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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Dec 08. 2023

[독서일기] 책은 늘 경이롭다. 단,

다이어리가 끝을 향해 빈 공간이 다해가고, 새 다이어리가 배송오는 때이다. 아, 한 해가 저무는구나! 하는 감상 따윈 사실 잘 갖지 않는다. 그런 것에 본디부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터라 여전히 그저 하루 하루에만 신경 쓰며 살지만 하람이의 예비 고1의 생활은 빨리 저물었으면 좋겠다 싶다. 제 말 마따나 얼마나 지루한가! 학교에서는 더 가르쳐주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들 뭉터기로 밤 늦게까지 배우는 삶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 공부의 맛을 안다면 좋겠지만 그건 소수의 아이들이게만 해당하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나 같은?


최근 안색이 어두어 보는 내 마음도 같이 어두워졌다. 며칠 시도해봤는데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도했다. 오늘은 좀 순순한 것이 좀 풀어놓으려나 싶었는데 역시 마음을 말해준다. 역시나 공부 문제, 그리고 학원 선생님 문제. 어릴 때부터 선생님에게 까다로웠다. 속으로는 '실력도 없는 녀석이 따지기는!'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면야 어쩌겠는가? 들어주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과 상대를 미워하면 가장 힘든 것은 본인이라는 둥의 꼰대스러운 말들을 전했다. 다행히 아이는 반쯤은 받아들였다. 이후에는 나의 수다를 아이에게 발사하는 시간이었다. 어찌됐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간 아이, 그 문 밖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좀전에 [사조영웅전] 2권을 끝낸 터라 새로운 책인 헤세의 독서에세이를. 쇼핑 라방과 함께 보기엔 무게감이 있는 책이라 [사조영웅전] 3권을 읽을까 하다가 독서도 라방도 필요한 만큼씩만 보자 생각하며 그냥 읽기로 했다. 삶의 배경이 다른 사람의 에세이보단 주변의 고민과 비슷한 내용이 담긴 에세이가 더 공감이 되곤 하지만 헤세의 독서에세이 아니 책 비평을 읽으니 과연 헤세는 대작가로구나 감탄하게 된다. 감탄의 맛은 공감의 맛보다 못하지 않다. 난 도대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그따위로 읽었다니! 톨스토이는 어떻고? 과거 이 책들을 다룬 독서에세이를 적지 않게 읽었을 텐데 헤세의 겸손하면서도 단호한 평가는 책들을 더더더 읽고 싶게 했다. 


어느 새 아이는 잠이 들었고, 그런 아이의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려보는 밤이다. 책이 뭣이 중헌가, 아들의 성장에 비하면! 헤세 할아버지가 말해도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엔 책은 늘 경이롭다. 두 가지의 경이로움을 모두 마음에 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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