임할 때까지 종전 대표이사가 대표이사로서의 권리, 의무를 유지하는바, 위 회사에서는 아직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된 사실이 없으므로 위 대표이사를 "종전의 대표이사"로 보는 경우라 하더라도 위 대표이사가 법률상 대표이사로서의 권리, 의무를 현재까지 유지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위 주장은 새롭게 교체된 수사관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피의자들은 그 전체 혐의에 대해서 모두 혐의없음 불송치 결정을 받게 되었다.
4. 변호사 초창기 때, 지하철에서 우연히 한 연차가 많으신 선배 변호사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 변호사님은 나에게 변호사가 하는 일의 99%가 사실관계 다툼이라고 하셨다.
실제 사건을 해보면, 법리를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실관계가 어떻게 인정되느냐에 따라 그 사건의 승패가 거의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당시에도 위 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지금도 위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은 변호사에게 매우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이다.
변호사는 위 "기본"을 토대로, 특정 사실관계가 진위불명에 빠진 경우 및 때로는 불리한 사실관계가 인정될 경우까지를 대비한 주장을 펼쳐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법리"이다.
위 사건 역시 피의자가 사직서를 제출하였다는 직접 증거는 없지만, 그렇게 볼 여지도 있는 간접 증거 내지 정황 증거는 있는, 다소 불리한 사실관계 하에서, 법리로 무혐의를 이끌어낸 사건이다.
5. 위와 같이 무혐의 불송치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위 만만찮은 자들이 갑자기 위 혐의없음 불송치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하였다(나는 검경수사권 조정 입법이 이루어진 초창기 때부터 경찰의 혐의없음 불송치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점을 입법의 미비로 지적하여왔다. 즉, 현행 법률에 따르면, 위와 같이 무혐의 불송치결정이 나고 수년 후에라도 고소인들이 이의신청을 하기만 하면, 경찰은 반드시 위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무혐의 불송치결정을 받은 피의자들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