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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Dec 31. 2023

[독서일기] 한 해의 책

매 월 읽은 책을 책달력을 편집해서 공유하곤 하지만, 한 해의 책은 무적 귀차니즘때문에 안 하려고 했다. '올해의 책'을 결산하는 피드들을 볼 때면 '참 예쁘게도 정리한다.' 생각하며 '나도 해 볼까?' 잠시 고민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쁘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글로 적기로 한다. 작년에 했던 결산 이미지를 다시 보니 사업 보고서 같다. 글이 낫겠다.


올해 내 독서의 목표는 '매달 과학책 1권 읽기'와 '매달 한 권은 재독도서', '독서 기록'이었다. 목표가 달성되었다면 나는 12권의 과학책을 읽고, 12권의 책을 두번씩 읽은 것이며, 독서 기록의 밑천이 두둑할 것이다.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나도 잘 몰라 살짝 긴장이 되면서도 기대가 된다.


올해 내가 읽은 과학책은 '궁금했어, 인공지능(유윤한/1월)',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김대식, 챗GPT/ 3월)' - 벌써 한 달은 실패했구나....아니 4월도 없으니 두 달......-,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이야기(딘 버넷/5월)', '다윈 지능(최재천/6월)', '다윈의 식탁(장대익/6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김상욱/8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8월)', '주기율표(에릭 셰리/12월)', '주기율표(프리모 레비/12월)'로 총 9권이다. 이 마저도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 태반이라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하겠다. 하지만 2월과 10월엔 의학, 4월과 5월, 9월엔 수학책을 읽은 것을 비롯해서 '도둑맞은 집중력'이나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 등 과학 언저리의 책은 많이 읽었으니 노력은 했다고 편을 들겠다. 내 편을 내가 들어야지 누가 들겠는가?


다음으로 재독한 책의 목록을 정리해보자. 연초에는 노력을 했는데 작심삼개월을 못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책달력을 보고 놀랐다. 1월도 2월도 3월도 재독한 책이 없었다니! 애초에 나는 그 계획을 안 세웠던 건 아닐까? 도저히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내가 재독에 성공한 책은 '위대한 개츠비',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로마 공화정', '불안' 고작 네 권 뿐이다. 계획을 세우자마자 잊어버리다니 이건 다이어트 시작하자마자 요요를 겪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이 무성의했다. 내년 계획에 다시 써먹어야겠다.


'독서 기록'으로 올해는 빨간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매일 독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아마 한 8월까지는 매일 썼던 것 같다. 그날 못 쓰면 다음 날 아침 일찍 채워넣기라도 했는데 한 번 빼먹기 시작한 후로는 쓰지 않은 날이 쓴 날보다 훨씬 많아져 일기가 주기가 되고 반월기가 되더니 월기가 되기도....오늘은 12월 31일이니 꼭 써야지만 이렇게 여기에 쓰는 것으로 퉁치는 꼼수...그래도 꾸준히는 하였으니 이것은 성공한 것으로 치련다. 내년엔 나도 다꾸를 해보려고 한다. 그냥 연필 들고 쓰는 것도 버거운데 다꾸를? 그래서 매일 쓰는 양적인 기록에서 벗어나 애초에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모두 기록을 남겼던 때로 돌아가 읽은 책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한다. 겨우 1년도 안 지났는데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하는 책들이 적지 않다. 너무 낯설어서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책을 읽고 기록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재독을 하고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공들여 기록한 책을 이기지 못한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책을 얼마나 읽어느냐'가 아니라 '책을 읽고 무엇이 남았느냐'이므로. 필사를 적지 않게 했지만 정리가 부족했던 것 같다. 내년엔 그것에 좀더 힘을 실으며 다꾸를 하겠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구체적 조작기'라고 믿으니까.


책을 읽으며 앞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의미없이 책장을 넘기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진도를 더 나가지 않고 몇 번이고 앞을 반복한다. 반복할 때는 정독은 아니고 밑줄이나 플래그잇을 한 번 더 살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밑줄이나 플래그잇을 줄여나간다. 그렇게 몇 번 하고 책을 다 읽을 때 쯤이면 플래그잇은 처음보다 많이 간소해졌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어보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좀더 명료해진다. 그 말에 내 생각을 보태면 하나의 좋은 기록이 되지 않을까? 최소한 나에게는 의미있는 기록 말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올해는 좀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서이초 선생님 사건 이전에 나는 내 직업에 냉소적이었다.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과 만났지만 내심 피하고만 싶었다. 그런데 수많은 선생님들이 이 길에 자신의 많은 것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서 교사의 전문성에 대해 좀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열정까지 소환하지믄 못했지만 교육서를 꾸준히 읽기로 했다. 그래서 그전에는 육아서에 가까운 교육서를 읽었다면 7월 이후에는 전문가로서 읽어야 하는 교육서를 읽게 되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교사의 고민에 그림책이 답하다', '질서 있는 교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내년에도 이 계획을 이어가고자 한다.


올해 나는 과학서 9권, 재독 4권, 독서 일기와 필사공책이라는 비교적 괜찮은(?) 성적으로 한 해의 독서를 하였다. 이 성공과 실패를 토대로 내년에는 월 1권 과학서와 교육서, 재독서 읽기와 다꾸식 독서 기록이라는 목표를 세워본다. 아울러 작년과 마찬가지로 사업 보고서식 이미지로 한 해 독서를 결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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