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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May 17. 2024

[중드 일기] 김용 작품 속 전진교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땐, 분명 세계사 교과서에 '전진교'가 나왔었다. 그간 쭉 잊고 살았지만 기억이란 갑자기 소환되는 법! 김용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그 낱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들어 [사조영웅전]에 이어 [신조협려]까지 작품 내내 전진교 도사님들이 자꾸 등장하니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생각났어!' 궁금한 마음에 지금 교과서들에도 전진교가 나오는지 여러 디지털 교과서를 뒤적여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물어도 전진교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우리 땐 왜 그걸 교과서에 배운 걸까? 생각해보면 중국의 한 종파에 대해 교과서에까지 실린 그때가 오히려 이상하다. 기왕 떠오른 것, 어떤 내용이 실렸는지도 기억이 나면 좋을 텐데 내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 건 단지 당시 좋아했던 선생님의 성함이 '정진교'였기 때문인지라 이름만 기억하는 것도 용하다. 


그간 무협 속에서 도교 문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무래도 전진교나 무당파, 화산파가 비교적 비중있게 그려진다. 무당파나 화산파는 사조삼부곡의 마지막 작품인 <의천도룡기>에서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 외에도 <봉신연의>의 신화적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수많은 도교 문파들이 있겠지만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어 전진교만 이번에 한 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물론, 김용 소설 두 편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를 통해서만 이야기하기에 시야가 좁을 수 있다. 어쨌든 전진교는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는 도교 문파이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신조협려] 5권에는 다음과 같이 전진교를 설명한다. 


 북송의 도교는 원래 정을일파만 있었으며, 강서 용호산의 장천사가 통솔했다. 금나라의 침략을 받아 송나라 황실이 남하했고, 그즈음 하북에서 도교의 문파가 새롭게 세 개 탄생했다. 이것이 바로 전진, 대도, 태을이었고 그중 전진파가 가장 융성했다. 전진교 도사들은 의로운 일을 행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의와 협을 널리 떨쳤다. (264쪽)


도교란 도가를 바탕으로 하지만 도가는 사상, 도교는 종교이기에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읽은 마보융의 [풍기농서]에 등장하는 오두미교나 당나라 배경의 중드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도교 문화,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무당파의 모습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치 않지만 중국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도교 사당들이 적지 않아 대만을 방문했을 때에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노자를 태상노군이라고 추앙하는 것을 보면 도가 사상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조영웅전>의 배경은 남송 시대로, 금나라는 송나라를 정복하고자하고 몽골은 테무친(훗날 칭기스칸)이 세력을 형성하는 때이다. 송나라 사람이지만 몽골에서 자란 곽정이 주인공이며, 그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는 이들이 바로 '전진칠자'로 전진교의 창시자 왕중양의 제자 7명이다. 그들 중 곽정에게 내공을 알려주는 이가 전진교의 2대조사이자 왕중양의 계승자인 '단양자 마옥'이다. 그를 포함한 왕중양의 일곱 제자를 일컬어  '전진칠자'라 부른다.


<사조영웅전>에서 마옥은 당시 전진교 장문인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몽골까지 와서 곽정에게 내공법을 몰래 알려주었고, <신조협려> 속 대화 내용에서 전진교의 창시자인 왕중양도 테무친을 만나러 직접 몽골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할 당시 전진교는 몽골과 사이가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나라라는 공동의 적을 두었기에 잠시 힘을 합쳤을 뿐 결국은 적이 될 사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사조영웅전>에서 곽정과 전진칠자는 금나라 편에 붙은 양강과 또다른 악당 구양봉, 구양극에 대항하는 구도가 자주 펼쳐지는데, 이때 큰 힘을 발휘하는 전진교의 무공이 '천강북두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북두칠성을 모티브로 한 진법으로 전진칠자 모두가 힘을 합했을 때 개개인의 능력치를 모두 합한 것 이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진법이다. 동사 황약사도, 서독 구양봉도 두려워하는 무공인데 안타깝게도 구양봉의 수에 당해 한 사람(장진자 담처단)이 사망하면서 이후에는 다소 힘을 잃었다. 

<사조영웅전 2017>, 황약사를 상대로 천강북두진을 펼치는 전진칠자.

시대가 변해 <신조협려>에 이르러 몽골은 그 힘이 거대해져 칭기즈칸과 오고타이칸의 시대가 지나고 쿠빌라이칸의 시대가 다가온다. <신조협려>에서 흘필열이라고 등장하는 왕자가 바로 훗날 쿠빌라이칸이 되는 사람으로 원나라 1대 황제가 된다. 금나라를 몰아내고 이제는 송나라까지 넘보는 몽골이 <신조협려> 빌런의 한 축이다. 그런 몽골을 어찌 전진교에서 좋아할 수 있을까? 몽골은 명분을 얻고자 전진교를 흡수하려고 갖은 수단을 쓰고, 전진교는 항몽투쟁을 하게 되는데 앞서 전진칠자 중 이미 두 사람(담처단, 마옥)이 세상을 떠 사실상 힘이 많이 약해졌다. 천강북두진도 약해지고, 뒤를 잇는 제자들의 실력도 윗 세대만 못하다. 장문인이 된 구처기도 그 점이 안타깝다. 


구처기가 근심스러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전진오자의 무공은 모두 국사 등의 실력에 미치지 못했다. 전진파의 무공이 대를 이어갈수록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지금 대적을 눈앞에 두고 전진파는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는 비참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 가닥 위로를 한다면 다섯 사람이 만들어낸 칠성취회는 몽고 밀종에게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35쪽)


 칠성취회도 크게 힘을 내지는 못한다. 전진교 외 고수들의 무공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왕중양의 사제였던 자유로운 영혼 '주백통'이 있어 그나마 전진무공이 한때나마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두 작품 모두에게 존재감이 빛나는 '주백통'은 단정한 여타의 전진교 도사들과는 달라 가상인물로 추정했으나, 나무위키에 따르면 '의외로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나 역시 의외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뛰어난 아웃사이더로 전진교보다는 개방파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다. 

네이버 이미지 검색으로 소환되는 '주백통' 단정한 도교 도사의 분위기와 다르다. 

[신조협려] 5권에는 몽골의 사신이 전진교에 성지를 내리고자 전진교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몽투쟁에 참여하는 전진교로서는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전진칠(오)자가 폐관수련에 들어가 이에 대해 내부 회의가 열린다. 견지병은 구처기의 수제자로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지만 소용녀를 겁탈한 죄를 지어 내심 자결을 결심하는 바 장문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왕처일의 제자 조지경이 장문 자리를 탐내는 것을 몽골이 이용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애국충정의 마음도 옳지만 조지경의 말에도 설득력은 있다. 애국충정을 고집하다가 전진교는 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 성지를 수용하면 전진교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 말이다. 어쩌다 전진교가 이런 처지가 되었나? 


전진교의 창시자 왕중양은 그 무공이 가히 천하제일이라 제 1차 화산논검에서 동사(황약사), 서독(구양봉), 남제(단지흥), 북개(홍칠공)을 이기고 구음진경을 손에 넣는다. 이후 구음진경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사조영웅전>에 그려져있고, 전진칠자는 천강북두진이 아니어도 개개인의 능력도 못지 않다. 물론 왕중양과 그의 사제 주백통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견지병과 조지병의 무공 수준은 전진칠자에도 한참 아래이다. 더구나 이 세대의 전진교 도사들은 이미 속세화되어 몽골이 아니어도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 외에는 전진교를 다루는 작품은 거의 없는 듯 하다. 명맥을 이어갔다면 <의천도룡기>에서도 전진교가 등장해야 하는데 이미 도교는 무당파와 화산파로 세가 넘어갔다. 


왕중양과 견지병은 전진교의 1세대와 3세대 도사이다. 대략 50여년의 세월이 차이난다. 한때 강호 천하제일이었던 무공이 50년 만에 이름만 남은 상징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니 씁쓸하다. 영원 아니 최소한 50년 보다는 오래 명예를 높이며 살 줄 알았을 텐데 조지경같은 내부의 배신자도 생기고 명예조차 스스로 깎아 먹는 처지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신조협려>의 견지병은 <사조영웅전>에 나온 윤지평과 애초에 같은 인물이었는데 실존인물이었던 윤지평을 성범죄자로 그린 것 때문에 개작할 때 견지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사조영웅전>에서 윤지평은 열혈남아의 분위기였는데 <신조협려>의 견지병은 그에 비해 생각이 너무 많아 보여 다른 사람으로 그리는 편이 나은 듯도 하다. 아무튼, 윤지평이 천강북두진의 빈자리를 채울 때만 해도 전진교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텐데 화무십일홍의 교훈을 전진교에서도 느낀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잊혀지지 않는 몇 장면 중의 하나였던 '전진교'. 그 이름을 이번에 되새기며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는 내용도 모르고 이름만 기억하던 중국의 한 종교에 대해 이제와 찾아보고 정리하는 내 모습이 좀 우습기도 하다. 공부에 때가 있다고 했던가? 그때 나는 세계사를 60점 맞았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열심이라니! 공부에는 때가 없다. 그냥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언제든 앎은 찾아온다. 이제 슬슬 <신조협려>를 마무리짓고 <의천도룡기>로 넘어가 무당파를 만나볼까나? 새로운 세상이 또 열릴까? 알고보면 지금까지도 전진교라는 종교가 알게 모르게 유지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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