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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Dec 04. 2023

갑이라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갑질

불편한 사람을 견디지 못하는 그릇을 가진 지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그래서 현재 내가 맺고 있는 관계는 대체로 불편하지 않다. 불편해도 견뎌야 하는 건 가족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을 때에는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 그럴 때 나는 좀 지르는 편이다. 이판사판 에라 모르겠다 끝장을 본다고 해야 하나? 불편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단 불편해지고 나면 참지 못한다. 끊어내거나 나쁜 년이 되는 길을 택한다. 우스갯소리로 절연이 특기라고 한다. 물론, 그보다는 피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최근 옆반 선생님이 학부모의 과도한 요청과 관리자의 어정쩡한 태도로 고통받고 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아, 출근하기 싫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옆반 선생님이 떠올랐다. 오늘 얼마나 출근하기가 싫을까? 지난 여름 서이초에 붙은 포스트잇에도 그런 말이 써 있었다. 얼마나 학교가 오기 싫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와서 "오늘 출근하기 너무 싫었지?"라고 물으니 너무 오기 싫어서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세상에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해달라고 조르는 학부모와 관리자는 자기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하는지 모르는 걸까? 아이들 간에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로 아이가 힘들어하면 교사는 당연히 힘들어하는 그 아이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너무 힘이 들거나 사안이 심각하면 학교 폭력이 접수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과와 처벌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전에 담임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과를 주고 받고 서로간의 이해를 도모하거나 거리를 두게 하는 정도의 생활지도이다. 그 외의 요구는 담임 선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인데 그걸 요구하고, 그 요구를 단칼에 자르지 못하는 학교 문화로 인해 고통받는 교사가 어디 한둘일까?


본인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는 모든 행동은 갑질이 된다. 학부모와 교사는 결코 갑과 을이 될 수 없다. 물론 을과 갑도 될 수 없다. 그들은 협력 관계이다. 고민이 있으면 따지기 보다는 의논을 해야 하며, 그 의논의 결과는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 그런 예를 나는 올해도 여러 건 확인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나에게 날카로운 무기를 들이댈 사람들이라는 각오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유리판을 걷듯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관계를 맺으면서.  그 유리판이 깨지고 나면 적이 될 수도 있지만 결코 적이 되어서는 누구도 얻는 게 없는 게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유리판이 깨지지 않게 옆에서 같이 걸어야 하는 사람이 관리자인데, 몸만 사리느라 유리판이 깨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가 너무 많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사람 좋다는 평판과는 무관한 그 자리의 능력치이다. 교사도 관리자도 학부모도 자기의 자리에서 그 유리판을 깨지지 않게 함께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에 성공하는 것이 그 자리에 있는 이의 능력치이다. 학부모가 왠 능력이냐고? 능력있는 부모란 그런 것이다. 자기의 콧대를 높이며, 아이의 어려움이 나의 무능처럼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어려움을 품고 성장하도록 돕는 것 말이다. 그것은 갑을 관계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결과이다. 


어제 아이와 사자성어를 공부하다가 '갑론을박'이 나와 설명을 해줬다. 갑이 논하고 을이 반박하는 건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갑과 을의 모습이 아닌데, 우리는 갑과 을을 언제부터 이렇게 삐뚤하게 규정했을까? 갑도 을도 병도 정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청하면 되는 건데 왜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하며 과도한 일을 요구하고,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부조리한 지금의 불편함이 내게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당사자는 얼마나 힘이 들까? 지금은 너무 얽히고 얽혀서 관리자-교사-학부모-담당자 간의 속시원한 해결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최종 결단은 관리자의 몫이다. 그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교사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교육하지 못할 때, 부모가 부모로서 아이들을 양육하지 못할 때, 관리자가 관리자로서 학교를 운영하지 못할 때에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교육도 양육도 운영도 모두 교사가 책임져야 하는 학교는 비정상이다. 그 비정상의 공간에 있다는 것이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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