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푸치노 Dec 24. 2021

왜 우리는 뒷담화를 좋아할까

직장인들의 가장 저렴한 오락이자 위안

뒷담화는 사전적으로는 "남을 그 사람이 모르게 헐뜯는 행위, 또한 그러한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영어로는 backbite인데 "to say unpleasant and unkind things about someome who is not there"로 역시 남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굳이 부정적인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넓은 의미로 남의 얘기하는 걸 뒷담화라고 폭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를 돌려보니 뒷담화를 "험담"으로 변경하라고 집요하게 요청하지만, 직장인들이 소규모로 모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걸 표현하기에는 험담보다는 뒷담화가 더 적절해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뒷담화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며, 뒷담화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뒷담화는 위로이자 위안이다.


요즘은 많이 덜하지만 전에는 회의 시간에 제왕처럼 군림하는 호랑이 같은 상사에게 소위 말하는 "깨지는"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했었다. 선배들은 "나 때는 재떨이도 날아다녔다"라고도 말하고는 했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호랑이들은 툭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인격 모독적인 발언도 서슴없이 내뱉고는 했다. 특히 다 같이 혼나는 거면 그나마 다행인데, 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게 호랑이에게 상처 받은 토끼를 같은 토끼 무리가 위로하는 방법은 호랑이를 함께 욕하는 것이다. 호랑이를 욕하다 보면 그 호랑이가 나쁜 호랑이였을 뿐, 토끼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오늘 상처 받았고 힘들었지? 괜찮아" 이런 다소 낯간지러운 말에 비해 호랑이를 함께 욕하는 것은 상처 받은 토끼를 위로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상처 받은 토끼는 그 험담 속에서 위안을 받는다. 회의 시간에는 호랑이의 세상이었지만 뒷담화 자리에서는 호랑이는 망가지고 초라해지는 대신 상처 받은 토끼는 호랑이의 스트레스를 받아낸 영웅이 되기도 한다.    


뒷담화는 사회생활의 균형을 배우는 방법이다.


뒷담화는 꼭 험담만 오고 가지 않는다. 대체적으로는 회사 내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 다양한 품평이 오고 간다. 이런 뒷담화를 통해 우리는 회사 내에서의 바람직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한다. 상사의 나쁜 점을 지적하며 뒷담화를 많이 하던 사람은 자신이 상사의 위치가 되면 뒤담화 내용을 기억하여 그런 행동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상사의 자리에 오르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싶어 자신이 욕하던 상사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뒷담화는 직장인의 가장 저렴한 오락이다.


직장인들이 서로 모여 세계평화니 기후 변화 위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뒷담화는 직장인들의 가장 저렴한 오락이다. 뒷담화는 공짜 아냐 싶지만, 뒷담화를 하려면 적어도 커피값이나 담배값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뒷담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뒷담화는 재미있다. 우리 몸속 어딘가에 뒷담화를 좋아하는 DNA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죽음과 맞바꾼 자존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