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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Sep 06. 2024

아버지의 장례식

할머니는 여든에 죽었다

동생은 스물에 떠났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친척들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웃기도 했다 간간히 고성高聲을 쌓았다 아버지는 그들의 원망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아버지가 낯설었다 그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동생의 장례식에서 아버지는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울음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도 많이 울었다 갑자기 자식 사랑이 끔찍해진 아버지가 낯설었다 그는 남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의 죽음은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아버지의 모습처럼 지나가는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단지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어느 한 장면도 기억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그 어떤 흔적도 되길 원하지 않았다


동생이 떠난 것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울고 당당하게 원망하는 아버지가 역겨웠다 돌연한 죽음이었지만 죽음의 이유는 아버지를 향했다 매번 청춘을 돌려달라 노래 부르던 아버지는 아들이 청춘이 되도록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동생의 죽음이 아버지를 자라게 할까? 어쩌면 기대를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아버지는 자식의 죽음으로도 성장하지 못한다


죽은 할머니와 떠난 동생보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가장 두려운 건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니 아버지의 장례식이다 가족에 대한 횡포를 정당하다 말하는 이의 죽음은 두렵지는 않다 다만 두려운 것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기억할 필요없는 기억을 불러와야 하는 일이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여기 있다 연민이 있으나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긴 어렵다 부모는 나를 사랑한다 했지만 그 사랑은 속이 시커멓다 


영정 사진을 들고 시뻘개진 눈으로 가족과의 이별을 괴로워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시뻘건 눈을 부러워하며 속이 시커먼 아버지를 떠올린다 자식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도 자신의 장래만 걱정하는 아버지가 있다 새까맣게 탄 속이 재가 되어 사라질까 기대하며 아버지의 장례식을 걱정하는 자식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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