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 받침대 제작기
집에 가재도구가 하나 늘었다. 전자레인지 받침대를 만들었다. 목공방에서 흔히 만드는, 하단에 다용도 수납공간. 중간에 전기밥솥을 넣고 뺄 수 있는 슬라이딩 받침이 있고 상단에 전자레인지를 올리는 주방가전 수납장이 아니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작고 납작한 상자같이 생긴 받침이다. 따로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책상 위에 올려놓을 법한 한 칸짜리 서랍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보기에는 그냥 상자이거나 서랍인데 진짜 전자레인지 받침대라고? 맞다. 지금 쓰고 있는 전자레인지를 현재 자리에서 살짝 높여주고 뒤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있는 용도이고, 크기를 딱 맞춘 전용이니 우리 집에서는 전자레인지 받침대가 분명하다. 이런 게 필요하게 된 연유는 이제 25년이 되어가는 우리 집 주방구조에 있다. 이런 식의 주방이 지금도 보편적으로 설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주방의 싱크대는 싱크볼 뒤쪽. 그러니깐 상판과 벽이 맞닿는 부분에 턱이 있다. 높이는 12cm, 앞으로 돌출 부분은 14cm다. 이 턱 앞에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전자레인지 뒤에 못쓰는 공간이 있다는 얘기다. 뭐 따지고 보면 받침대가 없어도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데우고 녹이는 전자레인지의 기능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러니 딱히 이런 걸 만들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은 엉뚱하게도 새로 산 토스터기에서 비롯됐다. 예전에는 토스터기를 싱크대 아래 수납칸에 두고 그때그때 꺼내썼었는데, 사용 횟수가 늘면서 싱크대 위 전자레인지 옆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토스터기를 쓰다 보니 옆에 식빵도 놓이게 되고 작은 접시가 또 놓이기도 했다. 바로 옆에 전자레인지가 신경 쓰이고 공간이 좁아졌다. 참 신기한 것이 진짜로 공간이 좁아진 건 당연히 아닐 텐데, 이런 땐 항상 물건이 늘어나 공간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마치 공간이 줄어들어 좁아진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딱 식빵 봉지 하나 들어갈 자리가 더 있으면 좋겠는데 이게 그렇게 마음대로 안된다. 식빵 때문에 새 아파트로 옮기는 재벌놀이를 상상하다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정신 차리고 받침대를 만들어 보자고.
싱크대 턱 높이가 받침대의 높이다. 전자레인지의 깊이에서 싱크대 턱의 돌출 크기를 빼면 받침대의 깊이가 된다. 폭의 길이는 당연히 전자레인지의 폭이다. 받침대를 놓으면 싱크대턱이 앞으로 연장되는 모습이 된다. 이러면 전자레인지를 뒤로 밀어 넣을 수 있고 그만큼 앞쪽 공간이 넓어지는 셈이다. 식빵 봉지 하나만큼 세로와 전자레인지 가로길이만큼의 공간이 생겨났다. 가로 45cm 세로 14cm. 평수로는 0.019평이다. 이제 식빵과 버터나이프나 잼 스프레더를 꽂아놓은 통도 편하게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물끄러미 설치된 받침대를 보다가 이걸 만들어 팔면 가격은 얼마나 받아야 하나 싶다. 전자레인지를 받쳐주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을 넓혀주는 효과도 있다. 요즘 서울 아파트의 평당 매매가가 3,800만 원이라고 하니 전자레인지 받침대의 가격은 72만 2천 원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오늘부터 집안 평수를 넓혀주는 신비한 전자레인지 받침대의 주문을 받아 제작 판매한다. 매매가 부담스러우신 분은 전세나 반월세도 협의 가능하다.
<작업 일지>
1. 크기가 이미 결정된 것이어서 나무의 종류와 두께만 결정하면 된다. 다만 옹이가 없는 것이 더 어울릴듯해서 가지고 있던 편백 무절 15t를 사용했다.
2. 높이가 있기 때문에 공간활용을 위해 서랍을 달았다. 얇은 월넛(호두나무) 판재를 편백 15t에 붙여서 서랍 앞판에 사용했다. (기능상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백색 가전 -이젠 진한 아이보리쯤이 되어버린-으로 가는 시선을 진한 월넛 무늬로 옮겨보자는 얇은 생각이었다. 남한테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성공여부는 잘 모른다.)
3. 상판에는 피스나 목심 결구를 하지 않고 연귀맞춤처럼 촉을 넣어 고정해 주었다.
4. 서랍 앞판 월넛 부분에만 오일로 마감하고 나머지는 바니쉬나 오일로 따로 마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편백향이 조금 더 나기도 하고 귀차니즘도 작용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