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커트러리 워크숍
각자의 개성이 담긴 커트러리 (cutlery)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딱 좋은 요거트 스푼, 제대로 된 숟가락, 손에 잡기 좋은 젓가락, 나무 질감 포크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곡선이 돋보이는 뒤집개, 여름 느낌 머들러(muddler), 차 마시는 시간이 더 좋을 차시(茶匙)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주방도구나 생활용품이야 공방에서 흔히 만드는 것들이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모두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대나무 커트러리들이지만 한데 모아 놓으니, 대나무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우리 공방은 매달 워크숍을 진행한다. 따로 선생님이나 교육자가 없이 회원들 간의 정보 교류로 운영되는 자율운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목공 기술이나 장비 기능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때문에, 매달 셀프 워크숍을 열어서 알아야 할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만들어보는 것이다. 먼저 알게 된 사람이 가르치고 다 같이 배워 다시 공유한다. 이번 달의 주제는 대나무다. 죽공예라는 부분이 따로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생활용품으로 워낙 많이 사용된 대나무지만 목공과는 거리가 있다. 통으로, 또는 쪼개고 엮어서 공예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부피가 있는 가구를 만들거나 손으로 깎아서 만드는 카빙(wood carving) 같은 것에는 사용하기 힘든 재료이기 때문이다. 왜? 속이 비어 있으니까. 목재로써 두께가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풀이다. 나무는 매년 자란다. 위로도 자라고 옆으로도 커진다. 대개는 그해 커진 부분이 눈에 띄게 새겨지는데 이게 나이테다. 이렇게 부피생장을 하면 나무, 하지 않으면 풀이라고 부른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 다년생 풀이다. 나이테만 없을 뿐 그래도 굵어지는 것 아닌가 의심해 볼 수도 있지만 대나무는 굵어지는 게 아니다. 대나무의 종류에 따라 죽순의 크기와 굵기가 다른데 이 상태로 그대로 자라는 것이다. 마디 역시 마찬가지다. 한마디 자라고 나서 다음 마디가 이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죽순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성장점이 한꺼번에 자라난다.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이렇게 마디가 동시에 자라기 때문에 대나무는 엄청난 속도로 자랄 수 있다. 신기한 것은 빨리 자란다고 해서 무르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나무보다 1.5배~2배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철이 귀하거나 없던 시절에는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대나무를 많이 사용했다. 엮어 만든 대바구니, 쌀 씻을 쓰는 조리, 국수 담는 채반, 시원한 대나무발, 해를 가리는 부채와 모자, 비를 피하는 우산 같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화살도 되고 울타리도 되었다. 죽창이 됐다가 지팡이가 되기도 했다. 평상도 되고, 집도 되고, 방풍림도 되면서 사람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나무. 아니 풀이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다 플라스틱이다.
이번 워크숍은 대나무 가공 워크숍이자 가능성의 워크숍이다. 새로운 소재에 대한 배움이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이며, 더 나아질 것에 대한 시도이고 진짜로 해보는 현실이다. 플라스틱이 더 편할 수 있지만, 더 편한 것을 좇다 보면 계속 편할 수 없다는 것이 완연히 드러나는 지금에, 다시 부지런히 손을 놀려서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걸음이다.
<워크숍 일지>
1.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가 주재료이다 보니 지름은 작은 대나무는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적어진다. 대나무를 판매하는 곳과 샘플로 만든 숟가락 사진을 보내주니 지름이 큰 대나무를 골라 보내주었다.
2. 커트러리의 본을 그리고 재단하는데 신경 써야 한다. 반원형을 가공하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얇아지기 쉽다.
3. 선택사항이지만 대나무의 푸른 부분과 마디를 살려본다. 딱 봐도 대나무.
4. 보통나무는 결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순결(順결)과 역결(逆결)을 그에 맞게 다루어야 하지만 대나무의 결은 다 한 방향이다. 한 방향으로 깎을 수 있지만 한 번에 깎여나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5. 대나무를 이해하고 다루는데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다. 혼자 작업할 때 보다 재미가 늘어났고 가능성도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