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의 고달픈 삶
세종의 아침은 안개가 그윽하다. 세종호수공원 근처에 거주 중인 나는 일어나 창밖을 보면 두 부류의 사람이 보인다. 까만색 양복을 입은 정부부처 공무원과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정돈된 이들. 나도 공무원인 척을 하며 그들 속에 끼어 출입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세종으로 발령받은 지 1년을 앞두고 있다. 그럭저럭 적응했다. 갑자기 찾아온 여유가 두렵기도 하고 밀려오는 기사 압박은 나의 현재 위치를 잘 알게 해 준다. 서울과 청주에 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부딪히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고 걸었다면, 이곳은 ‘스마트폰 좀비’처럼 다녀도 안전하다. 정말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정부 청사 인근만 붐비고 다른 곳은 적막하다.
퇴근할 때 보통 어울링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간다. 어울링은 서울 따릉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집 근처에 반납하고 인근 공원을 터벅터벅 걷는다. 10시가 넘어가면 시골처럼 사람이 거의 없다. 혼자 내가 좋아하는 정자에 앉아 낭만 있는 척을 하고 생각도 한다. 맥주 한잔을 곁들이다 보면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삶은 많이 달라졌다. 크게 달라진 점은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거다. 사실 자전거를 힘차게 밟고 청사로 향하면 10분 안에 도착한다. 걸어서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세종은 계획도시다 보니 나무가 이전 계획도시보다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여름엔 그늘도 많이 없어 땀이 주르륵 흐른다.
청사를 출입할 때는 출입증을 패용해야 한다. 상근 출입증은 초록색인데 보통 기자들이나 상주 직원들이 목에 걸고 다닌다. 공무원증과 달라 괜히 재킷 안주머니에 숨긴다. 기자라는 걸 티 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보통 출근은 오전 7시 30분에서 8시에 한다. 나는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를 출입한다. 아침에 오면 연합, 뉴시스 속보와 1보 기사를 살펴본다. 자료 종합을 마친 뒤 주말에 부처에서 메일로 보내준 주간보도계획을 정리하고 아침 일보를 보낸다. 정부 부처 자료는 산더미다. 많은 양의 보도자료를 쳐낼 때면 손가락이 아플 때도 있고 엠바고를 틀리지 않았나 불안한 적도 심심치 않게 많았다. 과별로 추진 자료를 가공해서 내는 작업을 거치면 점심시간이 코 앞이다.
특히 난 기재부가 어렵고 밉다. 공부할 게 많기 때문이다. 경제부로 넘어온 나는 경제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20대 기자였다. 사회부에 가고 싶다고 때 쓰기도 했다. 언젠간 해야 할 부서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나라곳간’을 제 발로 들어간 셈이다. 통계청 자료는 엄청난 숫자의 향연이라 데이터를 눈 빠지게 보고 있으면 야마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 4달 넘게 숫자와 싸우다 보니 아직도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