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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Mar 26. 2022

벤츠를 타면 정말 행복할까

내 차를 사서 운전을 하기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다. 그간 3대의 내 차가 있었다. 두 번째 차는 3년쯤 타다 사정이 생겨 팔았으니 나머지 두 대의 차는 10년을 넘겨 탔다. 나는 차에 큰 애정이 없는 편이다. 차는 그저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되고, 설혹 누가 훔쳐가도 그날 잠자는 데 지장이 없는 정도의 차면 된다고 생각했다. 비싼 새 차는 부담스러웠다. 차를 구매할 때마다 맘 편한 중고차를 사고 싶었지만, 믿을만한 중고차를 사는 게 너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새 차를 샀다. 내 생애 첫 차는 그래서 전시장에 있던 시승용 차를 시세보다 싸게 구매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굳이 큰 차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주차하기 어렵고, 기름값만 많이 들고, 안전에 크게 문제가 없는 수준의 차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몰고 있는 차는 12년 전에 3천만 원을 주고 산 QM5 SUV이다. 처음으로 선루프가 있는 차를 샀고 당시 어린 아들은 선루프를 보고 너무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나는 아들이 좋아해 준 것으로 족했다. 아직 굴러가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래된 차다 보니 편의 사양이 부족해서 좀 더 편하게 운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작년부터 차를 바꾸고 싶어졌다.


어떤 차로 바꿀까, 오래 생각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내 생애 한 번쯤은 비싼 차를 타고 싶어졌다. 제네시스 GV80, BMW X5, 벤츠 GLE를 알아봤고, 나는 벤츠로 계약했다. 그간 차에 대해 가졌던 내 생각과는 많이 달라진 선택지였다. 물론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차를 계약하고 거의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니 그사이 맘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계약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1억이 훌쩍 넘는 차를 선택한 나의 행동에 대해, 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왜 나는 굳이 벤츠를 선택한 걸까.


되돌아 생각해보니 뭔가 김 빠진 듯한 내 삶의 돌파구 같은 선택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시도 때도 없이 부르르 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혀내야 하는 갱년기를 겪으며 사는 게 힘들기도 했고, 삶이 좀 허무했다. 나이에 비해 늦게 얻은 아들을 키우는 재미로 한동안 살아왔는데, 그 아들이 이제는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자 상실감과 허탈감이 나를 괴롭혔다. 오랫동안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회사일에 치여 살아왔지만 이제 회사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이미 치워졌고, 나는 이제 무얼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삶이 김 빠진 사이다 같고 푹 절여진 김치 같이 느껴졌다. 오래 직장생활을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도 돈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내 삶에 극강의 사치를 허용하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고생한 나에게 주는 스스로의 선물이기도 했다. 또한 이만큼 했으니 이제는 직장 생활을 그만둬도 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을 달래며 정년까지 다시 힘을 내서 버텨 보자는 다짐에 대한 가불 선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벤츠를 타면 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한 지 5개월이 채 안된 상태인데 차를 확보했다는 딜러의 연락을 받았고, 다음 주면 차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비싼 새 차가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기대감으로 김 빠진 사이다에 탄산이 조금 주입된 느낌이다. 글쎄, 벤츠를 타고 다니면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껴질까. 하차감이란 어떤 느낌일까.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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