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손바닥 가운데에 제법 커다란 물집이 잡혔다. 터트려야 할지? 그냥 두는 게 나을지? 오른손 중지 두 번째 마디에도 물집과 굳은살의 중간쯤 정도의 상처가 생겨났다. 눈치 없는 오른손 엄지가 자꾸만 그곳을 꾹꾹 눌려대는 바람에 곯마 버리는 건 아닌지 은근 걱정이 된다. 왼손 사정도 더 나을 것은 없는데 엄지 손가락 첫 번째 마디에 생긴 굳은살은 이젠 감각이 많이 둔해졌다. 칼등을 왼손 엄지로 밀어야 해서 생겨난 시간의 흔적이다. (연필을 깎아본 사람은 안다. 왼손 엄지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고작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나무 한 토막 깎았는데 양손 이곳저곳에 물집 투성이다. 사실 다른 이상 신호도 있는데 오른쪽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여간 뻐근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수저나 버터나이프에 비하면 크기가 큰 기물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나무의 단단함에 따라 힘을 더 많이 쓰게 되기도 하고, 카빙 나이프나 조각도의 날이 무뎌지면 무뎌질수록 그만큼 더 몸이 고되 진다. 낑낑대며 힘만 많이 쓰지 나무는 원하는 데로 깎여지지 않는다. 이렇게 몸이 삐걱거리며 초보 티를 팍팍 내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무를 깎는 중간에는 손의 물집이나 어깨 결림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같은 동작을 수십 번씩 반복하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나무가 깎여나가는 소리만 귓전에 맴돈다. 일부러 집중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데도 세 시간 넘게 나무와 교감하는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뭐 깎기가 완성되고 나이프를 손에서 놓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긴 숨이 뱉어지긴 하지만. ‘아이쿠 구구구...’
초보의 시간이 계속되면서 몸도 카빙에 적합하게 조금씩 연마된다. 칼등을 미는 왼손 엄지 첫마디는 이제 확연하게 굳은살에 박혀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여기는 칼에 베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근거 하나도 없는 생각을 해본다. 조각도를 미는 오른손바닥도 더 이상 물집에 점령당하지 않는다. 측정해 볼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은 손바닥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세포막도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조각도를 쥘 때 손잡이가 닿아 늘 아프던 오른손 중지의 둘째 마디에는 전용 골무를 마련했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 카빙용품점에는 여러 가지 손가락 보호용 가죽 골무를 팔고 있었다. 결리던 오른쪽 목덜미와 어깨는 자세를 바로 하면 좋아지라 생각하며 꾹 참아봤는데 이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시장통 3층에 있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작업자세를 바로 하고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자주 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느티나무 한 조각을 꺼내어 플레이팅 보드를 만든다. 조각도를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다.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는 작업에 오른손이며 어깨가 뻐근하다. 뭐 아프니까 초보다. 그렇게 쓱쓱 조각도를 밀면 느티나무의 소리가 들리고 향이 다가오며 그토록 그윽한 나뭇결이 드러난다. 카빙작업에 몸을 적응시켜 나무를 깎는 이유이자 만족이다. 조금씩 깎아 차곡차곡 쌓은 나뭇밥만큼 초보의 시절도 단련되어 간다.
손잡이가 있는 느티나무 플레이팅 보드 카빙노트
1. 느티나무에 손잡이가 있는 플레이팅 보드 모양으로 윤곽을 그려준다. 안쪽이 오목한 플레이팅 보드를 만드는 것이다. 보통 평평한 도마는 바로 외곽선을 따라 잘라주지만 이번 것은 안쪽을 먼저 파내고 외곽선을 따주어야 작업이 수월하다.
2. 플레이팅 보드의 가운데서 선을 긋고 이 선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조각도로 파낸다. 위에서 한 줄 아래서 한 줄씩 깎아나가며 깊이를 맞춰주었다.
3. 처음에는 큰 조각도를 이용해 깊이를 맞추고 이후에는 아사도를 이용한 오목하지만 평이 잘 맞도록 작업해 주었다. 너무 많이 파내면 거기에 맞춰 전체 깊이가 깊어질 수 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작업해 주어야 한다.
4. 안쪽의 선을 조각도를 이용해 정리해 주고 손으로 샌딩작업을 해주었다. 미네랄 오일을 바르고 다음날 닦아낸 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