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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Apr 17. 2022

회사 10년이나 다녔는데, 왜 돈이 없는 걸까요?

가계부, 재정 관리의 첫걸음

얼마 전 회사 여자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후배가 묻는다.

"저는 회사를 10년이나 다녔는데, 왜 돈이 없는 걸까요?"

글쎄, 본인이 답할 문제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나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주로 돈을 어디에 쓰는데?"

"모르겠어요.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닌데."

나는 다시 물었다. 

"혹시 가계부를 쓰고 있어?"

"가계부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마치, 요즘 같은 시대에도 가계부를 쓰는 사람이 있는 건지 몰랐다는 표정이다.


어릴 적 엄마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시고 가계부를 적곤 하셨다. 콩나물 얼마, 두부 얼마, 시금치 얼마 등 주로 식비 관련 내용들이었다. 때로는 쓴 돈과 남은 돈이 맞지 않는다며 머리를 쥐어짜시며 잃어버린 돈의 행방을 추적하곤 하셨다. 연말이면 여성 잡지에서 부록으로 주곤 했던 알록달록한 표지의 가계부들과 날마다 가계부를 쓰시던 엄마의 모습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난 지금, 낡은 사진첩 같은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몇 년 전 결혼해서 각자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네 자매가 모여 얘기를 하다가 네 명 모두 가계부를 쓰고 있고, 모두들 가계부를 쓰시던 엄마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께 물려받은 DNA 때문인지 엄마를 보고 배웠기 때문인지 아무튼 우리 네 자매는 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각자 가계부를 쓰고 있었다.


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부터 가계부를 썼던 것 같다. 가계부라고 따로 이름 붙인 노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수첩의 일부 페이지에 선을 그어 돈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 기록했다.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던 때에도 나는 가계부를 적고 있었고, 결혼과 함께 남편은 자발적으로 재정 관리를 내게 일임했다. 가계부를 성실하게 쓰는 내 모습을 보고 그런 결정을 쉽게 한건 아닐까, 혼자서 짐작해본다.  


지금은 가계부 앱을 사용하고 있어 가계부를 쓰는 것이 전혀 번거롭지 않다. 돈을 쓸 때마다 가계부 앱을 열어 분류만 해주면 그만이다. 간단한 작업이지만, 이렇게 가계부 정리를 해야 한 달이면 얼마를 벌고, 얼마나 쓰는지, 생활비, 식비, 교육비, 교통비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가능해진다. 예전의 엄마처럼 쓴 돈과 남은 돈을 맞추느라 머리를 쥐어짜지는 않는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카드를 주로 쓰다 보니 돈의 흐름을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예를 들어 카드 3개월 할부로 15만 원짜리 물건을 산다고 하자. 가계부에는 이번 달에 15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하지만 이번 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5만 원이다. 그래서 가계부에 쓴 돈과 통장 잔액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 나는 가계부 앱으로는 카드를 긁는 날 기준으로 15만 원을 썼다고 적는다. 한달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확인하는 용도이다. 그리고 별도의 자산관리 앱을 이용해서 자산의 흐름을 관리하고 있다.


체중 관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맨 먼저 날마다 몸무게를 측정하게 된다. 그게 체중 관리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재정 관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가계부를 적는 것부터 시작할 일이다. 


마트에서 카트에 살 물건들을 하나둘씩 집어넣고,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받아보고는 뭔가 계산이 잘못되었나 싶어 카트의 물건을 이것저것 다시 살펴봤던 적이 있다. 하나둘씩 살 때는 이렇게 큰 금액이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예상보다 큰 금액에 놀라게 된다. 혹시 계산이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계산해 본 적도 있지만, 계산이 잘못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계부를 쓰다 보면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특별히 돈 쓴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한 달 씀씀이를 되돌아보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어서 놀라곤 한다. 


가계부를 써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면 재정 계획을 세울 때 유리해진다.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게 되었을 때, 얼마나 걸려야 그 돈을 다 갚을 수 있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가계부를 쓰다 보면 아무래도 돈을 아껴 쓰게 되는 효과도 있다. 평균적으로 한 달의 씀씀이가 대충 얼마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출이 평상시보다 초과된다 싶을 때는 자발적으로 절약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노후 계획을 세울 때도 오랫동안 데이터가 쌓인 가계부는 큰 도움이 된다. 가계부를 써야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통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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