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뭐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Jan 12. 2024

[중드일기]암컷보다 진화된 캐릭터를 기다리며

요즘 읽는 [암컷들]에는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암컷들의 주도적인 사례들이 가득하다. 오직 인간만이 과거 수렵 사회에서 형성된 남성 우위의 질서를 본능인 양 유지해 온 듯 하다. 과거엔 여성 인간 역시 생존에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태도가 유리했기에 그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과연 그럴까? 인간 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진화에 관습적 사고 방식이 너무 크게 간섭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책을 읽을수록 동물의 세계보다 못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현대 드라마에서는 물론 국민적 사랑을 받은 시대극 <연인>의 길채를 보면 변화의 모습이 엿보인다. 문화대혁명과 산아제한 등으로 중국 여성의 지위는 우리나라보다 나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경직된 사회였기에 결코 우리나라보다 더 높았다고는 보기 어려울 듯 하다. 오히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산업이 발전된 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된 현재가 가장 여성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하겠다. 그 변화는 드라마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는데 아직도 앞으로 갔다 퇴화하곤 하지만 그래도 짚어볼 만한 드라마 몇 편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고전적인 중드 무협에서 여성은 절세미녀로 갑자기 등장해 절대 무공의 남자 주인공을 유혹하는 역할에 그칠 때가 많다. 남자의 큰일을 미모의 여자가 그르친다는, 마치 여성 캐릭터들을 꽃뱀취급하는 드라마는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백발마녀전>의 옥나찰이나 <육지금마>의 황설매를 처음 만나면 매력을 넘어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물론 동물의 세계에서 만나는 순도 100% 주체적인 암컷 캐릭터는 아니지만 절대무공의 절세미녀로서 드라마를 주도하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서 자긍심을 느끼게했다. 더이상 여성은 드라마의 민폐 캐릭터가 아니란 말이오! 지금도 이 정도로 쎈캐는 잘 없는데 양우생, 예광 작가에게 내가 넙죽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옥나찰이나 황설매 이후에 오랜만에 만난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는 화천골이다. 물론 화천골은 옥나찰이나 황설매처럼 쎈캐로 시작하지 않는다. 하긴, 옥나찰이나 황설매도 날때부터 쎈캐는 아니었겠지만. 순수하고 어린 화천골을 사람들은(특히 남자들은) 무척 사랑해준다. 그런 사랑 속에서 꿋꿋하게 실력을 쌓아가지만 순탄치 않은 운명 앞에서 흑화되는데, 화천골이 흑화 되기 전과 후에 자신의 방식대로 스승을 사랑하는 방식이 인상깊다. 물론 그 사랑은 많은 시청자들이 고구마구간이라 부를 만큼 우직했지만 그건 화천골 때문이 아니라 남주인 백자화 때문이니까. 앞선 두 작품만큼 자긍심을 주지는 못했지만 화천골의 강인한 정신력만큼은 인정할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목적에 극도로 충실하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도 너무 많이 받는 캔디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민폐지만 (더 큰 민폐 캐릭터가 있기에) 민폐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나쁘지 않은 암컷 캐릭터라 하겠다. 


이후 최근까지 보는 많은 중드 속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민폐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랬다간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다. <유리미인살>이나 <구주천공성>이 재밌기는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남자 배우의 연기와 외모 덕분이지 여성 캐릭터로는 꽝이다. 반면, <어사소오작>의 초초는 사건 수사도 주도적으로 해내고, <몽화록>의 조반아는 남자의 도움 그까짓 거 안 받아도 혼자 더 잘 해낸다. 특히 조반아의 경우 자신을 버린 남자의 못된 제안에 흔들리기는 커녕 그 남자를 자폭하게 만드는 독립적인 태도가 너무 매력적이라 재작년에 본 드라마 중 가장 높이 평가하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들 모드 옥나찰이나 황설매같은 강인함이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수컷 거미들이 거미줄에서 암컷 눈치를 보며 박자를 쪼개가며 매력 발산을 할 때, 언제 잡아먹을까 판을 짜는 암컷 거미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는 언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동물의 세계는 자칫 암컷 중심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우위에 있다고 하긴 어렵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하는 목적, 암컷은 좋은 유전자를 선별하고 건강하게 양육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판에 들어선 것이니까. 그에 비해 인간은 많은 결정을 아직도 남성들이 주도한다. 


내가 <사조영웅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황용과 곽정 때문이다. 시즌에 따라 곽정은 너무 바보처럼 그려져서 보는 내가 민망하기도 하지만 소설을 기준으로 하자면 그 역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우직하게 제 갈길을 가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가 될 황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기 희생도 적극적이다. 그건 곽정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사람의 사랑과 희생에는 강요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간 남자의 힘에만 의지하는 연약한 존재이자 민폐 캐릭터였던 수많은 여성 인물들을 떠올리자만 옥나찰과 황설매가 합쳐진 쎈캐가 한번쯤 등장하는 게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또한 너무 균형에 어긋난다. 최근 곽정과 황용을 다시 만나며 인간 사회에서도 암컷과 수컷이 이렇게 지낸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무협 보면서 별 생각을 다하지만 볼수록 곽정과 황용의 윈윈 전략의 태도가 매우 진화된 인간 모습처럼 느껴진다. 이런 모습의 인간일 때, 비로서 여성 인간은 암컷 거미의 태도를 부러워하지 않을 테니 부디 이런 인물이 많이 그려지길 바란다. 적어도 이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암컷 동물들만큼이라도 자기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챙기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일기] 한 해의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