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초보 우드 카빙 도전기 ⑧ 호두나무 나뭇잎 접시
오늘도 유튜브 방송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보물선이 침몰했다는 전설의 바닷속으로 뛰어든 탐험가처럼 간절한 눈길로 바닥을 샅샅이 훑는다. 내가 찾는 것은 우드카빙 유튜버들의 방송이다. 화려한 썸네일과 초보를 자극하는 제목들을 쫓다 보면 한두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리고 만다. 이렇게 만나는 고수들의 칼솜씨와 말솜씨는 또 어떤가?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수십 년을 깊디깊은 계곡에서 폭포수 물방울 10만 개를 칼로 베었다는 무림의 고수는 강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라나이프 120(스웨덴의 칼 제조사인 모라나이프 Morakniv의 대표적인 카빙나이프다)을 휙휙 휘두르면 뚝딱 여우며 고래, 고양이 따위를 생생하게 깎아내는 걸 보고 있으면 속세에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무림비법을 보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다. 마음이 노곤해지는 음악을 배경으로, 밖으로 밀고 안으로 당기고, 나무의 결을 따라 깎으며 마음도 다독이라는 또 다른 스타일의 방송을 보다 보면 내 꼭 저들을 따르리라는 맹서를 하며 좋아요와 구독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카빙 쌩초보에게 유튜브는 정보의 보고이자 동경의 대상이며 추앙의 목표다.
눈이 번쩍 뜨이는 영상을 발견했다. 진정한 고수다. 조각도를 쓰윽 쓰윽 움직이니 살랑살랑한 나뭇잎 모양의 나무접시가 만들어진다. 마치 나뭇잎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잎자루와 잎몸의 모양이 그대로 나타났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잎맥의 생김새인데 가운데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펼쳐지는 가는 선들을 조각도 하나로 만들어 내는 모습은 경찬을 자아내게 한다. 여기에다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도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아직 한 번도 접시를 깎아보지 않은 쌩초보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접시가 될만한 크기의 호두나무(월넛)를 준비하고 조각도를 찾는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직진이다. 사실 쌩초보는 후진을 모른다. 앞으로 가는 것만 배웠지 뒤로 가는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누가 알려주었다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는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내 수준을 가늠할 수 없으니 용기만으로 무장한 것이 초보다.
일단 고수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영상은 보고 또 보다 보니 뭐라 말할 근거는 없지만 왠지 나도 저렇게 조각도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폭이 좁은 6호 조각도를 쥐고 사악사악 전진하면서 네모난 호두나무 판재를 한 떨기 아름다운 나뭇잎 접시로 변신시키리라. 한참을 정성을 다해 작업해 나갔다. 3시간 후. 결과는 굳은 다짐과 비례하지 않았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난생처음 잡아본 조각도로 새까만 고무판을 쭉쭉 그어댄 것 같은 무늬 아닌 무늬가 나무 위에 펼쳐져 있었다. 실패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지고 조각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뚫어졌다. 원하는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아 깎아내고 또 깎아내고 깎아냈더니 바닥이 뚫어져 버린 것이다. 40여 년 전 그날, 시커먼 고무판을 너무 깊이 파서 책상에까지 조각도의 자국이 난 것처럼.
이럴 땐 일단 커피 한 잔이다. 커피믹스 봉지를 컵에 털어 넣고 휘휘 저어 후후 마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유튜브를 다시 보지만 답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대개의 영상들이 중간과정은 없고 나무를 깎기 시작해서 사각사각 나뭇밥이 깎여 나가는 소리가 계속되다가 멋지게 만들어진 작품이 쓱 나타난다. 그리고는 화룡점정. 오일을 바르면 빛나는 작품이 완성되는 식이다. 영상들 대부분이 이 공식을 따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중간 과정에 도대체 어떤 작업을 해야 저토록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얻는다는 말인가? 몇 날 며칠을 유튜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놓치고 있던 중간과정이 있는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마치 그 전설의 바다에서 보물선을 발견한 것 같았다. 오대양을 수십 바퀴 돌고 돌아 그토록 애타게 찾던 보물선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놓치고 있던, 비법 아닌 비법은 바로 평탄작업. 많은 영상들이 쉽게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조각도로 무늬를 만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접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무늬를 만들 조각도가 움직일 길도 같이 만드는 작업인 듯했다. 그렇게 완성에 가까운 바탕작업을 진행하고 마지막에 원하는 무늬에 맞는 조각도를 선택해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넓이가 있는 조각도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중반까지는 넓은 조각도로 모양을 잡고 마지막에 좁은 조각도를 사용해 무늬를 넣을 요량이다. 작업이 계속될수록 제법 모양이 잡혀 나간다. 그렇다. 활시위를 당길 줄 알아야 과녁을 맞힐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껏 남이 맞춰 놓은 과녁만 노려보다가 정작 화살은 손으로 집어던진 모양새다. 그래도 어렴풋이 길을 찾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눈 빠지게 영상을 훑은 것이 결과가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 평탄(平坦)에 이르는 쌩초보의 길은 이토록 멀다.
호두나무 나뭇잎 접시 카빙 노트
1. 먼저 네모난 호두나무 조각에 나뭇잎 모양을 그린다. 처음부터 나뭇잎 모양으로 따내면 둥글게 되어 작업대에 지지하거나 클램프를 물리기 어렵다. 안쪽 작업이 다 끝난 후 모양을 따내고 뒤쪽을 작업해 주어야 한다.
2. 처음 해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전체적인 평탄 작업을 먼저 해주어야 한다는 것 알았다. 처음부터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최종 작업에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3. 마지막에 폭이 좁은 조각도를 이용해 나뭇잎 모양을 만들었다. 표현은 서툴고 모양은 어리숙한 작은 접시가 만들어졌다. 얼듯 보면 나뭇잎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